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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평점 :
엄기호: 우리 사회는 '교육 중독'이다. 공부는 가르칠수 있는 것('구경'할수 있는 것, 예를 들면 미적분)과 가르칠 수 없지만 배울 수 있는 것,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할 것이 있는데 (예를 들면 연애)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을 교육시스템에 집어넣어서 오히려 삶을 협소하게 만든다. 삶과 공부를 분리시켜 공부할 때 삶을 유예하게 하니 삶은 미완성일 수 밖에 없다.(하지현의 부연: 법학,의학처럼 요약정리가 중요한 학문도 있지만 사회학이나 물리학처럼 나만의 생각을 만들어내는게 목표인 학문도 있다. ... "그렇게 일부 영역에서만 적용되어야 할 것을 전영역에 걸쳐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죠" ..."굉장히 매끈하게 요약정리해서 정답을 향해 주저없이 돌진하는 형태가 모든 공부의 전형이 되어 있고 그런 식으로 공부해야지만 안심을 하고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죠")-> 이렇게 공부를 정의하면 공부는 산업이 되고 최적화,효율성,완벽주의가 미덕이 된다. 때문에 이런 공부를 경험한 학생은 이후 실패에 취약하고, 유연성 공감능력 등이 부족하게 된다.
동감하지만 덧댄다면: '가르칠 수 없지만, 배울수 있는 것'이라는 표현은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닐까? 그렇다면 제도적인 시스템을 따르던, 따르지 않던 간에'인성 교육'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걸까?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100% 모른다면 엄기호가 말하는 '경험을 통한 배움'역시 불가능한 것 아닐까? 경험을 통한 배움도 그것을 배울 수 있는 기반이 경험을 하는 사람의 내부에 있어야 하고 그 기반을 '교육'이 만들어 내는 것 아닐까?
하지현: 좀 더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통찰. '치킨 게임'과 '군비 경쟁'을 그만두자. 공부로 출세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는데 지금 중산층은 판돈만 계속 올리고 있다. '강남불패'라는 말처럼 10위권의 시장은 여전히 있고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상류층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잃을게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삶의 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다. 오히려 '디투어링'을 권한다. 필요한 것은 학력에 따른 차별감소와 사회복지망 확충 등 사회적인 요소이다.
"지난 백년간의 교육시스템의 정수는 많이 아는 자가 성공하고, 성공한 자는 능력있는 자다. 공부는 효율성을 위해 존재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자는 무능한 자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다., 라는 생각이에요. 개인의 능력문제로 치환해 버리는데, 그것이 공부능력으로 국한된게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가치'로까지 확대되어버린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 이것은 결국 차별과 혐오로 이어진다.
동감하지만 덧댄다면: 마치 '게임이론'처럼 공부가 더 이상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통찰이 역설적으로 계급을 고착시키는 메커니즘을 가져온다는 관점이 있다.(예를 들어 <하류지향>(우치다 타츠루,민들레) ) 하지현의 관점이 오히려 하류지향으로 흐를 가능성은 없을까? <파크애비뉴의 영장류>(웬즈데이 마틴,사회평론)나 <야망계급론>(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오월의봄)에서 묘사되는 엄마들의 치맛바람은 우리나라 빰친다. 교육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플루토라트"(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열린책들)들은 왜 교육과 학벌에 목을 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