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하여 - 고대 스토아 철학의 대가 세네카가 들려주는 화에 대한 철학적 사색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김경숙 옮김 / 사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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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가 되고 보니 나도 꼴에 “아랫것들”이 생겼다. 호명을 하면 누군가가 부산스럽게 나타나서 처분을 기다린다는 듯이 내 옆에서 대기하는 것이다. 처음 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마음 한 구석에 어떤 자극을 느꼈다. 누군가를 나의 의지대로 한다는 느낌. 변대적으로 집착한다면 묘한 쾌감이 될 수도 있는 느낌 말이다. 이런 느낌이 발전한다면 사내 성폭력같은 걸로 이어지는 거겠지. 대기하는 누군가가 긴 생머리에 토끼귀 장식을 한 야들야들한 언니라고 생상해보라. 근데 가끔은 반대의 상황도 발생한다는 거다. 넌센스지만 세네카의 말을 빌리자면 “노예가 말대답하고 불순한 표정을 짓는다고 왜 화를 내는가?” 이다
  사실 직장이나 학교나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 아닌가. 내가 팀장한테 깨질 때 옆 부서 팀장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한다. “저렇게 소리 안 질러도 무섭게 할 수 있는데”
직장이나 학교나 결국 유치원이고 군대다. “시키든 대로 안 하면 죽어” - 필수 교양이고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힘이 지배한다. 상대를 짓눌러서 장난감을 빼앗아야 하고, 학교와 군대에선 몽둥이가 날아가고, 직장에선 차마 그럴 수 없으니 말이 날아가고 가끔 결재판을 날리는 사람이 있긴 하다.
 세네카가 보기에 화는 추하다. 사람의 머리털을 뻣뻣하게 하고 얼굴이 붉어진다. 입고 있던 품위 있던 옷을 스스로 찢어버리고, 본인이 다치든 말든 칼날을 향해 돌진한다. 노비투스가 얼마나 화를 잘 냈던지 세네카는 조곤조곤 설득을 시작한다.
  화는 강인함이 아니다. 격정이란 공허하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사랑도 아마 마찬가지?)
너는 화를 에너지로 사용한다고 하지만, 적들을 뿌리뽑고, 도시를 폐허로 만드는 것은 화가 아니라 이성이다. 네가 정말로 복수를 원한다면 공허한 화 대신 강철같은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 화는 약함의 상징이다. 불평을 하는 사람들을 보라. 노인과 아이들이다. 적들이 던지는 창은 강인함을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올 것이다.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자는 그것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도 열등한 것이다. 강자는 그런 감정 자체를 느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인함이란 외부의 조건에 상관없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고요한 마음의 평화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미덕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화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미덥진 않지만, 세네카에게 인간의 본성은 화합을 원하고, 앙갚음을 원하지 않는다. 고요한 마음의 평화만이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미덕이며 격정의 벗은 슬픔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이다. 자비는 자신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우리는 화가 우리 내부에서 싹을 틔우기 전에 그 싹을 잘라야 한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용”이다. 사리분별없는 동물에게 화를 낼텐가? 너는 “부당하다”고 화를 내지만 너 역시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깜냥으로 정당과 부당을 판별하지 마라. 화를 내서 상대방이 두려움을 갖는다면 네가 이긴 것 같지만 악행에는 이기는 것이 지는 것이다. 두려움의 대상은 그 대상 역시 두려워야 할 것이 많다. 사자는 사소한 움직임에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화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화풀이 본능>에 따르면 생명이 진화하면서 화풀이 본능을 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집단 내에서 호구로 찍힐 경우 생존이 어렵기 때문에 보복본능을 발전시켰다는 거다. 요새 대세인 뇌3단계론(변연계-파충류의 뇌, 구피질-원숭이의 뇌, 신피질-인간의뇌)에 따르면 화풀이본능은 구피질이나 변연계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네카는 감정보다 이성이 강력하다고 한다. 화를 없애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분노가 치밀으면 그것을 발전시키지 마라. 화를 유예하고 숨겨라. 웃어버리고, 무시하고, 그래도 남는 것은 용서해라. 알렉산더 왕의 아버지 필리포스조차 무례함을 참고 견뎠다. 네가 필리포스 보다 위대한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고개를 돌리면 어느새 죽음이 다가와 있을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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