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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10월
평점 :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기본적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동의하는 사람일 것이다.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녹색성장과 기술혁신은 "따뜻한 얼음"같이 모순어법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윤, 계급, 시장, 화폐 등을 기본으로 운영되는 자본주의와의 결별임을 주장하는 책이다. 이런 "거대담론"의 타당성을 일반독자가 하나하나 검증하기에는 무리이고 논지를 전개시켜가는 과정에서 깔려 있는 암묵적인 전제에 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저자의 주장을 "청사진"정도로 받아들이는 독법이 유효할 것 같다. 이 책의 요지는 주목받았던 니코페히의 <성장으로부터의 해방> 에 이미 주장된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성장의 압박을 받기 때문에- 성장을 하지 않으면 현상 유지가 아니라 도태된다- '그린 뉴딜' 등으로 생태학적 위기와 성장을 동시에 잡으려고 하지만, 태양광발전 같은 인프라 건설에서부터 또다른 환경파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본주의와의 전면적인 결별만이 생태위기에 대한 해답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의 차별점은 더 나아가 니코페히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마르크스"라는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상황 때문에 "공산주의"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워낙 좋지 않지만, 저자는 후기 마르크스가 "탈성장 코뮤니즘"이라는 담론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탈성장"이라는 단어는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대로 "청빈사상"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 한창 자본주의의 풍족함에 눈뜬 인도나 중국이 할 법한 논쟁이다. 그들은 서구가 풍요의 결실은 다 누린 다음 파티는 끝났다며 청빈을 강요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 저자는 "SUV와 패스트패션, 소고기"보다 "교육,사회보장, 예술"을 가치있게 보는데 책의 호소력이라는 측면을 위해서라도 인간의 욕망과 근본적인 가치관의 전환이라는 부분을 좀 더 짚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어떤 이는 SUV와 패스트패션, 소고기를 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어서 제도적으로 불공정한 경쟁이라도 그 불공정을 고치기 보다는 나 하나는 그 경쟁을 뚫고 '잭팟'을 터뜨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입시제도나 취업시장의 문제점이 지적되면서도 지원자는 사라지지 않고 시스템은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저자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자본주의를 '가치와 결핍'으로 코뮤니즘을 '사용가치와 풍요' 로 연관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중학교 때 으례 한번쯤 들었을 '사용가치'와 '가치'가 이 책에서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로 사용된다. 자본주의의 시장은 공동체가 소유하던 '커먼'(사용가치)를 박탈하여 시장에서 화폐로 구매하여야 하는 희소한 '가치'로 만드는, 결핍을 동인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노동의 소외'와 구성원의 삶의 주도권 상실 등을 언급하고 있다. '커먼"은 수평적, 민주적으로 관리되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인프라 정도의 이미지이다. 저자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커먼을 중심으로 생산체계를 재조직한 "정상형,순환형 경제"가 생태위기를 극복할 대안이라고 마무리짓는다. 여기에 흔한 반론은 "공유지의 비극"인데 여기에 저자는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는 이유는 재화가 상품(사용가치가 아닌 가치)으로 대접받기 때문이라고 맞받아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주의자는 소련을 몰락시킨 인간의 이기심과 비합리성을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하고 움직이는 체제는 이기심을 모두가 따라야 할 규범으로 만든다. 인간의 본성으로 말하자면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결핍을 겪는 이유(돈이 부족한 이유)는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 희소성과 결핍으로 움직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시장을 대체하는 커먼은 구성원들에게 풍요와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안겨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하며 그 예로 바르셀로나의 정책을 들고 있다. 저술가 고병권이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 새가 묶인 쇠스랑을 부수고 펄펄 날아가는 이미지가 연상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커먼을 묘사하는 대목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저자는 현대사회의 구성원은 노예라고 단언하며 노동이 그 자체가 목적인 ,인간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으로 탈성장 코뮤니즘을 내세운다. 각론이 없다고,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지말자. 작은 실천은 아무런 티가 안 날지 모르지만 그런 실천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단, 거대담론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텀블러 사용을 대증요법으로만 써서는 안된다.) 문장과 구성이 간결해서 가독성이 좋다.비슷한 내용의 책으로는 <에너지노예, 그 반란의 시작>,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