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폰 트리에는 어쩌면 사기꾼인지도 모른다.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장면을 꼭 써야 했다면 특별한 의미나 의도가 있어야 했지 않았을까. 어쩌면 일반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이 영화를 본 동기는 이랬다. 섹스란 것이 ‘감춰진’ 상황에서 여자들은 섹스를 원할 때 어떤 방식을 취할까? 라스 폰 트리에는 어떻게 상상력을 발휘할까? 남자라면 쉽게 성을 구매하겠지만 말이다. (하긴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신시티에 등장하는 캐락마냥 창녀들한테도 거부당하는 캐릭이 있을 것이다. 창녀라는 단어를 일단 써보자. 라스 폰 트리에가 니그로라는 단어를 쓴 것 처럼. 좀 나가자면 그는 위선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의 유태인 발언과 상황이 겹친다.)

그런데, 그게 너무 간단했다. 그냥 남자들과 눈을 맞추지고 웃는 것만으로도 주인공은 쉽게 섹스를 조달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 그게 이해가 가는게 섹스에 적극적인 건 항상 남자쪽이고, 섹스에 능동적인 여자는 희소성이 있다. 그게 문화적인 학습의 차이때문이던, 씨를 뿌리고 싶어하는 남자의 유전자와 아이를 임신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여자의 유전자의 차이 때문이던 말이다. 내가 여자에게 눈을 맞추며 웃음을 짓는다 해도 섹스를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영프로다.( 혹시 내게 눈을 맞추며 웃는 여자가 있나? 주의해서 검색해 봐야 겠다.

1부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흥분하는 설정은 이미 <바람난 가족>에서 나온 것이다. 이해는 안 가지만 말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그리 파격적이거나 개성적인 감독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가 섹스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태도나 그에 대한 셀리그먼의 반응은 이미 익숙한 것 아닌가? “구멍을 채워줘”라고 말하는 조의 모습은 배두나가 출연한 “공기인형”에서 “모든 인간은 내면에 빈 곳이 있어서 바람으로 채워야 한다”라는 대사에서 설명된 것 아닌가?

마지막에 개과천선을 다짐하며 기존 질서에 편입하려는 주인공을 또 다른 가부장적인 폭력(?)이 끼어들자 남근의 상징인 총이 등장하는 장면은 좀 블랙유머이긴 했다.

감독은 오히려 섹스에 대한 강박이 있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만든 것 아닐까? 섹스란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에서는 이해를 못할 것 같다. 여자 감독이 님포매니악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성이 얼마나 위력적이고 기존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지는 이미 많이 들어왔다. <영 앤 뷰티풀>의 주인공은 마치 김동리 소설(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사가 서로 싸움을 하는) 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처음 인생을 접하는 사람 특유의 고지식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이사벨은 주변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매춘을 하는 건가 이 영화는 아직 이해를 못하겠다. 영 앤 뷰티풀한 시기에는 왜 몸을 팔고 싶어지는 걸까?

제목이 좋다. 영 앤 뷰티풀. 내겐 영한 시절은 있었지만 뷰티풀한 시절은 없었다.

음 그런 거구만 몸도 아무나 팔 수 있는게 아니었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