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마커를 바꿔봤다.
필름 마커가 마음에 걸려서 종이 마커가 괜찮은 게 없을까 하다가 팬톤 마커를 찾았다.
색이 통일된 건 마음에 꽤 든다.
이 책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어떤 의도로 기획되고 출간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두 꼭지 읽고 너무 어려워서 챕터 앞에 이 글이 어떤 맥락에서 언제 출간되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해설이 있으면 좋겠어서 아쉬웠다.
일단 첫 챕터를 펼쳐봤다가, 닫고, 작가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봤다 ㅋㅋㅋ
뤼스 이리가라이는 벨기에 태생의 철학자, 여성학자, 언어학자, 정신분석학자이다.
[읽기 어려운 책에 대한 어려운 리뷰] 『하나이지 않은 성』 |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를 보고 '하나이지 않은 성'이 어떤 책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여러 매체들에 기고된 글들을 묶은 책으로, 프로이트-라캉주의를 중요하게 비판하는 글들 위주로 엮인 책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엮어낸 건 아닌 듯하다.
'여성은 시선보다는 접촉을 더 즐기고, 그녀를 매우 시각적인 체계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여전히 그녀를 수동성으로 지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그녀는 바라보기에 좋은 대상이 된다. 만일 그녀의 육체가 '주체'의 충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노출과 정숙한 위축이라는 이중의 움직임으로 인해 그토록 성적으로 자극적이고 유혹적이라면, 여성의 성기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는 두려움을 나타낸다. 재현과 욕망이란 이 체계의 오류를 나타낸다. (...) 여성의 성기는 그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가려지고 그 '틈새' 안에 다시 여며진 것이다' p.34~35
'하나가 아닌 그녀의 성기는 성기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p.35
'그녀가 그러한 상태로 만들어지게 되는 순간들의 간격에 대한 비밀은 여성에게 있다.' p.35
'타자가 이미 그녀 안에 있고,이 타자가 자기 색정이란 측면에서 그녀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이 타자를 가로챈다는, 그녀가 이 타자를 자기 수중에 넣는다는 뜻은 아니다. 독특함, 소유라는 것은 아마도 여성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리라.' p.41
'여성이 여성으로서 쾌락을 누리게 되는 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다양한 체계들을 분석하는 긴 에움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p.41
책이 몹시 어렵다.
아마 내가 철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개념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이 독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내가 오독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몹시 두려워하면서 더듬더듬,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애쓰면서 읽는다.
여성의 몸을 그리고 표현하는 시각들이 남성만의 것이라 여성이 여성의 몸을 온전히 누리고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억압들을 분석하고 파헤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해석하면서, 여성의 몸에서부터 타고난 차이, 의미, 억압과 차별을 찾아내는 여정이 낯설다.
자신의 몸을 탐구하는 게 여성에게 얼마나 낯선 일인지?
자신의 몸이 스스로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하는 일에서 당혹감을 느꼈는데, 이 당혹감이 아직도 내 안에 내 몸에 대해 꺼려하는 부분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 이것 또한 낯설고 불편하다. 하지만 더 불편하고, 더 거슬려야 하지. 아직도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불편하고 거슬리는 사고가 남아있다는 건 더 공부할 게 많다는 뜻이지.
독서 자체가 낯설고 쓰여진 언어들이 익숙한 용법이 아니지만 한 가지만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여성의 몸이 남성에게 갖는 의미로서 의미지어지는 게 아니라 여성 스스로에게서의 의미를 탐구하는 글꼭지들이 많다는 것. 그러니 기본적으로 남성에게서의 의미는 남근과 부친에게서 시작하며, 여성은 남근을 선망하거나 남성적 욕망을 선망한다부터 시작하는 세계관에선 얼마나 큰 논란이 되었을까.
여전히 여성적 쾌락이 있다면, 그것은 남자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위해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p.127
액체와 고체 비유는 내게 너무 어렵고 ...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
이 책을 읽으면 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성적 차이와 페미니즘'은 하나이지 않은 성처럼 여기저기 실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이리가레가 출간했던 대표논문을 묶은 책이기 때문에 오히려 논지가 일관적이고 맥락이 분명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불행히도 이 책은 절판이고 중고도 구하기 어려운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20년전 책이니까!
어디서 다시 내줄 출판사 없을까,
다락방의 미친 여자도 다시 내준다는데...
11월 틈틈이 페이퍼를 썼는데 11월 말에 읽는 것만으로도 허덕여서 이제서야 간신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12월의 도서는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성과 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