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
이민진 지음, 이옥용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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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으로부터 십 여 년도 더 전에, 둘째 이모네 가족 모두가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가셨다. 그 당시에는 이민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얼굴을 마주하고 살던 이들이 먼 타국으로 떠난다는 사실만이 그저 하염없이 슬프게 느껴졌다. 평생을 몸담고 살아왔던 나의 조국, 나의 근거지를 떠나 낯선 타지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녹록한 일인지를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안다. 더구나 타지에서 매일 마주해야할 이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와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막상 부딪친다고 해도 그들의 삶의 반경 모두를 이해하고 그에 적응하는 데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더구나 그 길에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조국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끊이지 않는 보고픔이리라. 




이런 이민자들에게 있어서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그녀의 삶의 모습은 가장 선망하는 삶의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어린 나이에 미국 사회에 편입되면서 겪은 갖은 경험들을 소설로 녹여내 보여주기에 그녀의 자전적인 삶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써 그 넓은 미국 땅에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분명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편협한 시각의 차이를 넘어서야 했을 것이고 피와 땀과 그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했을 지도 모른다. 누구나 인정해줄 수 있을 만한 성공적인 케이스, 그 틀 안에 나를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당연시하고 있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하는데 하물며 낯선 타국에서 인종의 벽, 계층의 벽은 얼마나 허물기 어려운 산이겠는가. 




우리 이모 또한 이민을 가고 4~5년 동안은 그 곳 사회에 자리를 잡기 위한 갖가지 노동과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동안은 건강에도 이상이 생기실 만큼 쉴 틈 없이 일하며 정신력으로 살아오셨기에 초반보다는 조금 더 안정된 삶을 살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 케이시 한, 그녀 부모님의 입장 또한 이 부분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자신의 두 자녀가 타지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을 담아야 함을 알고 있기에 부모와 자식 간에 피할 수 없는 논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세계어디에서든 그 사회가 안고 있는 가치관과 시각의 차이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이 성공한 케이스의 한 모습으로 살아가려면 갖가지 갈등과 편견의 벽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러한 난관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이겨내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아닐까.




나름대로 모두가 인정하는 명문대학을 나와 그녀 또한 모두가 꿈꾸는 상류사회로의 첫 발을 내딛은 것 같았지만 그녀가 실로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디서나 생존을 위한 사투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숨길 수 없는 진실한 삶의 면모를 엿보게 될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두께의 책이지만 그 사회, 그 계층에서 숨죽여 어제도, 오늘도 살아가고 있을 많은 이민자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어 큰 공감을 이끌어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성공하는 삶을 꿈꾼다. 성공의 잣대가 무엇인지 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안다면, 매일을 사는 우리의 삶의 태도 또한 변화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높은 명예직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또한 성공의 표상일 수 있겠지만 내가 정말 진실로 하고자 하는 바에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 또한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건 우리는 이루어낼 수 있다. 비록 여타의 어두운 시각의 소굴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지 이민자들만을 대변하고자 한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조금 더 높이 날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충분히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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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
박종인 외 지음 / 시공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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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저 아무런 걱정도 번민도 없는 얼굴, 해맑은 눈망울과 치아를 드러내며 살며시 입 꼬리를 올린 채로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를 따라 짓게 되었다. 그런데 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아이들의 모습 속에는 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현실의 잔뿌리들이 녹아 있는 듯해 마음 한편으로는 그저 더할 수 없이 아프게 또 슬프게 느껴지더라. 더구나 허구를 곁들여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여타의 소설과 다르게 이 책은 직접 조선일보의 기자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며 두 눈으로 가슴으로 만난 아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더욱 가슴 저리게 다가오는 것일 게다.




아직도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계 곳곳에는 사람으로서 누리고 살아야 할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아니, 그러한 인권에 대한 인식조차 되어 있지 않은 어른들과 그로 인해 참담하고 가혹한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보호받지 못한 어린아이들의 현 실상을 놀랍도록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들어 이러한 세계 각국의 아픈 잔재들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사람들,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더욱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 정말로 순수하고 깨끗한 천사! 아이들은 미래의 주역들이라고 하는데, 취재팀이 만난 아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남겨진 아픈 그림자일 뿐이었다. 주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돌며 가난 때문에 제때 배우고 공부해야 할 나이의 어린 아이들이 갖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허기진 배를 움켜잡은 채 여기저기 그저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전쟁의 폐허 속에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목숨을 잃는 처참한 광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치의 과장도 없이 우리가 이렇게 먹고 놀고 떠들고 행복을 이야기할 때, 그 어린이들은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매일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음을 말이다. 정말이지 같은 하늘 아래, 이토록 가혹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그들에게 짊 지어지다니 너무나 안타까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떤 말도 쉽게 할 수가 없다. 그저 가슴 아파서. 




