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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평점 :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해(가제)"의 선인세가 16억에 달한다는 소문으로 인해 세간의 이슈가 된 바 있다. 선인세의 진실여부를 떠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
1987년에 발표한 상실의 시대는 이러한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 즉, 무라카미 하루키를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준 도화선과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의 학창시절인 90년대에 국내에서도 많은 여학생들이 이 책을 읽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나도 그 당시 이슈가 되었던 이 책을 읽어 보려 학교 앞에 있던 구립 도서관에 가보면 항상 누군가가 먼저 대출을 해서 다른 책을 대신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과거 도서관의 추억을 생각하며 상실의 시대를 읽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과는 달리 상실의 시대는 나에게는 그렇게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스토리의 중심이되는 와타나베와 나오코 그리고 옛친구 기즈키의 관계가 나에게는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실의시대에서 자살, 정신병, 동성애등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어두운 측면에 있는 이야기들을 무라카미는 가장 꽃다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투영하였다.
어쩌면 이 책은 지난 잃어버린 20년을 살고 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의 아픔을 투영하는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양극화와 청년실업등 향후 일본과 비슷한 사회적문제가 야기될 것으로 보고 있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는데, 그러한 시대에 이 책을 읽는다면 좀 더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책이 여성들에게 인기 있었던 이유는 어느정도 깨달았다.
상실의 시대는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상당히 잘 이해하고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18년 전 아련한 추억 속의 나오코
2. 죽음과 마주했던 열일곱 살의 봄날
3. 잃어버린 시간 속을 날아간 '반딧불이'
4. 피가 통하는 생기 넘치는 여자, 미도리
5. 마음의 병을 앓는 나오코의 실종
6. 요양원에서 만난 나오코와 레이코
7. 너무나 가깝고도 먼 미도리
8. 나가사와와 하쓰미가 그리는 평행선
9. 미도리와 청교도처럼 보낸 밤
10. 갈등의 벼랑 끝에서
11.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들었던 많은 생각들, 이해하기 어려웠던 등장인물들의 행동들, 무라카미는 그들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책의 원제는 왜 노르웨이의 숲일까?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어쩌면 무겁고 네거티브한 생각들만 떠올라 생각을 더 전진시키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상실의 시대는 통속소설같기도 하고, 희망보다는 어둠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소설이긴 하지만, 그만큼 읽고 난 후에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고 생각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여운이 긍정적인 에너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처음에는 그렇게 잘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잊어버리려해도 내 안 에는 무언가 뿌옇게 흐린 공기 덩어리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덩어리는 단순하면서도 뚜렷한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 형상을 말로 바꿔 놓을 수가 있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말로 해버리면 평범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몸 안에 있 는 하나의 공기 덩어리로서 느꼈던 것이다. 당구대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빨간 색과 하얀색으로 된 네 개의 공 안에도 죽음은 존재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마치 미새한 티끌처럼 폐속으로 들이 마시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삶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었다. 즉 '죽음은 언젠가는 확실히 우리들을 그 손아귀에 넣는다. 그 러나 거꾸로 말하면, 죽음이 우리들을 잡는 그날까지 우리들은 죽음에 잡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하고.
그것은 나에겐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인 명제로 생각되었다. 삶은 이쪽에 있 으며, 죽음은 저쪽에 있다. 나는 이쪽에 있고, 저쪽에는 없다.
"아니, 아무리 내가 욕심쟁이라곤 하지만 거기까진 바라지 않아요.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에요.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것. 가령 지금 내가 선배에게 딸기 소트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말예요, 그러면 선배는 모든걸 집어치우고 그걸 사러 달려가는 거예요. 그리고 헐레벌떡 돌아와서 '자, 미도리, 딸기 쇼트 케이크야' 하고 내밀겠죠. 그러면 나는 '흥, 이따위 것 이젠 먹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그걸 창문으로 휙 내던지는 것예요.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거란 말예요."
"그런 건 사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은데" 하고 나는 조금 어이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관계가 있어요. 선배가 알지 못할 뿐이에요." 하고 미도리는 말했다.
"여자에겐 말이에요 그런 것이 굉장히 소중할 때가 있는 거예요."
"딸기 쇼트 케이크를 창문으로 내던지는 그것이?"
"그래요, 난 상대방 남자가 이렇게 말해 주면 좋겠어요. '알았어, 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네가 딸기 쇼트 케이크를 먹고 싶지 않아지리라는 것쯤은 짐작했어야 했는데. 난 당나귀 똥만큼이나 바보스럽고 무지한 것 같아. 사과할 겸 다시 한 번 다른 걸 사다 주지. 무엇이 좋아? 초콜릿 무스, 아니면 치즈 케이크?'"
"그러면 어떻게 되지?"
"난 그렇게 해서 받은 것만큼 어김없이 상대방을 사랑할 거야."
"지극히 불합리한 이야기 같은데."
"하지만 나로선 그게 사랑이에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하고 미도리는 내 어깨 위에서 살래살래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쩐 종류의 사람들에게는 사랑이란 게 지극히 하찮은, 혹은 시시한 데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가 아니면 시작되지 않는 거지요."
"너처럼 생각하는 여자는 처음이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꽤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