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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를 찾아가는 라캉의 정신분석
가타오카 이치타케 지음, 임창석 옮김 / 이학사 / 2019년 10월
평점 :
라캉을 이해해 보려고 라깡 입문서를 집어들었다가 입문서를 이해하기 위해 입문서의 입문서를 읽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가 일본인이라 행여 오독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책 자체는 가독성과 설득력 모두 겸비하고 있다. 단, 이해를 돕기 위해 실생활의 사례를 예로 드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 논리가 비약한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은 있다. 저자는 라캉의 이론을 3분의1정도 소개한 것이라고 한다.
먼저 저자는 임상심리와 정신의학,정신분석을 대비시키며 시작한다. 전제는 우리모두 언어로 이루어진 무의식을 가지고 있고,우리는 스스로를 모른다는 것이다.(이런 자각도 소중한 것 같다.) 자기기만과 헛다리 짚기가 실상이다. 임상심리와 정신의학은 일종의 대증요법이지만,정신분석은 스스로를 각성하게 하는 근본적인 차원으로 설명한다. 분석가는 환자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법"에 균열을 낼 수 있도록 환자를 도와주고 환자는 스스로 무의식을 지배하는 법을 자각하게 한다. 저자가 초반에 소개하는 정신분석은 논리적인 언어구조를 깨트리는 선불교의 화두를 연상시킨다. (그러면 무의식은 "업"정도 될까?)
이후 저자는 라캉의 이론 중 상상계, 상징계,현실계를 중심으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욕구와 욕망의 메커니즘, 욕동과 환상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상상계는 우리가 가지는 이미지를 말하는 것으로 주요기제로 "거울이론"이 등장한다.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보고 자신을 정의하듯 자아는 타자에 의해 정의될 수 밖에 없고 이 때 타자(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정의하는 대타자가 등장한다. 대타자는 상징계로서 언어(시니피앙)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때 언어는 사물을 지시하는 기호라기 보다 맥락과 구조라는 의미에 가깝다.(에이젠슈타인의 몽타지 이론 같은 것이다.) 저자는 이런 개념들을 이용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을 해석한다. 대타자로 상징되는 어머니를 통해 인간은 처음부터 상징계로 던져지며, 생존을 위한 욕구와 요구, 욕망의 메커니즘이 발생한다. 욕구가 상상계를 의미한다면 요구는 상징계에 의해 해석된 욕구이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이 필연적으로 욕망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대타자인 어머니의 "법"을 보증하는 "대타자의 대타자"인 아버지가 등장하며 아버지를 적대시하는 아기는 "거세"를 통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정체성과 성규범을 확립하게 된다. 욕망의 대상이 되고 욕망하는 것, 여러가지 화살표가 셋 사이에선 겹친다. 마지막으로 상징계와 상상계에 포획되지 않는 현상계를 설명한다. 우리 모두 최초의 쾌락으로 돌아가려는 "죽음 욕동"이 있으며 이런 욕동들을 대체할 환상을 찾는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환상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것 , 삶의 의미, 이상 같은 것이다. 이런 환상이 비틀거릴 떄 우리는 삶의 위기를 경험한다. 저자는 정신분석을 "환상을 횡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성으로 설명되는 대타자와 구체적인 개인의 특이성은 충돌할 수 밖에 없으며 무의식에는 이런 갈등들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 정신분석은 이런 "법"들을 "갱신"해서 근본적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는게 저자의 요지다. 라캉을 1도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이 라캉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책 자체는 일관된 흐름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언어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때문에 영원히 상실된 존재이다. 정신분석은 그런 상실과 친숙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저자 역시 3년 째 정신분석울 받고 있다고 하는데 정신분석을 소개하는 1부는 왕초보에게 첫 출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읽고 나면 정신분석과 불교의 링크?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신분석은 "언어로 이루어진 해탈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정의하는 정신분석은 그 정도로 근본적이고 윤리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