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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평점 :
정의란 무엇인가
(3년만에 읽어본 Justuce)
정의란 무엇인가를 근 3년여 만에 다시 읽어보았다.
다시 읽어봐도 논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즉, 이 책은 생각할거리를 많이 준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독서토론의 소재로 빠지지 않고 단골로 등장한다.
3년만에 다시 읽어 보니, 그동안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나의 사고력이 많이 발전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수동적으로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며 수긍하데 급급했다면, 이번에 책을 읽을 때에는 저자의 논리와 나의 생각을 비교해가면서 능동적으로 독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에 읽을 때에는 깨닫지 못했던 여러가지 맹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01 정의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일까?
02 최대 행복 원칙: 공리주의
03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 자유지상주의
04 대리인 고용 : 시장 논리의 도덕성 문제
05 동기를 중시하는 시각 : 이마누엘 칸트
06 평등을 강조하는 시각 : 존 롤스
07 소수 집단 우대 정책 논쟁: 권리 vs. 자격
08 정의와 도덕적 자격: 아리스토텔레스
09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공동체 의무
10 정의와 공동선
샌델은 소크라테스가 문답을 통해 실마리를 찾아나갔던 것처럼 이 책에서 다양한 질문을 통해 한겹한겹 전진한다. 논리가 차곡차곡 쌓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때문에 중간에 흐름을 놓치면, 맥이 끊길 수가 있으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샌델은 이 책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크게 다음의 세가지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1. 공리나 복지의 극대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
2.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의 선택 또는 사람들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 있을 경우 하게 될 선택
3. 미덕을 가지고 공동선을 고찰하는 것.
즉, 공리주의 vs 자유주의 vs 도덕과 공동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샌델은 공리주의와 자유주의보다는 도덕과 공동선을 통해 사회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다. 개인적으로는 샌델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센델은 400여 페이지를 통해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해서 비관적인 메시지를 던지지만 그에 대한 대안인 도덕과 자유선에 대해서는 마지막 30여 페이지에 대해서만 할애한다. 즉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대안인 것을 샌델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다.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도덕과 공동선이 정의가 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는 개인의 양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한다. 우리는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공동선을 추구하는 국가가 될 수 도 있고, 아주 도덕적인 개인들의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덧붙임.
1. 철학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학과도 연관이 된다. 철학을 폭넓게 알수록 그리고 깊게 알수록 철학이 다양한 학문과 연관되고 또한 뿌리가 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건희가 괜히 이재용을 철학과에 보낸 것이 아니다.
2. 롤스의 이론은 굉장히 흥미롭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입법을 하거나, 정책을 만들기 전에 한번이라도 롤스의 이론에 입각해 생각해 본다면, 우리나라의 정치는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일말의 양심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한가지 분명한 차이점은 좋았던 시절에 받았던 보너스는 회사의 수익에서 나온 반면, 구제 금융 보너스는 납세자들로부터 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가 그들이 보너스를 받을 자격 자체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보너스로 받은 돈이 어디에서 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실마리는 있다. 그들의 보너스가 납세자로부터 나온 이유는 그 기업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만의 핵심이다. 미국 국민들이 그들의 보너스(그리고 구제금융)에 반대한 진짜 이유는 탐욕을 포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를 포상했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하는 존중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며, 비차별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이성적 능력에 대한 존중이다. 따라서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태도다. 이러한 점 때문에 칸트의 존중의 원칙은 보편적 인권법칙으로 적합하기도 하다. 칸트에 따르면 상대가 어디에 살든, 자신과 ㅇ러마나 잘 아는 사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을 지켜 줄 때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오로지 그가 인간이고, 이성적 존재이며, 따라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롤스의 추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집단생활을 지배할 원칙을 정하기 위해, 즉 사회 계약을 작성하기 위해 현재의 모습대로 한 자리에 모였다고 가정하다. 어떤 원칙을 선택할까? 아마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저마다 각자의 이해관계, 도덕적, 종교적 신념, 사회적 지위에 유리한 서로 다른 원칙을 선호할 것이다.(중략)어쩌면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협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이들이 더 큰 협상력을 발휘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런식으로 합의된 사회계약을 정당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제 한가지 가상의 사고 실험을 해보자. 원칙을 정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잠시 잊게 된다고 상상해보자.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시적으로나마 전혀 알수 없는 '무지의 장막'뒤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상상하자.(중략) 그야 말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선택하게 된다. 이처럼 협상에서 어느 누구도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합의한 원칙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회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이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중략)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개입한다. 구제금융이나 상이군인 훈장, 대리출산이나 동성결혼, 소수 집단 우대정책이나 군 복무, 최고 경영자의 임금이나 골프카트 이용 권리를 두고 어떤 논란을 벌이든,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에 관해 경쟁하는 여러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