이전에도 기아 프로그램을 통해 혹은 여타의 다른 책들 속에서 그들 앞에 놓인 현실에 나 또한 가슴 저림을 느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내가 아닌 누군가 그들에게 손 내밀어줄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런 나의 안타까움 뒤로 그들에게도 꿈과 희망이 아직 존재함을 보았다. 절망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볼 수 있다면 그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리라. 공부하고 싶어서 먹고 싶어서 마음 편히 잘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외쳐대던 아이들, 그들에게도 행복을 위한 꿈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삶. 그 아이들의 고단한 삶의 자리에 내 손길을 하나 더해주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읽다보면 구구절절 가슴 아파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그렇지만 손 놓고 울고만 있는 다고해서 그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놓여 진 삶의 자리에 작은 보호의 울타리만이라도 쳐주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지금 당장은 그들 삶에 먹구름만이 잔뜩 드리워져 있지만 무엇이 되고 싶고 그로 인해 새 시대의 희망을 이루고 싶다는 바램, 작지만 원대한 그들의 꿈이 하루 빨리 도래되어 지금의 웃음을 만연하게 띌 수 있는 날이 오길..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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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샨보이
아사다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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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아사다 지로의 책은 처음 접한다. 그의 이름은 이전에도 익히 들어 낯설지 않았지만 말로만 전해 듣던 그의 이야기가 실로 궁금했다. 사실 이 책이 단편인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읽다보니,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짧게 전하고 있음을 알았다. 사실 단편은 그다지 즐겨 읽지 않는 터라 난감하기도 했지만 워낙 여러 면모에서 인지도 있는 작가라기에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참 괜찮은 이야기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음을 알았다. 뭐 눈에 띄는 굴곡이나 큰 접점이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 일상의 사람들과 삶의 모습을 잔잔히 보여주는 듯하다.




7편의 단편들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삶의 과정 중에 생긴 마음의 상처, 아픔을 간직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 타인으로 인해 혹은 현실의 갖은 상황으로 인해 마음에 보이지 않는 짐을 지게 되기도 하고 이로 인해 크나큰 감정적인 아픔을 겪게 된다. 항상 행복하고 가슴 충만한 느낌만을 안고 산다면야 좋겠지만 혹여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삶의 언저리마다 숨어 있는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고 말 것이다. 




가슴 안에 고스란히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척, 타인에게는 나의 진짜 내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드러내버리면 마치 나의 치부가 밝혀지는 것 같아서 그저 닫아놓고 다시금 생채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내 모습을 본다.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실로 나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이를 닫아놓는 것보다는 열어 자연스럽게 치유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야만 우리는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내 인생의 향방을 오로지 나의 뜻대로 정하고 앞만 보고 나아갈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마는 매일을 살아가다보면 이는 결코 나의 의지와 다르게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수많은 난관과 굴곡이 우리의 현실 앞에 놓여 져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창녀로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슬픈 인생,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를 가진 맹인의 안타까운 사랑,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와야만 했던 어머니의 모정까지 구구절절 그들의 사연과 삶의 모습에 애잔한 마음만이 감돈다. 그들의 어두운 내면을 무엇으로 위로해줄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나의 어깨를 지그시 잡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듯 그들의 어깨를 그저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조금은 쉬어가라고...




