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토록 읽는 내내 유쾌하고 통쾌한 웃음을 연발시키는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완득이! 이름부터가 참 정겹지 않은가. 정녕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 소설 속의 주인공 완득이가 살고 있는 열일곱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시도해볼 수 있고 그 이상의 꿈을 가슴 안에 품어볼 수 있는 때가 아니던가. 비록 모두가 인정하는 정형화된 이미지의 모범생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 아래에 있는 인물이니 더 없이 행복한 소년이다.
『그래, 나는 한 번도 내 입으로 아버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면 그 놀림이 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향하게 되리라는 걸 너무 잘 아니까. 이 세상이 나만 당하면 돼, 해서 정말 당당해지는 세상인가? 남이 무슨 상관이냐고? 남이 바글바글한 세상이니까! 호킹 박사처럼 세상에 몇 안 되는 모델을 두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1등만이 특별한, 나머지는 1등의 언저리로 밀려나 있어야 하는... 내 아버지는 호킹 박사 같은 1등 대접을 원하는 게 아니라, 높기만 한 지하철 손잡이를 마음 편하게 잡고 싶을 뿐이다. 떳떳한 요구조차 떳떳하게 하지 못하게 요구해야 하는 사람이 내 아버지다. -p138』
완득이가 자라온 성장 배경은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다. 소위 평범한 가정 안에서 두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자란 여타의 아이들과 달리, 그는 자신을 낳아준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인 엄마에 대한 궁금증조차 이제껏 아버지에게 묻거나 종용하지 않았다.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지능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춤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삼촌을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완득이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마저 너무나 정감 있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나는 아버지를 숨기고 싶은 게 아니라, 굳이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거였다. 비장애인 아버지는 미리 말하지 않아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장애인 아버지를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상관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숨긴 자식이라며 듣도 보도 못한 근본까지 들먹인다. 근본은 나 자신이 지키는 것이지 누가 지켜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근본을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좀 있어 보이게 비웃을 수 있으니까. -p197』
작가는 현재 우리 주변 언저리에서 방황하고 있을, 그 어떠한 관심이라도 필요한 십대 청소년들에 대해 조금 더 깊은 보호와 사랑의 뒷받침이 필요함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입시만을 종용하고 1등이 아니면 하나의 실패한 전락자로 평가해 버리는 현실에서 다른 꿈, 다른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응원을 보내줄 수 있을까. 우리 청소년들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과연 제대로 된 인식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멈춰버린 동네에서 내가 움직인다. 전에는 나만 멈춘 것 같았는데 지금은 나만 움직인다. 느낄 수 있다. 나, 대회에 나간다. 나 지금 스텝 바이 스텝 중이다.-p126』
그 외롭고 힘든 두 갈래의 길 앞에 더 없이 소중한 사람들이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부성애 가득한 아버지와 평소 티격태격하지만 더 없이 정감 있는 담임선생님 똥주, 그리고 부잣집 딸이자 모범생인 윤하라는 여학생까지. 따스한 사람들이 곁을 지켜주고 있으니 비록 공부는 뒤떨어지지만 두 주먹만은 센 우리의 열혈청년 완득이가 못해낼 일이 그 무엇이랴. 킥복싱을 시작으로 점차 자신의 목표 의식과 하나의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얼마나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자식한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지 모르겠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 잘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과 결혼해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다. 똑같이 가난한 사람이면서 아버지 나라가 그분 나라보다 조금 더 잘산다는 이유로 큰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한국인으로 귀화했는데도 다른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받는 그 분이, 내가 버렸는지 먹었는지 모를 음식만 해놓고 가는 그 분이, 개천 길을 내려간다. 몸이 움직인다. 내 몸이 미쳐서 움직인다.-p149』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 더 없이 소중한 어머니라는 존재의 새로운 인식은 얼마나 큰 힘과 삶의 위로가 되었을지,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난보다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자식을 버리고 떠나야했을 엄마의 심정을 열일곱 살의 소년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오죽했으면 자식을 두고 떠났을까마는, 외국인 여성으로 머나먼 타국에 와 고생했을 그녀의 인생 또한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몸은 떠나도 마음은 한시도 자식 곁을 떠나지 못했을 엄마의 심정이 전해져 가슴이 아프더라. 늦었지만 엄마와의 고리를 다시금 형성할 수 있었던 데에도 담임 똥주의 역할 또한 컸으리라 생각하니, 이 선생 참 보면 볼수록 괜찮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랑스러운 남편이었으면 했어요. 내가 떠났어요. 이상한 춤이나 추면서 남한테 무시당하며 사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완득이한테는 미안했지만 당신한텐 미안하지 않았어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떠났다고요! 이 여자 저 여자 아무나 손잡고 춤추고, 아무나 당신을 만지고... 말도 안 통하는 이방인 엄마보다 한국인 아빠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p169』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청소년 시기에 겪을 수 있는 자아에 대한 관념과 방황, 갈등 그리고 꿈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주변부에는 가난을 넘어 끊어질 수 없는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 그 소중함을 가장 의미 있게 그리고 있는 듯하다. 또한, 확고히 정립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와 더불어 소외된 이웃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함을 넌지시 전하고 있다. 그렇다. 배만 부르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없어도 서로의 아픈 부분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 우리 시대에 필요한 보석 같은 존재감이 아닐까. 이 소설의 호흡은 전체적으로 쉼 없이 빠르게 읽혀진다. 이것은 읽을수록 독자들이 공감하는 바가 커짐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거침없이 솔직하게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유쾌함 속에서도 가슴 찡한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는 성장소설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이가 읽어보아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