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팅숏이라는 게 있습니다. 영화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아마도 갑자기 화면이 끝나는 숏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건 미카엘 하케네의 <아무르>였습니다. 씨네21에 올드독이 영화평을 쓰면서 마지막 커팅숏이 너무 날카롭다는 뜻의 글을 썼었지요.저는 이 것 덕분에 이 용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르>에서 출연배우가 빈 방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cutting) 영화가 끝납니다. 제 느낌을 말하자면 굉장히 하드보일드 하다는 느낌입니다. 회한이나 여운,변명, 설명, 용납도 없이 그냥 끝나버리니까요. 어쩌면 그것은 완벽한 허무일지도 모릅니다. 허무가 제게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패자부활전도 없이 존재함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 존재하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저를 낙담시킵니다. 어쩌면 마룽마 켄지가 어릴 적 농사짓는 아버지를 보며 느꼈던 감정인지도 모릅니다. 바람구멍이 뚫린듯한, 허무. 커팅숏, 그것은 제게 최종적으로 허무라는 감정을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매일매일이 커팅숏이 아닐까요 저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간다는 것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면서 저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을 좀 더 쉽게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 마치 커팅 숏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이런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결국 매일매일이 커팅숏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칼 위를 걷는 기분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커팅숏을 매일매일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런 커팅숏이 최종적으로 불러오는 허무라는 감정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힘들지만, 무의미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하루키 소설의 문장이 떠오르는 군요, 이것도 <아무르> 못지 않는 커팅숏입니다.

 

낯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알게 뭐냐”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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