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황혼에서 새벽까지> 하고 비슷한 설정이라고 들었는데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영화 중반에 뱀파이어가 등장하려고 분위기를 잡을 때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친하게 지내던 저들이 표변해서 서로를 물어뜯겠지. 어떤 피칠갑이 펼쳐질라나.하는 심정이었다. 뭐 영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패밀리'의 연대감을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등장인물들이 배신하면 나쁜 놈이지, 하고 약을 친뒤 피를 튀기는 장면은 영화지만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한바탕 난장판이 벌어진 후 자막이 올라오나 싶더니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이 심란한 영화를 순식간에 애잔하고 서글픈 서사로 바꿔버린다. 이제까지 전개됐던 막가파 설정(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 평단 반응은 '막가파 패스티쉬' 였다.)이 하나의 은유와 함의로 변해버린다.  내가 떠올린 것은 <생쥐와 인간>(존 스타인벡) 의 장면이었다. 


"조지는 감탄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에 무슨 구경거리가 있든지, 서커스가 오든지, 야구 시합이 있든지, 그밖에 무슨 일이 있으면…………."

캔디 노인이 찬양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냥 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조지가 말을 이었다.

"누구한테도 물어볼 필요가 없어. '구경이나 가지' 라는 한마디로 우린 거리에 나갈 수 있다구. 우유를 짜고 닭 모이를 던져주고 나서 우린 구경을 하러 나가는 거야.“   


마치 어떤 판사가 죽기 전에 회심해서 전체 인생이 바뀌었다는 설정처럼 마지막 장면이 전체 영화의 분위기를 소급해서 바꿔 놓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문라이트>가 처음 나왔을 때 네티즌 비평 중에 흑인이 백인들 영화를 그럴 듯하게 흉내내서 상을 받았다 라는 식의 비평이 있었다. 즉 원본을 충실하게 모사한 짝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블랙팬서> 가 나왔을 때 흑인의 주류 히어로 첫 진입? 같은 반응이 기억난다. 여기에 깔린 전제는 결국 기준은 백인이라는 것이고 흑인이 백인이 세운 기준을 만족시켰다고 감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로 흑인들이 백인 컴플렉스를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세련된 영화다. 단 울나라 기독교인이라면 약간 불편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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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조건 - 융 심리학으로 보는 친밀한 관계의 심층심리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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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의 목표는 환자가 지성화intellectualization와 합리화 rationalization 같은 저항의 반동을 넘어 미지의 영역으로 향함으로써 온전한 깨달음이 주는 고통과 공포를 발견하는 동시에, 자신이 거기서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삶이란 완전히 부조리하고 예측 불가능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전지전능하지 않음을,우리에게 마술 같은 수준의 궁극적 자기방어가 존재하지 않는 한 때로는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아픔을 겪어야 함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환상의 대상뿐아니라 환상과 망상 자체를 두고 슬퍼하고 비통해하고 나면 망상 없이 비교적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간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덧없고도 소중한 경험임을, 우리가 환상을 갖지 않고 살아가려면 자기 삶의 의미를 직접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대와 요구가 들어섰던 자리를 희 - P157

