노는 만큼 성공한다 - 개정판, 지식 에듀테이너이자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제안하는 재미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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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는만큼 성공한다

(김정운의 휴테크)

 

노는만큼 성공한다는 꿈같은 제목을 가진 책이 있다.

만약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가진 부모가 이 책을 본다면 아마 자녀가 보기전에 얼른 숨기고 싶은 제목의 책이 아닌가 말이다.

단순히 흥미를 유발하고자 책의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고 하기엔 저자의 이력이 심상치 않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따고온 김정운교수이다.

 

김정운 교수는 얼마전 TV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짧은 프로그램으로 그의 내면을 모두 알수는 없겠지만 솔직하고 재미있는 지식인이라고 느꼈는데, 역시나 이 책도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

 

이 책의 플로우를 간략하게 한줄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놀아라 - 감정능력(정서지능)향상 - 행복,성공

 

즉, 이 책은 성공의 전제조건으로 감성지능을 꼽고 있는 것이다.

감정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이 책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최근에 들어서서 창의력과 사회지능, 감성지능이 부각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시말하면 이 책은 잘 쉬고 잘 충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2부 삶을 축제로 만들자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지만, 내용은 일맥상통한다. 

(다소 자의적인 해석일지 모르지만) 마음놓고 여가를 즐기라는 것이다. 

 

보수적인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적극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에 다니고 있음에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책의 말미에 가면 다소 스퍼트가 떨어지는 감도 있지만(김정운교수도 좀 쉬어야 되기 때문에), 집중력있게 읽는 다면 한번에 죽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잘 쉰다는 것,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보낸다는 것, 

나 스스로도 삶을 한번 돌아본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자녀들이 생겼을 때 아이들과 많이 놀아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서구 사회의 변화를 통해 볼 때 생산적 여가 문화와 창의적 경제활동은 동전의 양면이다. 노동시간의 감소는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창의적 서비스업으로의 변화와 필연적으로 맞물려 있다. 상품의 생산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서비스업이란 대부분 여가시간에 이뤄지는 활동과 긴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압축적 근대화로 인한 문제점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면서도 압축적 여가시간의 증대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의 반대말이 여가나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가는 일의 반대말이 아니다. 일의 반대말은 나태다. 사람들이 헷갈리는 이유는 지금까지 일은 남이 시켜서 하는 행위로만 여겨왔기 때문이다. 일이란 내가 자발적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남의 돈을 따먹는 행위였을 뿐이다. 일의 주인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더럽고 아니꼽지만 참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 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나 놀이가 아니라 나태가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의 주인은 놀듯이 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의 주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다. 일은 재미없고 여가와 놀이만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쉰 살 먹은 사람의 창의력은 다섯 살 어린이의 창의력의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가 창의적인 이유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끊임없이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아무 의미없는 돌 조각으로도 하루종일 놀 수 있다.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정보의 재조합을 통한 '낯설게 하기'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빗자루를 말처럼 타고, 총싸움 칼싸움을 하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 빗자루라는 정보의 맥락이 청소 도구의 맥락에서 하늘을 날아가는 맥락으로 바뀌면서 빗자루의 '탗설게 하기'가 일어난다.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재미'다.(중략)

