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과의 맛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오현종 작가를 좋아한다. <본드걸미미양의 모험>을 처음으로 읽었는데 그 상큼한 도발성에 반했었다. 젊은 여성작가의 글은 대부분 나에게 비슷한 감정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데 이 작가의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 소설을 정말 소설답게 쓴다고 해야할까.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이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세계를 그려낸다. 세이렌 같은, 마녀나 본드걸 등의 어쩌면 페미니즘의 허울을 벗어제끼고 그저 세상을 맨몸으로 그대로 이겨낼 수 있는 듯한 느낌이다. 다시 말해 그녀의 글은 나에게 전투적으로 보인다. 그것의 대상이 남자든, 세상이든 가난이든 상관없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전투방법은 아름답게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어서 소설가가 되었다는 작가의 말을 보고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야말로 그 소원을 풀고 있는구나란 생각을 했다.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라는 단편을 보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어릴 때 인어공주를 읽고 슬프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저 마지막 처리가 씁쓸하고 마음에 안 들 뿐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며 '아름답게 슬픈 게 어떤 것인지'를 슬슬 알 것 같다.
사랑은 자신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일 수 있다. 보글보글 일어났다가 금새 없어져버리는 물거품처럼 부질없는 사랑에 대한 희망은 여기 이 수족관에서 인어쇼를 하는 장애인(인어로 태어난 여인)처럼 연필심을 꾹꾹 눌러 자꾸 편지만 써서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자신을 버린 남편을 기다리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런데 그 고통조차 동화처럼 생각하고 싶어하는 게 인간이다.
상추를 훔쳐오다 바람난 라푼젤의 남편도, 인어를 잡아 앞마당 연못에서 살게하는 그 남자도, 형이 데려온 여자를 흠모하던 그 남자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버리러 유원지에 가는 그 여자도 이 소설에선 동화의 소재로서 현실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상큼한 맛을 원했지만 사실은 씁쓸하기만한 능금을 한 입 가득 베어문 느낌이다. 근데 그 능금이란 게 술을 담가 먹으면 빛깔도 맛도 최고가 되는 마법같은 과일이다. 능금주 같은 소설들이 지금 나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