망으로 채워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수동성의 자리에 적극성이 들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돕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넓히고 성장시키는 쪽으로 희망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슬픔도 기쁨도 더 풍부하게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
어릴 적 잃어버린 에덴동산으로 통하는 문은 이미 닫혀버렸으며 불칼을 든 천사들이 그 문을 막고 있음을, 우리와 이어져 있던 어머니는 영원히,영원히 우리에게서 떠났음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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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어떻게 살아야 할까 - 삶의 길목 위에서 찾은 해답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미정 옮김 / 북아지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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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책은 왜 한국어판 제목이 따로 노는지 모르겠다. 원제는 <Living Between Worlds: Finding Personal Resilience in Changing Times>. 굳이 오십이 아니라도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 전형적인 예를 들자면 잘 다니던 대기업 퇴직하고 산티아고로 무작정 떠나는 사람? 들에게 빨리 떠나라고 뽐뿌질을 하는 책이다. 요즘 청년들 희망사항 1순위가 대기업이라는 게 약간 낯설다. 산티아고로 떠나는 게 더 이상 쿨하게 보이지 않나 보다. 예전 강신주 다상담 테마 중 하나가 진로문제, 회사문제였었는데(그 때는 대기업노예같은 뉘앙스였는데.) 요새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이라랄까,시대가 변했다. 뭐 그런 느낌이다. 홀리스 책에서 나오는 공통 테마는 이 책에서도 여전한데 다른 저서들에 비해 아마 가장 가독성이 좋고 내용도 알찬 거 같다. 번역도 괜찮다. 더군다나 심층심리학에 대한 소개도 하고 있어 맛보기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인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저자는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 사회적인 존재를 넘어서 의미를 찾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코웃음을 치겠지만 저자는 의미를 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의미의 정의가 뭐냐부터 논쟁이 될 수 있지만 저자가 묘사하는 분위기는 자신이 더 큰 그림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에 있다는 느낌, 삶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이다. 혼이 의미하는 것은 주술이나 무속이 아니라(영어로는 프시케다.) 무의식의 차원을 넘어 근본적인 나(Self)’가 있다는 심층심리학의 인간상이다. 이 근본적인 나는 이미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꿈이나 신경증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기존 사회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우리는 이런 신호를 외면한다. 저자가 여기서 드는 주된 방어기제는 두려움과 무력감이다. 이런 면에서는 이 책의 주제는 아니타 무르자니의 <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산티)>와 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는데 아니타 무르자니는 에고와 더큰나를 구별하지 않는다. 반면 저자에게 에고는 더큰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소명같은 느낌이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명제는 기만적이다. 에고는 편한함, 익숙함, 안정을 원하지만 소명을 찾는 과정에서 에고는 고통을 느끼는 대신 의미를 찾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행복은 부산물처럼 다가올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조셉 캠벨의 “FOLLOW YOUR BLISS”의 심층심리학 버전이다. 캠벨은 자신의 인생사를 예를 들며 자신만의 블리스를 쫓아간다면 삶은 저절로 제 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화와 인생,갈라파고스) 저자는 우리 모두에게 다이몬이 있으며 내면의 메시지, 개인적 권위를 신뢰하라고 말한다. 아마도 프로이트가 융과 결별한 이유가 이런 신비적요소 때문이 아니었을까. 30대에 캠벨의 말을 듣고 그럴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도 그건 래퍼런스였지 그 말을 적극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다이몬이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나? 내가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하면 그건 오만때문이라고 퉁칠 수 있다는게 문제다. 뭐 어쨌든 이 각자도생의 시대에 자신만의 주사위를 굴리라고 말하는 책이다. 읽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고 답답한 기분이 사라진다. 물론 실천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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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나와 이별하기로 했다 - 융 심리학에서 발견한 오래된 나로부터의 자유
제임스 홀리스 지음, 이정란 옮김 / 빈티지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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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강신주의 다상담 시절에 가장 자주 나왔던 질문 중 하나가 진로 문제였던 것 같다. 길을 잃은 불쌍한 어린 양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강신주는 하나의 결정을 하면 또다른 갈림길이 나오니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부담을 갖지 말라는 정도의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강신주 다상담의 융심리학 버전 같다. 혹은 조셉 캠벨의 경구 "Follow your Bliss" 의 융심리학 버전이다. 