부모들은 이렇게 놀면서 최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빗자루를 빼앗고 창의성 학원에 가는 버스에 태운다. 그런 아이들은 자라서 그 부모들은 똑같이 우울한 얼굴로 운전을 하며 앞어서 차선을 바꾸려고 깜박이를 켜는 이들은 절대 용납 못하는,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정보의 크로스오버를 통한 '탗설게 하기'를 아인슈타인은 '조합놀이'라고 불렀다. 그가 만든 'E=mc2'이라는 공식은 이미 있어왔던 에너지, 질량, 빛이라는 개념들의 새로운 조합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구텐베르그의 활자는 와인을 짜내는 원리와 동전을 찍어내는 원리를 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조합들은 이전에는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합놀이'를 통한 창의적 아이디어의 생성은 생각의 시각화라는 수단을 통해 이뤄졌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의 습작 노트에는 한결같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이어그램으로 그러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물로이고 다윈이나 다빈치의 습작 노트에서도 이처럼 생각을 시각화한 흔적이 아주 쉽게 발견된다. 이러한 생각의 시각화가 가능한 것은 바로 심상이라고 하는 사고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유난히 사랑받는 사람들은 정서공유를 잘한다. 남의 기쁨, 슬픔, 우울함, 흥분과 같은 정서를 아주 잘 공유해준다. 우리는 상대방의 표정, 눈짓, 몸짓, 목소리를 통해 그 사람이 내 정서를 공유하는지 아닌지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낀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 엄마와 놀면서 이 정서공유의 방식을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독일의 내 지도교수는 사람이 하는 일에 'can not'은 없다고 주장한다.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can not'가 아니고 'will not'이라는 것이다.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잘 들여다보면 다른 일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려 내가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우리가 쉴 수 없다, 바빠서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다른 일에 비해 노는 일, 쉬는 일이 뒤로 밀린다는 뜻이다. 즉 놀고 싶지 않고 쉬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걔속 쉬지 못해 놀지 못하고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선택한 것이다. 쉬는 것, 노는것, 일하는 것, 바빠서 정신없는 것. 이 모든 것은 내 선택의 결과다. 여기서 재미있게 노는 것, 쉬는 것이 뒤로 밀리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재미있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삶의 목적을 항상 뒤로 미룬다.

 

에스키모는 자기 내부의 슬픔, 걱정,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때 되돌아 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서는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둔다. 살다가 또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걷기 시작했을 때, 이전에 꽂아둔 막대기를 발견한다면 요즘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기를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견딜만 하다는 뜻이 된다.

휴식은 내 삶의 막대기르 꽂는 일이다. 내 안의 나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움이 찾아올 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는 일이다.

 

여가를 보낸다는 것은 여유를 갖는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내게 너무나 중요했던 것을 배경으로 보내고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것들, 배경에만 흐릿하게 있어왔던 것들(예를 들면, 아내, 아이들, 내 젊은 날의 꿈같은 것들)을 전경으로 끌어올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경과 배경을 유연하게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은 쉬어가는 여유가 없으면 절대 생기지 않는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언제 정말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일상의 사소한 행복에 대해 사려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저녁식사 후 아내 손잡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 정말 행복이다. 일요일 오후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꼬박꼬박 조는 것이 정말 재미다. 착각하지 말자. 인내는 쓰지만 그 결과가 달콤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지금 삶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참고 인내해서 나중에 많은 돈을 벌면 행복하지고 재미있게 살 수 있으리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 행복과 재미는 그렇게 기다려서 얻어지는 어마어마한 어떤 것이 아니다. 행복과 재미는 일상에서 얻어지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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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ㅣ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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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인문경영)

 

이 책은 정진홍교수가 SERI 인문학 조찬특강에서 진행했던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정진홍교수는 경영자들에게 인문을 통한 경영에의 통찰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인문학은 비단 기업의 경영뿐 아니라, 대인관계 및 자신에 대한 경영에 있어서도 뿌리가 되기 때문에 인문학을 통한 통찰하는 능력은 점점 더 중요해 질 것이다.

 

나는 특히 정진홍교수의 사람공부를 인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제목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사람공부는 인문학을 통한 사람에의 통찰을 다루고 있다)

 

본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장  역사, 흥륭과 쇠망의 이중주_흥륭사

2장  창의성,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힘

3장  디지털, 그 감각의 제국을 지배하라

4장  스토리, 미래 사회를 사로잡는 힘

5장  욕망, 결코 포화되지 않는 시장

6장  유혹, 소리 없는 점령군

7장  매너,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8장  전쟁, 먼저 사람을 얻어라

9장  모험, 패배 앞에 무릎 꿇지 말라

10장  역사, 흥륭과 쇠망의 이중주_쇠망사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는 10개의 테마로 분류되어 있다.

1장에서 중국의 흥륭사를 다루었고 마지막장에서는 로마의 쇠망사를 다루고 있는데 다른 장들 보다는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역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다만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정진홍교수는 인문학을 통한 통찰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이 책에서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역사적서술 또는 다른 저서의 서술을 인용하여 사실관계를 전달함으로써 청자와 독자들이 스스로 통찰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일부장들은 참고문헌을 발췌하여 모아놓은 내용이 거의 전부인 느낌도 있어서 다소 아쉬웠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우리는 왜 인문학에 새삼 주목하는가? 다름 아닌 '통찰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여기서 말하는 통찰은 통찰(洞察)이면서 동시에 통찰(通察)이다. 통찰(洞察)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뚤어 보는 것을 말한다. 인사이트(insight)다. 아울러 통찰(通察)은 곧 통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훑어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오버뷰(overview)다. 결국 통찰의 힘은 바로 통찰과 통람의 융합이며 인사이트와 오버뷰의 시너지다.

