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어느 술집. 친구인 두 남자가 내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내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제이, 오른쪽은 콜린이다. 나와 동일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윤리철학 교수가 된 콜린은 내 몸과 같은 몸이 존재하지 않을 더 나은 사회를 옹호한다. 두 사람은 나를 사이에 두고 이 견해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이건 흔한 일이다. 주장의 내용도, 주장을 펼치는 과정에 내가 잊히는 것도 그렇다.

... 나는 여전히 내가 친구들과 함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드디어 콜린이 입을 열었다. “맞아. 근데 그건 뻥이잖아" 맥주잔을 내려다보던 제이가 고개를 들었다.

만약 그 부모가 일부러 귀먹은 아이를 출산했다면 감옥에 보내야 해. 법을 만들어서 임신한 여자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장애 검사를 받게 하고, 만약 장애가 발견되면 강제로 낙태를 시켜야 해. 그걸 거부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보내거나 벌금을 물리고."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제이가 말했다. 그는 콜린이 제시한 방안의 기술적인 문제점을 차분하게 지적하고, 콜린에게 그 맥락에서 '장애'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네가 주장하는 건 우생학으로 회귀하는 거잖아. 그게 네가 원하는 거니?“

"!” 콜린이 손뼉을 쳤다. "우생학은 좋은 발상이었어. 윤리적으로 진짜 괜찮은 학문인데, 다만 그걸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거지.”

 

"내가 장애인인 건 알지?"

", 알아" 콜린이 대답했다.

"너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너는 이미 태어났잖아."

"하지만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내가 미리 발견되고 낙태되었을 거란 얘기지?"

". 네 몸은 네 삶을 더 힘들고 불편하게 만들잖아!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거야."

"내 삶의 전부가, 내 삶의 모든 측면이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니?"

"그걸 부정할 수 있어? 여기서 그게 논쟁거리는 아닌 거 같은데."

“ ...저항이 힘이라거나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건 다 지어낸 이야기고 순전한 합리화잖아. 너는 네가 손에 쥐고 있는 형편 없는 패를 합리화하고 있는 거잖아."...

...콜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장애인은 아니잖아그랬다. 콜린은 내 몸과 같은 몸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그래도 최악은 면했구나.‘

 

                                                  -이지뷰티(클로이 쿠퍼 존스,한겨레출판사) -

 

 

우생 사상을 이야기할 때는 지금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하면서 일어나는 '차별' 문제, 그리고 그보다 앞서 장애인의 출생을 줄이려 하는 우생 사상적인 사고방식을 서로 분리해서 생각 해야 한다고 봐. 그래서 우생 사상적인 사고방식에 관해 생각해보면... 딱히 내가 연구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우생 사상이 있지 않을까?"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답에 마음이 몹시 술렁거렸다. 그다음 말이 궁금해서 나는 시라토리 씨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가령 평소에 장애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가 태어날 때 조금쯤 장애가 있어도 어떻게든 된다고,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이 과연 자신의 아이가 무 뇌증이어도 괜찮다고 할까? 거기까지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을 우생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야.”

"... 결국 장애에도 서열이 있고, 1단계는 괜찮지만 2단계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네."

"누가 무엇에 대해 얼마나 우생 사상을 갖고 있는지는 연구자가 아니니까 나도 모르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는 우생 사상이 있을 거야."

", 그런 건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럼 시라토리 씨에게도 우생 사상이 있어?"

", 있는 것 같아, 아니, 있었어. 나도 맹학교에 다닐 때는 맹인답지 않은 것을 동경했거든. 예를 들어 전맹인 사람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거침없이 다니거나 생선 가시를 깨끗하게 발라 먹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부러워했어. 그리고 그런 걸 못 하는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고, 그걸 뒤집어 생각해보면, 맹인답지 않은 행동의 뿌리에 있었던 건 '장애가 없는 사람 과 비슷해지는 건 좋은 일'이라는 일종의 차별 의식과 우생사상이었을지도 몰라."

