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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 박상우 산문집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혼자 길을 떠나는 이유는 망상자아를 버리기 위해서이다. 달리 말하면 근원자아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자아를 만나고 싶고, 진정한 자아로 살고 싶다는 갈망이 길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로 온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은 욕심이 아니다. 그 완전한 충만, 완전한 하나, 완전한 혼자의 상태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은 과일의 씨앗처럼 잘 여문 고독에 익숙해지고 고독과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고독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끝없이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그래,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어쩌면 외롭다는 것은 우리가 이 생애에 태어나 죽는 그 순간까지 마음에 이고가야 할 하나의 산이 아닐까 한다. 매순간 사람과 부딪치며 살아가면서도 마음 한편에 내재되어 있는 고독, 외로움에 대한 근원적인 만병통치약은 없는 게 아닐까. 다만 스스로 이러한 감정에 얽매이거나 동요하지 않기 위해 저마다 다른 일에 힘을 쏟으며 살아가는 듯하다. 자신을 조금 더 내세우고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모습은 만족감으로 돌아오기보다는 저자의 말대로 세파에 대응하기 위한 투구와 갑옷을 걸치고 허세를 부리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홀연히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자가 부럽기도 하고 마음은 온전히 바라고 있었는지 모를망정, 두려움이 앞서 발 한번 내딛지 못한 것이 이내 후회스럽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심신을 위해 전국의 각지를 돌며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곳에서 길을 찾고 온전한 충만함을 느끼고 돌아온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분주해지고 만다. 어떤 확고한 목적을 위해 떠나는 것도 좋겠지만 카메라 하나 들고, 사뿐한 발걸음으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떠나는 여정 또한 분명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발길이 닿은 곳에는 저마다의 추억과 일상과 기억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의 지난날의 한 때를 떠올리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이내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날, 그 시간들은 이제 기억 한 편에서 꺼내 보아야 할 추억 앨범이 된 것이다. 각각의 장소를 여행하며 그 곳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니 독자들은 간접적이나마 저자의 마음이 행하는 곳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내 떠나고 싶어진다. 저자가 여행한 곳 중 단 한 곳인 대관령, 지난겨울 친구들과 아주 잠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눈이 10cm이상 쌓인 곳에서 발걸음조차 떼기 힘들었던 그 때가 대비되어 떠오르더라. 저자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그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세상을 살다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대관령으로 간다. 그곳은 오대산처럼 나를 되찾기 위해 걸을 수 있는 지형과 지세가 아니다. 다만 내다보고 관망할 수 있는 산마루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관령에 가면 나는 차를 몰고 쉼 없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닌다.(중략) 길을 잃고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대관령은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전망을 한다고 해서 금세 길이 찾아지는 건 아니다. 길을 잃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다시 길을 잃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길이 되게 만드는 특이한 트레이닝 코스를 대관령이 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p40』
작가는 이러한 여행을 통해 하나의 소재를 만나고 이야기를 그린 것이리라. 저자의 여행지 그곳에서의 이야기와 그 어느 때보다도 솔직 담백하게 들리는 이야기들은 그 또한 우리와 다름없는 하나의 인간임을 보여준다. 인생에서 장애물 하나 없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없듯이 그 역시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서 갖은 암초와 만나고 이를 이겨내고 또 다른 생각으로 극복하고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적으로‘말이 무리지어 바다 위를 달리는 형상을 닮았다는’말무리반도라는 곳은 꼭 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의 소설도 읽어보고 말겠다는 생각과 함께.
여행은 인생이라는 긴 행로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있지만 누구나가 홀로 걸어야 하는 길, 묵묵히 그 길을 따라 걸어 나가다 보면 그 끝엔 새로운 희망과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는 것! 오직 나만 생각하고 나와 얘기하다보면 결국 못 만날 것 같은 진정한 자아와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몸도 마음도 휴식이 필요할 때 어디로든 떠나보라. 아니 떠나자. 언젠가는 저자처럼 곳곳의 여행지에서 느낀 사유의 기록을 꼼꼼히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혼자일 때 가고 싶은 곳, 내가 나를 부르는 그리운 그곳... 나만의 장소를 찾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