 

예부터 문사철이라 했다. 문장과 역사와 철학이다. 먼저 문장은 기교의 산물이 아니다. 문장은 사람의 마음이고 영혼이다. 더불어 사는 역사는 포폄이다. 역사라는 거울에 비추어 스스로를 반성하고 나아갈 바를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은 단지 관념의 퇴적이나 사념의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깊은 생각과 넓은 조망을 통해 삶의 진정한 원리를 발견해가는 살아 있는 운동이다. 이 문사철이 바로 인문학의 본력이다. 문사철은 세간에서 흔히 오해하듯이 결코 박제화된 관념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혼의 운동이다.

 

마오쩌둥은 강희, 옹정, 건륭이 남긴 지혜에 중국의 미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족인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놀랍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이다. 마오쩌둥은 전통적인 화이관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중국이 원나라나 청나라 같은 이민족들의 침입과 지배, 융화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이 거듭났음을 인지했으며, 중국인을 단순히 오랑캐와 한족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에 함몰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흥미와 호기심을 배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크레이징 데이'를 만들어야 한다. 뭔가에 미치는 날이 있어야 한다. 열정을 분출하며 무엇엔가 몰임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죽은 사람에게는 창의를 기대하지 않는다. 즉 날마다 살아서, 날마다 스스로 놀라야 한다. 놀랄 일이 없다는 것은 오감이 죽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은 사소한 것에 잘 놀란다. 단, 놀라는데서 그치는 대신 이 놀람을 기록하고, 이야기하며 재창조한다. 이것이 진정 창의적인 사람이다. 즉 놀람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놀람을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종종 괴팍하고 오만하며 이기적이고 몰인정할 수 있다.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들 상당수가 괴짜들이며, 양면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다.

 

장 폴 사르트르는 진지하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일찍 죽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의 권위가 클수록 아이들은 무언가를 결정할 경험과 기회를 잃게 된다. 즉 자립심 있는 아이로 자라나려면 어렸을 때부터 실패하고 좌절할지라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많아야 한다. 실제로 아이를 성인과 동등하게 대접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지적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감성 시장에서 팔리는 욕망의 상품은 말 그대로 '이야기가 있는 상품'들이다. 그 이야기에는 감성 바이러스가 담겨 전염성을 가진다. 상품의 질이 아닌 상품에 담긴 이야기가 승부수를 던진다. 예를 들어 나이키를 보자. 아무리 나이키라도 오래 신으면 밑창이 닳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난이키는 '승리, 신화, 불패'등의 이야기를 제품에 담음으로써, 동일한 질의 신발보다 몇 배 비싼 값임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몰블랑 만년필도, 루이비통 핸드백도 같은 원리다. 사람들은 물건 자체가 아닌 그 상품에 담기 이야기를 산다. 감성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기꺼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 '이야기가 있는 상품'을 선택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접목하고, 스스로 그 감성 바이러스가 넘실대는 이야기 속으로 뛰어든다. 결국 감성 시장은 감성 바이러스가 넘쳐나는 '이야기 상품'이 지배한다.

 

산업시대의 최고 우상은 포드 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였다. 정보화 사회의 최고 우상은 빌 게이츠였다. 그렇다면 드림 소사이어티의 최고 우상은 누가 될 것인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스티븐 스필버그를 꼽는다. 꿈과 감성 그리고 이야기가 주도하는 드림 소사이어티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콘텐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굳이 스필버그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드림 소사이어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전쟁에서는 총이나 칼같은 하드웨어가 중요했다. 또 얼마 전까지는 그것을 구동시키는 소프트웨어가 주목받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스토리를 만들고 내러티브를 생산해내는 콘텐츠웨어가 지배하게 될 것이ㅏㄷ. 즉 문화전쟁, 이야기 전쟁이 총, 칼, 폭탄의 전쟁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진짜 무기는 특유의 미소도, 탁월한 균형감각만도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복잡한 문제를 단순명료하게 풀어낼 줄 아는 능력이었다.