작가들은 현실을 토대로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그러하기에 독자들은 그들이 그리는 이야기를 통해 나의 모습을 보고 다시금 인생이라는 항로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래, 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 그저 갈퀴에 걸려 넘어지고 아파하고 또 쓰러질지언정 오늘의 삶에 녹아있는 진한 애정과 사랑, 이를 기억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단편을 읽다보면 조금 더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이 또한 독자들 저마다의 생각의 차이, 느끼는 바에 따라 다르리니.. 이것이 진정한 단편 소설의 매력이리라. 아사다 지로와의 첫 번째 만남, 그다지 나쁘지 않다. 아니 잔잔한 호수처럼 다가왔다. 그의 이전 작품을 조만간 또 찾아 만나보리라는 조심스런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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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y 2008-05-13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아사다 지로의 책이었군요. 이주의 리뷰 선정된 걸 축하해요.^^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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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토록 읽는 내내 유쾌하고 통쾌한 웃음을 연발시키는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완득이! 이름부터가 참 정겹지 않은가. 정녕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 소설 속의 주인공 완득이가 살고 있는 열일곱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시도해볼 수 있고 그 이상의 꿈을 가슴 안에 품어볼 수 있는 때가 아니던가. 비록 모두가 인정하는 정형화된 이미지의 모범생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 아래에 있는 인물이니 더 없이 행복한 소년이다.




『그래, 나는 한 번도 내 입으로 아버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면 그 놀림이 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향하게 되리라는 걸 너무 잘 아니까. 이 세상이 나만 당하면 돼, 해서 정말 당당해지는 세상인가? 남이 무슨 상관이냐고? 남이 바글바글한 세상이니까! 호킹 박사처럼 세상에 몇 안 되는 모델을 두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1등만이 특별한, 나머지는 1등의 언저리로 밀려나 있어야 하는... 내 아버지는 호킹 박사 같은 1등 대접을 원하는 게 아니라, 높기만 한 지하철 손잡이를 마음 편하게 잡고 싶을 뿐이다. 떳떳한 요구조차 떳떳하게 하지 못하게 요구해야 하는 사람이 내 아버지다. -p138』




완득이가 자라온 성장 배경은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다. 소위 평범한 가정 안에서 두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자란 여타의 아이들과 달리, 그는 자신을 낳아준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인 엄마에 대한 궁금증조차 이제껏 아버지에게 묻거나 종용하지 않았다.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지능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춤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삼촌을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완득이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마저 너무나 정감 있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나는 아버지를 숨기고 싶은 게 아니라, 굳이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거였다. 비장애인 아버지는 미리 말하지 않아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장애인 아버지를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상관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숨긴 자식이라며 듣도 보도 못한 근본까지 들먹인다. 근본은 나 자신이 지키는 것이지 누가 지켜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근본을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좀 있어 보이게 비웃을 수 있으니까. -p197』




작가는 현재 우리 주변 언저리에서 방황하고 있을, 그 어떠한 관심이라도 필요한 십대 청소년들에 대해 조금 더 깊은 보호와 사랑의 뒷받침이 필요함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입시만을 종용하고 1등이 아니면 하나의 실패한 전락자로 평가해 버리는 현실에서 다른 꿈, 다른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응원을 보내줄 수 있을까. 우리 청소년들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과연 제대로 된 인식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멈춰버린 동네에서 내가 움직인다. 전에는 나만 멈춘 것 같았는데 지금은 나만 움직인다. 느낄 수 있다. 나, 대회에 나간다. 나 지금 스텝 바이 스텝 중이다.-p126』




