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리의 영화 중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재미있었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의 구차함과 찌질함, 그 안쓰러움과 민망함을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같았다. 그 때도 지금처럼 영알못이었기에 두 번을 본 후 이 영화의 주제가 뭘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떠오른 문장은 “행복은 불행을 이해하지 못한다” 였다. 영화는 나이든 노처녀 메리와 단란한 가족을 이루고 사는 톰과 제리를 대비시킨다. 이제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고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메리와 아들의 여자친구와 상견례를 하며 인생의 통과의례를 거치는 노부부의 마지막 대면은, 메리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는 것으로 끝난다. 메리 역을 한 배우 연기가 정말 끝내줬는데 아마 영국아카데미? 여우상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을 대비시키는 이 패턴이 <내 말 좀 들어줘>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악에 받쳐서 매사에 ‘싸움닭’인 언니와 오프라 윈프리를 연상시키는 동생.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정말 아연한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행복은 전혀 오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행복이 아니다.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다정다감하고 똑같이 세파에 힘들어하며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불행은 이런 행복조차 흉내내지 못한다. <내 말좀 들어 줘>에서 언니는 동생에게 가족이 싫다고 털어놓는다. 미운 정 고운 정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싫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처럼 이 영화에도 해피엔딩은 없다. 하지만, 뭐랄까 마이크 리가 한발짝 더 나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극 중에서 동생은 언니에게 말한다. 언니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한다고.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행복과 불행이 딴나라 사람들처럼 멀뚱멀뚱 쳐다봤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너를 이해하진 못해, 그래도 적어도 옆에 있어 줄게. 할 수 있다면 손을 꼭 붙잡아 줄 거야,하고 말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처럼 배우의 연기부터 디테일이 섬세하다. 이 영화는 해변에서 조약돌을 하나씩 뒤집어 본다는 느낌으로 봐야 제 맛이다. 마이크 리 영화 중 <비밀과 거짓말>이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아는데 언젠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