'아이젠하워원칙'이란 말이 있다. 이는 어지러운 혼돈 상태를 단순하게 정리 정돈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아이젠하워 원칙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따로 마련한 빈 책상 위나 빈 공간 바닥을 4등분 한다. 그리고 4등분한 공간에 각각 번호를 매기고 1번공간에는 버릴 것을, 2번 공간에는 다른사람에게 지시해 처리할 것을, 3번 공간에는 연락할 것들을, 4번 공간에는 지금 당장 직접 처리할 것을 배치한다. 그러면 정작 책상위는 일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말끔히 치워진다. 이게 아이젠하워 원칙의 실행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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넨도 디자인 이야기 - 10가지 디자인 발상법과 4가지 회사경영법
사토 오오키.가와카미 노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미디어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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넨도, 디자인 이야기

(사토의 디자인 경영)

 

"판매와 직결되지 않는 다면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책의 문구는 최근에 디자인이 마케팅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알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폰을 시작으로 디자인은 그 자체로 마케팅이기 때문에 더 많은 기업들이 디자인에 신경을 쓰고 있고 앞으로 디자인의 중요성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즉, 디자인은 마케팅의 단계를 넘어서서 기업의 아이덴티티까지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수 많은 기업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넨도의 디자인'의 비밀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넨도의 발상

2. 넨도의 경영법

 

넨도는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다. 

그러므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넨도의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펼쳤을 것이다. 

이 책의 1장 '넨도의 발상'에는 그러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 준다. 

넨도의 디자인이 왜 차별화되는지, 넨도의 디자인의 원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사진이 등장하여 이해를 돕는다. 사진 뿐 아니라 아이디어 스케치등을 다양하게 삽입되어 있다. 넨도의 디자인은 심지어 이 책에도 녹아 있다.

 

그런데 나에게 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2장의 '넨도의 경영법'이었다.  

나도 모르게 넨도는 디자인회사라는 선입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고 넨도라는 디자인회사와 창업자인 사토의 경영에 대해서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넨도의 경영철학은 세계적인 유수의 기업들 못지 않게 경제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도 많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은연중에 예능과 상경을 구분해서 생각해 왔던 나로서는 충격적인 발상이 많았다. 

흔히들 예능을 하는 뇌와 수학등을 하는 뇌를 구분하곤 한다. 

그러나 넨도의 사토 오오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것 같다.

 

이렇게 폭넓게 사고하는 디자이너가 있었기에 '넨도'라는 회사가 전세계인 기업들이 줄을 서서 디자인을 맡기고 싶은 회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면적인 전개는 기업의 특성을 끌어내는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사토의 생각을 인용해보자.

"디자인의 면적인 전개는 타사가 쉽게 카피 제품을 내놓지 못하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현재 수준의 기술이라면 상품 하나를 카피하는 건 그리 어려은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면적인 전개를 해나갔다면 단지 카피 제품 하나가 출시되었다는 것만으로는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아요. 콜렉션이라는 생각으로 복수제품에 개연성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죠. 횡적으로 연결된 상품군이라는 발상을 통해 비즈니스의 근간에 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넨도의 디자인 방식 가운데 '한발 물러선다'는 사고법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압도하기 보다 고객의 능ㄹ력이나 상품의 힘을 최대한 살려내기 위해 한발 물러선다. 합기도와 같은 방식이다. 사토는 말한다.

"중요한 건, 한방에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 필살의 일격을 가한다거나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디자인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목청 높여 주장하고 큰 소리를 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가 무엇이고 또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 전달할 것인가이다. 구매자 스스로가 관심을 갖는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한발 물러서 보거나 목소리를 작게 해보는 디자인 수법. 이솝우화 <북풍과 태양>이 주는 교훈과도 닯았다.

"특히 이 방식은 수많은 상품으로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효과를 드러내죠"

 

위화감이란 넨도 디자인의 중추가 되는 사고법으로, 넨도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사토가 말하는 '매일매인 일상 속에서 느끼는 위화감'이란 무엇일까? 한반만으로 알아차릴 수 없었던 요소가 반복을 통해 알아채기 쉬운 것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애를 쓰면 쓸수로 아이디어는 도망쳐버려요. 목적의식을 가지면, 즉 안테나를 세우면 자기 주변에 울타리를 치게 되죠. 주변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죠. 일부러 포거스를 맞추지 않으려 합니다. 초점을 설정하지 않은 눈으로 전체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보다 더 넓은 세계가 보입니다. 주변의 상황을 인삭하며 다음 순간을 추측하는 스포츠 선수의 주변시력과 비슷하죠."