그 외롭고 힘든 두 갈래의 길 앞에 더 없이 소중한 사람들이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부성애 가득한 아버지와 평소 티격태격하지만 더 없이 정감 있는 담임선생님 똥주, 그리고 부잣집 딸이자 모범생인 윤하라는 여학생까지.  따스한 사람들이 곁을 지켜주고 있으니  비록 공부는 뒤떨어지지만 두 주먹만은 센 우리의 열혈청년 완득이가 못해낼 일이 그 무엇이랴. 킥복싱을 시작으로 점차 자신의 목표 의식과 하나의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얼마나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자식한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지 모르겠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 잘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과 결혼해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다. 똑같이 가난한 사람이면서 아버지 나라가 그분 나라보다 조금 더 잘산다는 이유로 큰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한국인으로 귀화했는데도 다른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받는 그 분이, 내가 버렸는지 먹었는지 모를 음식만 해놓고 가는 그 분이, 개천 길을 내려간다. 몸이 움직인다. 내 몸이 미쳐서 움직인다.-p149』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 더 없이 소중한 어머니라는 존재의 새로운 인식은 얼마나 큰 힘과 삶의 위로가 되었을지,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난보다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자식을 버리고 떠나야했을 엄마의 심정을 열일곱 살의 소년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오죽했으면 자식을 두고 떠났을까마는, 외국인 여성으로 머나먼 타국에 와 고생했을 그녀의 인생 또한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몸은 떠나도 마음은 한시도 자식 곁을 떠나지 못했을 엄마의 심정이 전해져 가슴이 아프더라. 늦었지만 엄마와의 고리를 다시금 형성할 수 있었던 데에도 담임 똥주의 역할 또한 컸으리라 생각하니, 이 선생 참 보면 볼수록 괜찮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랑스러운 남편이었으면 했어요. 내가 떠났어요. 이상한 춤이나 추면서 남한테 무시당하며 사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완득이한테는 미안했지만 당신한텐 미안하지 않았어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떠났다고요! 이 여자 저 여자 아무나 손잡고 춤추고, 아무나 당신을 만지고... 말도 안 통하는 이방인 엄마보다 한국인 아빠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p169』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청소년 시기에 겪을 수 있는 자아에 대한 관념과 방황, 갈등 그리고 꿈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주변부에는 가난을 넘어 끊어질 수 없는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 그 소중함을 가장 의미 있게 그리고 있는 듯하다. 또한, 확고히 정립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와 더불어 소외된 이웃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함을 넌지시 전하고 있다. 그렇다. 배만 부르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없어도 서로의 아픈 부분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 우리 시대에 필요한 보석 같은 존재감이 아닐까. 이 소설의 호흡은 전체적으로 쉼 없이 빠르게 읽혀진다. 이것은 읽을수록 독자들이 공감하는 바가 커짐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거침없이 솔직하게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유쾌함 속에서도 가슴 찡한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는 성장소설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이가 읽어보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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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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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감사해야 할 일은 참으로 많다.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향유하며 살아간다고 해서가 아니라 그저 오늘 이 시간, 건강하게 웃고 이야기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인 것이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어떤 장애를 안고 태어나거나 어떤 사고로 인해 후천적인 아픔을 겪게 되지 않는다면 살아가는 데 전혀 거리낌 없이 내 건강한 두 팔과 다리로 생의 매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무엇이랴.




책의 표지에 그려진 한 인물에게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쉽게 발설할 수 없는 어떤 아픔과 상처를 다 가지고 있는 듯 서글퍼 보이는 눈망울, 그래서일까. 보고 또 보게 되더라.  이 책은 조금은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열일곱 살의 막스라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야, 정말이지 딱 열일곱 살의 꿈 많았던 교복 입은 소녀로 슝~하니 떠나고 싶은데 뭐든 하고 싶은 일이 많을 그 나이에 막스의 겉모습은 누가보기에도 주름살 가득한 70살의 노인으로 비춰질 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노인의 외모를 갖게 되었지만 사실 그의 정신은 그 또래의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이 기구한 운명 앞에서 그가 인내하고 견뎌내야 했을 많은 일들이 그저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모든 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생의 길고 긴 숭고만큼이나 성숙되고 점차 나이 먹어가듯이 그는 이와 반대로 점차 어려지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니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또 새로운 시각으로 생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삶을 살아나가는 그 여정은 누구나에게 똑같은 것이니까.




그런 막스에게도 순진무구한 사랑의 설레임이 찾아오지만 자신의 외모로 인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운명에 서고 만다. 사랑도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기에는 첫 만남의 시작은 결코 용이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서로에 대한 마음의 문을 자연스럽게 열게 된다. 다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 쉽게 그 손을 잡지 못하는 막스. 타인에게 있어서 당연시 되는 일들이 그에게는 왜 그토록 큰 소원이자 절절함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그저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이와 한 평생 두 손 꼭 맞잡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이 쉽게 허용되지 않았기에 그에겐 모든 게 특별한 희망에 불과했으리라.




그럼에도 자신이 사랑한 여인과 잠시나마 함께 할 수 있었고 서로의 곁을 지키며 짧게나마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기에 그 자체로 그에겐 행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불행한 삶이란 사실 불행하다는 우리의 사고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내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이 아무리 가파르고 높다하더라도 어차피 누구에게나 똑같이 허용된 삶의 시간, 그 안에서 우리는 나만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작가의 독특한 허구성이 빛나는 작품이었다. 하나의 생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가 특별하며 축복받은 존재들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 스스로가 이를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치유하고 또 받아들이며 타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의 나 또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행복하다.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면, 지금 내 옆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참 괜찮은 책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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