... ", 그러니까 우생 사상이라니 당치도 않다고, 차별은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차별 의식과 우생 사상이 내게도 있다고 일단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20대 후반이었던 것 같은데, 전맹인 지인 중에 아무리 연습 해도 마사지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어. 그리고 빨래를 잘 널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전맹이니까 안 보이면 이렇게 연습해보라고, 그러면 잘할 수도 있다고 조언해주었는데, 그래도 그 사람은 못 했어. 그런데 애초에 '할 수 있다''할 수 없다'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아니잖아. 사실 마사지든 빨래 널기든 잘 못해도 전혀 상관없다는 걸 깨달았어. 그게 20대 때였으니까 꽤 늦게 깨달은 거야.“

아아, 이 말이다. 이 말이었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일본 사회에는 '성장은 대단하다.' '편리해지는 것이 진보다.' '일하고 벌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같은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이 구석구석에 퍼져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이데올로기가 흐르고 있으며,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그런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의 최소 단위는 개인의 '성장'이고, 이른바 '자립'은 일종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어린 딸이 혼자 옷을 갈아입었을 때 박수를 쳤고, 혼자 책을 읽 었을 때 칭찬했다. 해냈구나. 대단해.

물론 성장은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일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 혹은 인간의 '능력'만 높이 평가하고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지 않는 사회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 며 행복하게도 하지 못한다. 이 사회에는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도 많다. 나 또한 어떤 사정으로든 일하지 못할 날이 언젠가는 거의 확실히 찾아올 것이다.

 

                -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가와구치 아리오, 다다서재) -

 

실제로 좋은 삶은 선택적이고 제한적이며 불완전하다. 그 속에 좋은 것들이 있지만 많은 게 빠져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내가 라파엘 전파의 미술을 잘 알지 못하거나 울타리 치는 법을 모른다고 해도 내 삶에는 아무런 타 격이 없다. 나의 삶은 이미 풍성하기 때문이다. 실없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신체장애가 일반적으로 잘 사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이유다. 장애는 우리가 소중한 일을 행할 수 없게 만들므로 어떤 면에서는 유해하다. 그러나 어차피 소중한 일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러 가지 좋은 것들에서 소외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대부분의 장애에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보다 결코 나쁘지 않은, 때로는 더 나은 삶의 가치가 충분히 남아 있다....

  잘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데에는 너무 많은 다양성과 너무 많은 우연성이 존재한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회복력이 좋은가를 보여주 연구들의 철학적 근거이기도 하다. 이런 연구들은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체로 결코 더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입증한다. 이 이야기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면 두 가지를 시작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왜 우리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이 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 둘째, 장애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임을 인정해야 한다. ...신체장애가 고용,교육,사회적 기회에 대한 접근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집단권력에 달려 있다. 문제는 신체와 인공환경 사이의 부조화다. 그러나, 환경은 바뀔 수 있다.

 

                                               -라이프 이즈 하드(키어런 세티야,민음사) -

 

ps. 1. 한 가지 의문은 영화 <씨인사이드>의 주인공처럼 전신불수로 수십년을 살다 조력자살을 택하는 사람의 케이스는 어떻게 봐야 할까? 여기에도 키어런 세티야의 이야기가 적용될까?


2. <이지뷰티>의 저자는 자신이 장애에 관한 편견에 부딪힐 때마다 도망치던 중립의 방이 자기를 위축시키고 외부로부터 단절시키고 있다는 것을 비욘세콘서트를 관람 후 알게 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의 전맹 시라토리 겐지가 택한 것은 미술관 관람이었다. <이지뷰티>를 읽고 나면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게 정말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게, 호의 역시 차별과 편견이 되는 저자의 경험 때문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에서 역시 전맹인 시라토리의 친구는 우리는 절대 남과 같이 될 수 없다며 장애인체험 같은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원하는 건 그냥 다가가서 같이 있는 것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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