 

"디자인이란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는 명언이 있어요. 이것은 단순히 상대방의 요청에 수독적으로 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찰과 이해를 통해 '상대가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예측해 제공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즉 다지이너로서 꼭 지녀야 할 본질을 '꽃다발을 선물한다'고 표현한 것이죠. 그 말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모으고 묶는' 우리의 디자인 방식은 약간 다른 의미에서 꽃다발이나 부케에 근접한 것이라 생각햐요. 한 송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꽃, 그러나 그 꽃들을 모아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넨도의 디자인 방식 중, 서로 관련없는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 연길시키는 방식이 있다. 사토는 그것을 '타닌동'아리 부른다.

닭고기과 달랼로 조리하는 오야코동과 달리 타닌동은 닭고기 이와의 고기과 달갈로 조리하는 음식이다. 넨도가 말하는 디자인에서의 타닌동이란'아무런 인연도 점접도 없는 두가지를 연결시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머리속 전혀 다른 폴더에 저장되어 있던 데이터가 갑자기 링크되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때가 있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수록 임팩트가 강력해집니다. 고저 차이에 의한 '격차'가 생겨나기 때문이죠. 전혀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됐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서로가 이런 저런 식으로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는 거죠. 그때의 놀라움과 타닌동 디자인에서 받는 놀라움은 비슷합니다. 아니면 'A라고 쓰고 B라고 해석한다. 그이유는 C다' 와 같은 TV코미디 프로그램의 수수께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A,B는 전혀 접점이 없는 두가지를 일컫고 C는 그 둘 사이의 공통점이 도는 거죠."

 

기존과 정반대의 것을 적극 수용하는 기업의 모승에서도 엿볼 수 있든, 현대는 사고의 약진이 필요한 시대다. 디자인이란 인간의 존재를 염두에 둔 사회적인 행위다. 계획을 수립하고 궁리를 거듭해 사물과 공간, 또는 그것으로 영위되는 우리의 생활 자체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활동이다. 지금의 디자인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이제껏 우리가 상관없다고 여긴 사고방식이나 영역간의 연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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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시간 -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는 법 ㅣ 인생학교 6
톰 체트필드 지음, 정미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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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시간

(디지털시대에 살아남는법)

 

인생학교 시리즈 중 '시간'과 관련된 책이다. 

부제인 '디지털시대에 살아남는법'이 이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기기인 TV, 컴퓨터, 스마트폰이 우리의 생활에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만, 또한 역설적으로 많은 시간을 빼앗아 감으로써 우리가 생각할 시간을 부족하게 만들고 기기에 종속되고 있게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 이 책의 중심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공감하는 내용이고,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디지털기기의 여러가지 폐해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기기의 발달은 빠른 정보의 전달을 통해 대중들이 응집된 목소리를 가질 수 있게 한다. 오전에 발생한 뉴스가 저녁시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되고, 식탁의 화제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군중심리에 의해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획일화될 소지가 있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획일화된 목소리를 듣다보면, 개인의 생각이나 창의력이 향상되기 어려워 질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디지털 세상 속 우리의 시간, 어떻게 쓸 것인가?

2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한 변화들

3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4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쓰고 제대로 살 수 있다

5 권위의 종말

6 인간으로서의 격을 상실해가다 

7 오락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았나?

8 정치가 삶의 일부로 녹아든 시대

 

우리집에는 TV가 없다. 

분가하면서 구매조차 하지 않아서 TV가 없이 산지 3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TV를 없이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혹시 손님이라도 오시면, 심심해하지 않을까?'

하는 이런저런 걱정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전혀 불편함이 없이 살고 있다. 

