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차 월든 - 잉여 청춘의 학자금 상환 분투기
켄 일구나스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핑크 플로이드의 <월>을 떠올려보자. 햄 만드는 큰 공장이 있다. 꼬불꼬불하게 놓인 컨베이어 벨트 위에 일렬로 놓인 학생들이 거대한 기계 안으로 들어가면 맞은 편에서는 따끈따끈한 햄 덩어리들이 떨어진다. 식상한 비유이긴 하지만, 그 벨트위의 학생은 바로 나다. 끝없이 펼쳐진 레일 위를 달려서 햄으로 만들어 진 후 사회로 나간다. 그래서, 누군가의 위장으로 들어가겠지.

켄 일구나스는 그런 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들려 준 매직워드를 듣고, 홈디포 알바복을 찢어버리고, 알래스카로 날라 버렸다. 그런 그의 발목을 계속 잡는 불구대천이 원수가 있었으니 바로 학자금 대출이었다.

이 책을 “잉여청춘의 학자금대출상환 분투기”정도로 선전하는 출판사의 마케팅은 아무래도 이 책에 대한 평가절하 같다. 이 책은 캠퍼스 주차장 봉고차 안에서 숙식을 하며 학교를 졸업했다는 “세상에 이런일이” 류의 애기가 아니다. 내게는 이 책이 지금 현실에 대한 생생한 캐리커쳐이자 저자의 성장담으로 읽혔다. 특별한 목적없이 남들이 대학을 다 가니까 비싼 돈을 대출받아 가며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만 하면 뭐라도 될 줄 알고 나름 공부도 재미있게 했는데, 막상 닥치니 정말 글자 그대로 일자리가 없다. 실은 그 전부터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장이 필요없는 일자리에 취직했단다. 빚은 늘어가는 뱃살처럼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처음에 빚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탓에 꼼짝없이 저임금 알바자리에서 시달려야 할 판이다. 그런데, 어느날 주차장에서 켄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알래스카로 향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설명이 안되는 “비합리적인” 부분인데 나는 여기서 조셉 캠벨이 말한 “영웅신화”를 떠올렸다. 영웅은 자신만의 모험을 떠나 성장을 해서 귀환한다는 내용인데(그 여행은 물리적인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영적인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캠벨의 주장은 우리는 모두 자신 속의 환희를 찾아 자신만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웅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떤 “사인”을 만나게 된다. ( 무라카미 하루키를 소설가로 만든 데이비드 힐튼의 오후의 2루타를 떠올려보라. 혹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서 와타나베 이타루에게 한 할아버지의 충고) 켄에게 그것은 주차장의 매직워드였다.

지금 꿈이라면 영원히 꿈으로 남는다. 대안은 그 꿈을 지금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떠난 알래스카. 역시 문제는 신체성이다. 우리는 학교라는 격리된 공간에서 성장하고 사회로 나가 일터라는 격리된 공간에서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음식과 옷은 돈으로 시장에서 해결하고, 남는 시간은 티비를 보거나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보낸다. 그리고, 그 옷과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쓰리디영화나 리얼리티쇼로 현실을 경험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눈을 가린 말이 얌전해지듯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상에 뛰어들 열정이나 모험을 떠날 배짱을 기르기란 힘들 것이다. 블루클라우드를 정복한 것을 시작으로 켄은 반쯤 잠들어 있던 자신을 깨우고 , 빚을 청산해가며, 자신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히치하이크로 여행을 하며 레일 위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자신만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웬만하면 삶은 이어지더라는 것,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은 의외로 적더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가난과 장난치고 있다는 통찰도 빼놓지 않았다.

공부가 좋아 다시 듀크대 대학원 인문학과정에 복귀하지만, 이번만큼은 빚을 지고 싶지 않다. 켄이 짜낸 묘안은 봉고차에서 사는 것이다. (이 분야의 선배로는 “가난뱅이의 역습”을 쓴 마쓰모토 하지메가 있다.) 일찍이 소로우의 월든에서 감명을 받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소로우가 말한 게 전부 옳은 건 아니라는 거다. (견디지 못할 외로움과 성욕은 어쩔건데?-픽,하고 여기서는 공감의 실소)

찌는 듯한 더위, 견딜 수 없는 추위, 긴장시키는 경비원들의 발자국소리, 등등을 참아낸 후 결국 졸업, 대학원 졸업식에서 졸업 연설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마무리한다.(하지만, 듀크대는 이후 주차장에서 거주할 수 없다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역시 부자동네는 어쩔 수 없다.)

자, 이야기의 해피엔딩. 켄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고해서 유명인사가 되고, 이름난 잡지사로부터 고액연봉의 일자리를 제의받는다. 몇 년전이라면 아마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만한 해피엔딩.하지만,막판 반전은 켄이 일자리를 거절하고 다시 알래스카로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는 거다. 아마도 켄은 닳은 여행도구를 대충 꾸린 낡은 배낭을 들쳐메고 신발을 툭툭 고쳐 신으며 길을 다시 나섰을 것이다. 가슴 한 쪽에 흥분과 두려움, 동시에 평온함을 가지고서 말이다.

일찍이 카이지 형님의 손가락을 잘라먹은 효우도 회장이 말했다. 생명은 너무 존중해 주면 썩는다고. 그래서, 모두들 기회를 잡지 못하고 죽은 듯이 살아가는 거라고(카이지 완결됐나?) 역시 마루야마겐지 할배도 말했다. 어쩌면 불황기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것은 하늘이 자신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고(“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켄이 여행을 떠나고 자신을 단련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에게 실업과 빚이라는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진솔한 어조덕에 읽는 내내 저자에게 친밀감이 느껴졌다. 83년생이라는데 자신을 “Y세대”라고 소개한다. 그러고보니 내가 청춘이었을 때는 X세대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여행길을 배웅해주며 어깨라도 툭 쳐 주고 싶다. 이봐 켄, 어디 한번 잘해보라고. 난 좀 늦은 것 같지만 말이야.. 네가 거절했다는 그 일자리, 나는 약간 솔깃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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