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평일색에 주저하다 아이패드로 관람했다. 눈요기할 장면이 없다는 것은 사전정보로 알았고, 키아누 리브스 연기 못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 굳이 극장에 가질 않았다.  <매트릭스>를 처음 본게 대학교 프레쉬맨 때였으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내 기억 속의 <매트릭스>는 사람이 날아다니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쌈마이 정신 플러스 지금 내 눈 앞의 현실이 가상현실일지 모른다는 공각기동대류의 철학적 아우라가 마구 뒤섞인, 패기넘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얼마나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지 3편 개봉전에 각종 게시판에 결말을 예측한 시나리오 유출본이 돌아다녔고, 예상된 결말이 현실과 가상이 꼬리를 무는 순환구조의 결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3편은 건담류의 로봇전쟁물이었고, 당 시 주요평처럼 처음부터 영화적 힘은 빠진 상태로 결말이 났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뒤에 라나로 거듭난 워쇼스키는 잘해도  본전인 작품을, 카리스마가 한물 간 키아누리브스와 캐리앤모스를 데리고 다시 시작했다. 나같은 세대에게는 그야말로 노스탤지어의 부활("노스탤지어는 위안을 주니까")이고, 이들이 과거의 영광을 갉아먹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리뷰에서는 워쇼스키감독이 올드팬들을 배려하지 않고 그들의 추억을 비아냥댔다는 식으로 기술했는데, 영알못인 나로서는 오히려 트랜스젠더 라나 워쇼스키가 정말로 애정을 가지고 매트릭스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한게 아닐까 싶다. 
 
  먼저 감독은 이 영화를 성공시키려면 뭐가 필요한지 안다고 영화 초반 게임디자이너 주드의 입을 빌려 밝힌다. 총격전, 이게 대체 뭔 소리야 하는 설정, 섹시한 가죽옷, 그리고 불릿타임같은 획을 그을 수 있는 장면들,,,,, 알지만 역량부족으로 못한건지 애초부터 뜻이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이후 영화는 이 요소들을 전부 비껴간다. 이 영화의 액션은 예고편에 나오는 액션이 전부다. 액션이란 면에서는 예고편만 보면 영화 전체를 본 것하고 같다. 초반설정은 기발하지만 우울하다. 네오는 그럭저럭 부유하지만 정신과상담을 받으며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추레한 중년이다. 울먹이며 의사에게 약을 달라고 하는 장면에서 같은 경험을 해 본적이 있는 나로서는 네오의 몰락이 직통으로 느껴졌다. (이 장면에서만큼은 키아누리브스의 연기가 그럴듯하다). 이후 감독은 네오의 일상을 깨알같이 묘사하는데 그 현실성이 도드라질수록 몰락이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매트릭스1편은 아나키즘과 혁명의 분위기를 품고 있다. 1편의 마지막 ,네오가 매트릭스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자본과 시스템, 이데올로기의 억압이 없는 세상을 보여줄거야"라고 말했다면 영화는 허세이긴 하지만 쿨한 패션좌파영화가 됐을 것이고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는 훨씬 가열차게 펼쳐졌을 것이다. (기억에 네오는 인종, 국경 정도만 언급한다.) 그렇게 위세당당하게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했던 네오가 4편에서 실은 잘 팔린 3부작게임시나리오의 게임디자이너이고 그걸로 한 몫 잡은 부자이지만 무기력한 CIO 정도로 묘사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뮬라시옹"처럼 모회사인 워너브러더스는 네오에게 매트릭스4를 만들어 출시하라고 압박한다. 자신들의 소중한 추억이 실은 게임이었다는 설정에서 올드팬들은 모욕감을 느낄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워쇼스키감독에게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 아닐까? 티셔츠에 새겨진 체게바라처럼 혁명의 아이콘이 오히려 소비의 대상이 되고 시스템 안에서 무력해지고 더 나아가 시스템을 공고하게 하게 현실. 영화초반의 네오의 몰락은 시스템이 얼마나 간교하고 모욕적인지를 묘사하는 장치다. 감독은 1편에서 실은 커밍아웃을 염두에 뒀다고 하는데(4편에서 "하늘을 무지개색으로 할까"라는 대사가 나온다.) 원래 기획은 매트릭스1편의 속편이 프리퀼이었다고 알고 있다. 근데 왠일인지 3부작으로 기획이 바뀌고 프리퀼은 <애니매트릭스>로 대체됐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잡>을 보면 헐리웃의 관료주의를 언급하며 "영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왔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워쇼스키 감독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던 건 아닐까. 각성한 네오가 "그들이 내 인생을 게임으로 만들었군"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키아누리브스가 조금만 더 연기력이 좋았다면 엄청난 분노를(아마도 감독이 표현하고 싶었을)  폭발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각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그 각성은 트리니티에게 집중되어 있다. 혹자는 트리니티의 각성 이유가 불명확하다고 하는데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이름 진짜 싫어, 내 이름은 트리니티야. 내 몸에서 손 떼"라고 말하면서 남편을 줘 패는 장면에서- 나는 남자지만- 짜릿함을 느낀 여성관객들이 많았을 듯 싶다.(캐리앤모스가 더 연기력이 좋다.)  마지막 장면에서 "티프? 장난해?"라면서 빌런을 패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런면에서 요즘 유행하는 페미니즘 코드가 떠오른다. 트리니티는 네오가 도와준게 아니고 스스로 각성을 선택했다. 3부에서 진부한 캐릭터로 전락했던 트리니티는 다시 1편의 여전사로 부활한다. 예전의 쿨함과 반항아 특유의 분위기를  회복한 둘은 "두번째 기회야"라고 말하며 1편처럼 지평선 너머로 날아간다. 