 

TV가 없다고 해서 그 시간에 특별히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집은 휴식을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하고 논다. 책을 보거나 대화하는 시간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최근에는 정성스럽게 요리를 해보기도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디지털기기가 발달할 수록 개인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물론 디지털기기를 이용해서 최대한 시간을 효율적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을 얼마나 비위놓고 생각하고 사색할 시간을 남겨놓느냐가 될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디지털 미디어로부터 벗어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기본 상태가 아닐 뿐만아니라, 확고한 의지 없이는 경험할 수도 없는 일이 되었다. 열차 안의 '정숙열차'표시, 미술관, 성당 등 공공장소에 붙은 휴대폰을 꺼달라는 표지판들을 생각해보자. 이 표지판들은 지금 우리 시대를 대변해 준다. 지금은 특별한 요구, 확고한 의지에 의해서만 디지털 기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상시적인 실시간 연결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자기성찰의 측면의 중요한 물음은 그 방향이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쪽으로, 하지만 연결에 아무리 목마른 상태라 하다라도, 잘 살아남으려면 이 상시적 소통의 능력으로부터 의식을 어느정도 분리시킬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삶에는 현재가 아닌 다른 시제, 즉 다른 본질의 시간도 필요하다.(중략)

레니어가 30분동안 전기기기와 단절된 집중을 요청한 것에서 시사되듯, 우리 삶 속에 언와이어드된 시간을 만드는 것은 산속 오두막에서 살거나 평생 이메일과 담쌓고 지내기로 선언하는 식의 거창한 문제가 아니다. 그럴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겐 '오프 그리드'지역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이 유행이라지만. 어쨋든 언와이어드 시간이란 그런 거창한 방식보다는 일상생활의 일부로 삼는 것이 가장 좋다. 이를테면 오전 중에는 이메일을 보내지 않기, 회의나 식사중에는 전화기 꺼놓기, 며칠이나 몇 시간 동안 전기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 마련하기, 누군가와 20통의 이메일을 주고받기보다 직접 만나기. 이런 결심이 좋은 예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육성시키기 가장 힘든 정신 상태는, 분산된 주의력에 대응하려 속사포처럼 발생하는 반사적인 반응과도 상관없고, 온 주의력의 절대집중과도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창의적 통찰력과 개인의 평온함에 관련된 것, 즉 자유로운 상념이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녹아들면서 그 자유로운 상념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로운 상념은 생활 중의 '비어있는'시간에(가령 기차 안에서나 욕조 안에 있을때, 걷던 중에, 혹은 책을 읽다가 창밖을 흘끗 내다볼 때) 떠오르곤 하지만, 디지털상으로 기획을 짜는 데 빠져 있거나 집중이 요구되는 오프라인 회의 중에는 재현시키기가 불가능하다. 대체로 이런 생각들은 삶이 빡빡하게 짜여있지 않은 순간 살금살금 다가온다. 한마디로 돌발적이고 개인적이며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영국의 계몽철할가 존로크의 <인간오성론>에 담긴 표현을 빌자면, '이해를 위한 숙고나 집중 없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를 때' 일종의 자유가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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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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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The Conquest of Happiness)

 

나는 행복의 정복이란 이 책의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행복이라는 포지티브한 추상명사와 정복이라는 다소 네거티브한 정복이라는 명사의 조합이 좀 어색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렇게 어색한 제목을 가진 책들은 번역가가 제목을 의역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의 원제는 'The Conquest of Happiness'이다. 

즉 행복의 정복이 정확하게 맞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책의 제목인 '행복의 정복'을 어색하게 생각했을까?

행복은 정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아니면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였을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행복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 버트런드 러셀은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명망있는 철학자이다. 

행복의 정복은 1930년에 쓰여진 책인데,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통찰이 돋보인다. 명저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구성은 심플하다.

 

1.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2. 행복으로 가는 길

 

목차만으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러셀은 이 책의 전반부에서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한지를 밝히고 후반부에 가서 행복으로 가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전반부의 행복하지 못한 이유들에 대한 다양한 통찰은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던 반면, 