기본적인 그림은 우리 모두 내면에는 자신만의 길내지 소명같은 것이 있는데 부모의 영향 같은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그러한 소명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고, 설사 자각했다 하더라도 두려움과 무력감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하는 일은 자신의 소명을 따르라고 부드럽게 권유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신의 반평생을 돌아보며 악몽에 시달리는 중년이나, 회사에서 야근으로 시달리면서 묻어둔 꿈을 떠올리며 회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타겟이다. 저자가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데 주로 드는 장애물은 두려움과 무기력이고, 이에 대항해서 내세우는 덕목은 통찰력,용기, 인내이다. 이 책이 통상적인 자기계발서는 아니라서 <두려움과 무력감을 극복하는 단계별 방법> 같은 챕터가 따로 있지는 않다. 그저 두려움 때문에 과거에 포기한 것들을 다시 헤아려 보라고,우리에게는 엄청난 가능성과 회복력이 있다고 충고할 뿐이다. 마치 강신주가 <감정수업>에서 했던 말처럼 우리가 옳은 선택을 했을 때 감정이 우리를 지지해 줄 것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우리의 길을 알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억압하고 외부의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외면하는 것 뿐이다. <두려움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샨티) 같은 아니타 무르자니의 주장과도 비슷한 느낌인데, 대신 아니타 무르자니는 에고와 더 큰 자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반면 저자는 에고와 다른 내면의 자율적 지성이 있다고 말한다. 에고는 더 큰 소명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할 것이다. 뭐 다이몬 같은 걸까? 나도 30대 땐 다이몬 같은게 있으면 좋겠다고, 차라리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이몬이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현실은 훨씬 단순하며 어쩌면 냉혹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다이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자는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의미라고, 의미를 위해 고통을 견뎌야 하며, 그런 과정을 밟을 때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행복은 가끔씩 찾아올거라고 말한다. 즉 행복을 타깃으로 하는 것은 처음부터 과녁을 잘못 찍은 것이라는 말이다. 음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자신을 뒤돌아보면 나의 한쪽에는 여전히 세속적 가치-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집, 근사한 이성, 맛있는 음식 등등. 행복 대신 의미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행복을 한번이라도 겪어 본 사람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란 존재 안에 과연 진정한 자기 자신다이몬 같은 내면의 울림이 있는 걸까? 아니면 다소 물질주의적인 관점에서 인간이란 자신의 존재와 생명을-그게 육체적인 존재이든, 정신적인 존재이든, 사회적인 존재이든- 유지하면 만족하는 존재이고, 그 과정을 삶이라고 부르는 걸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자가 제시한 그림은 신기루처럼 느껴질 것이다. 저자는 두려움과 무기력을 내면의 문제로, 스스로가 돌파해야 하는 과제로 서술하는데, 이것이 과연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기만 한 걸까. 개인을 옥죄는 두려움과 무기력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이고 저자의 관점은 오히려 문제를 호도하는 것 아닐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시선을 내면이 아니라 밖으로 돌리는 것 아닐까. 어쨌든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각각의 꽃이 풍성하게 핀 꽃밭의 이미지가 저자의 이미지다. 모든 꽃이 각각 다르고, 아름답고, 자신의 달란트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계시적이고 차분한 문장이 힐링 효과를 준다. 반면 추상적인 단어가 많이 나오고 여운만 풍기는 느낌의 서술에 성미 급한 사람은 읽다가 책을 집어 던질 수도 있다. 번역의 문제인지 문맥이 맞지 않는 부분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300페이지 남짓한 책을 한 챕터씩 매일 읽으라고 저자는 권한다. 무려 21일이 걸린다. 어쩌면 저자가 원하는대로 한 문장씩 곱씹어 읽으면 다른 느낌이 날지도 모르겠다.


ps 제목은 아무래도 헛발질이다. 원제 living a examine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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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는 이제 나와 이별하기로 했다 - 융 심리학에서 발견한 오래된 나로부터의 자유
제임스 홀리스 지음, 이정란 옮김 / 빈티지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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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정말 대단한 아이란다. 너는 진정한 네 자신이 되기 위해 이세상에 태어난 거야. 네가 하는 선택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그 선택의 결과를 항상 잘 따져보도록 해.
나는 나만의 여정을 살고 있으니 네가 나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너는 네 안에 있는 강력한 힘의 원천을 따르도록 해. 네 본능이나 직관, 직감과 같은 것들 말이야. 이것들이 네게 있어 옳은 것은 무엇인지 늘 알려주게 될 거야.
인생은 정말이지 간단한 거야. 네게 옳은 일을 한다면, 그것이 너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에게 좋은 거야. 만약 네게 적절하지 않은 일을 한다면, 그건 너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옳지 않은 일일 거야.
우리는 복제 인간이 아니라 모두가 각기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모든 일에 동의할 수는 없고, 그래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 P231

언제든 이 사실만은 꼭 알아둬.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나는 너를 존중할 거고, 너를 소중히 여길 거야. 그리고 너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항상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렴."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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