   이 엔딩은 따뜻하다. 옆으로 새는 이야기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리턴>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청춘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라고 불리는 ("신짱, 우리는 이제 끝난 걸까요?", "바보,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어") , 좌절했지만 "그렇다면 한번 더"의 용기를 주는 따뜻한 장면. 2000년대 초반 청춘영화 최고의 엔딩으로 회자되던  그 장면을 다르게 해석하는 리뷰를 본 적이 있다. 이 대사는 50대의 나이에 영화에 입문한 기타노 다케시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나는 비슷한 문법으로 워쇼스키 감독이 엔딩에 이 대사를 넣으며 스스로에게 "두번째 기회"라고 다짐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사회라는 전장에서 분투하면서 어느정도의 자리보전을 하게 됐지만 초기의 반짝거림은 잃어버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안 죽었심더"라고 말하며 예전의 에스프리를 되살리고 싶은 4,50대의 눈으로 보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머리와 턱수염을 짧게 깎은 네오를 보면 "아아, 키아누리브스도 어쩔 수 없이 늙었네.. 그래도 아직 완전히 맛이 간 건 아닌 걸"하고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영화속의 매트릭스는 묘하게 현대자본주의를 연상시킨다. 빌런은 "애널리스트"(주식?)로 불리고, 빌런이 네오에게 악몽을 꾸게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생산성"이 오르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가 평범한 대중을 "자살폭탄"으로 만드는 장면은 출산율이 낮다며 돼지새끼 치듯 애 낳으라고 강권하는 국가를 연상시킨다. <매트릭스4>는 분명 걸작은 아니다. 하지만, 감독은 네오와 트리니티를 부활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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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스콧 맥클라우드 지음, 김마림 옮김 / 미메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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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영화로 딱이다. 디즈니 제작에 해리 할아버지 역에 잭 니콜슨 추천. 표지에 관련 정보를 담은 문구가 있는게 좋지 않았을까. 겉으로는 장르를 짐작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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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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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카드늄, RNA 같은 말에 지레 머리아파 할 필요 없다. 그런 지식을 굳이 머릿 속에 욱여넣지 않고도 히스토리 채널 보는 기분으로 소설책 읽듯이 읽어도 된다. 이 책이 주는 부담감은 딱 거기까지다.  대신 상상력을 발휘하면 이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 "시간의 심연을 상상하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완벽한 무와 무의미의 바다에서 여러가지 조건이 기막히게 겹치는 순간 ,번쩍하고 생명의 단초가 탄생하는 장면은 신을 믿지 않아도 충분히 종교적이다. 고교시절의 딱딱한 지학 시간을 굳이 소환할 필요는 없다. 버트런드 러셀이 서양철학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높은 고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지상의 번뇌도 보잘 것 없이 보인다. 그런 '현타'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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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명 > 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4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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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괴지대
이토 준지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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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센서”에서 불교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더니 이번에 천주교다. 느낌적 느낌으로 분명 의도적이고 종교적인 이유다. 아이러니하게 4편의 이야기 중 그게 제일 재미있다. 이토 준지라는 이름이 갈 수록 허세처럼 변하는 것 같다. 간신히 함량을 맞췄다는 느낌. 그나마 이번엔 출판사가 양심적?인 건가. 같은 출판사의 대형 판본의 2만원짜리 단편집은 지금도 뻥튀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망설이고 있다. 그 단편집이이번에 ‘아이스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즉 이 만화는 아니다. 기억에 센서도 약간 과장 느낌의 띠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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