후반부의 행복을 정복하는 방법들에는 적극적으로 공감되지 않는 부분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문제점을 알면 그에 따른 해결책은 각자의 성향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생각할 만한 화두를 많이 던져준다. 러셀은 '행복의 정복'외에도 많은 저작물을 남겼는데 '서양철학사'를 비롯한 러셀의 다른 책들에도 관심이 간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씩 읽어보고 싶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이 글에서는 문명국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마다 겪고 있는 일상적인 불행에 대해 다룰 것이다. 즉 분명한 외적요인이 없으니 달아날 길이 없는 것 같고, 달아날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참아내기 힘든 불행을 치유할 방법을 제시하는 데 이글의 목적이 있다. 이런 불행은 대부분 세계에 대한 그룻된 견해, 잘못된 윤리와 생활습관에서 비롯되는데, 이런 요인들은 인간이나 짐승이 누리는 행복이 근본적으로 의존하기 마련인 자연스런 열정과 굑구를 짓뭉갠다. 이런 불행은 개인의 힘으로 좌우할 수 있다. 나는 보통의 운으로도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몇가지 변화의 방법을 제안할 작정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심리학적으로는 정신병자와 다를 게 없었지만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꿈을 실현할 때마다 점점 꿈의 범위를 넓혀갔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꿈을 완전히 실현할 수 없었다. 이름난 정복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명성을 날리게 된 그는 신이 되기로 결심했다.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술에 젖어 지내고, 난폭하게 화를 내고, 여자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 것을 보면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간 본성을 이루는 다른 여러 요소들을 희생해 한가지 요소만을 개발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는 없다. 또한 자신의 엄청난 자만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 세상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해서 근본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 불행한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절마의 늪에 빠져 어떤 만족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기분전화만을 추구한다. 이런 사람은  '쾌락'의 광신자가 된다.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줄여서라도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려고 한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하는 것은 일시적인 자살이나 다름없다. 술에 취해서 누리는 행복은 불행을 잠시 중단시키는 데서 오는 순간적이고 소극적인 행복이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란 말은 실제로는 성공을 위한 경쟁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경쟁을 하면서 내일 아침을 먹지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 쳇바퀴에 갇혀 있는 신세가 아니다. 그들이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쳇바퀴가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쟁은 지나치게 냉혹하고 집요하며, 필요이상으로 근육을 혹사시키고 의지 또한 지나칠 정도로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런 경쟁이 삶의 근본 철학이 될 수 있는 시기는 기껏해야 한두 세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경쟁은 신경의 피로를 초래하고, 여러가지 도피현상을 일으키며, 쾌락 추구를 사업만큼이나 긴장되고 어려운 일로 만들어버려(휴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해 재고가 바닥나는 지역에 도달할 것이다.

 

질투는 평범한 이간 본성이 가진 여러가지 특징 중에서 가장 불행한 것이다. 질투가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안기고 싶어하고, 또 처벌을 받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는 반드시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고 질투하는 자신 역시 불행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대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괴로워한다. 그는 가능하다면 다른사람들에게서 그들이 가진 장점,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그들의 장점을 빼앗는다.

 

질투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여러가지 불행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눈앞에서 형제나 누이가 더 귀여움받는 것을 목격한  어린아이는 질투하는 버릇이 몸에 배게 된다. 이런 아이가 사회로 나오게 되면 자기가 희생양이 되는 불공평한 대우에 눈을 치켜뜨게 되고,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면 당장 알아차리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상상함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 자신이 경멸당한다고 상상하지 않도록 친구들이 항상 조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친구들에게도 귀찮은 존재가 된다.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다고 생각할 뿐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이러한 생각을 사실로 만들어 버린다.

 

현대는 특별히 질투가 만연해 있는 시대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가난한 나라는 부유한 나라를, 여자는 남자를, 정숙한 여자는 정숙하지 않으면서도 처벌받지 않는 여자를 질투한다. 질투가 다른 계급과 민족, 다른 성간의 정의를 이룩하는 주요한 원동력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질투의 결과로 빚어진 정의는 자칫하면 최악의 것, 즉 불행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증가시키기보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 정의가 되기 쉽다.

 

그러나 아주 이른 시기부터, 자녀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감정과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욕구 사이에서 갈들이 일어난다. 부모가 자녀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느정도까지는 자연적 필요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지만, 자녀는 되도록이면 빨리, 되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부모의 권력욕은 이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갈등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폭군 행세를 계속하다가 자녀들에게 반발을 사는 부모도 있고, 이러한 갈들을 의식하고 자신이 이렇게 모순된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부모도 있다. 이러한 갈등을 겪은 순간 부모는 자녀를 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온간 정성을 다해 키운 자식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는 순간, 부모의 마음속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복은 마치 무르익은 과실처럼 운 좋게 저절로 입안으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세상은 피할 수 있는 불행, 피할 수 없는 불행, 병, 정신적 갈등, 투쟁, 가난 그리고 악의로 가측 차 있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개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불행의 원인들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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