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폭력 - 전족의 은밀한 역사
도러시 고 지음, 최수경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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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족을 중심으로 한 프레스코벽화라고나 할까. 전족에 관해서 이런거 까지 내가 알 필요는 없는데 하는 부분도 있다. 사실 한국인인 나에게는 전족이라는 것이 낯선 소재이지만, 중국인들에게도 전족의 기원을 가지고  15,16세기에서부터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전족이 사라지는 근대의 과정을 먼저 서술하는 일종의 도치법전략을 사용한다. 익히 예상할 수 있듯 조선의 경우처럼 서구의 근대화를 받아들인 민족주의자들이 여성을 억압하는 전근대적악습으로 반전족운동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전족은 사라졌다. 여기서 여성은 수동적인 피해자이거나 남성을 유혹하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하지만, 역순으로 거슬러올라가 조망한 전족은 그 의미와 범위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고 단일한 스펙트럼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이미 명나라 시대 정도에서 근대의 반전족주의자들이 말하는 논리가 있어왔고, 전족은 사회적 신분의 역할을 하며 여성들의 열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저자는 "고통으로 파괴된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의미의 창조와 전개과정에서 여성의 능동성과 주체성을 탐색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전족이라는 하나의 현상이  발생하고 전개되어 종교처럼 떠받아들여지기까지 하다가 소멸되는 과정을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비단 전족뿐이랴. 여성들이 전족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뜬금없이 입시경쟁이 연상되기도 하고 지금의 성형수술 열풍이 떠오르기도 한다. 

설렁설렁 재미로만 읽기에는 무리인 책이다. 물론 설렁설렁 재미로라도 읽어서 저자가 말한 것 열 가지중 한두가지를 건진다고 해서 나쁜 독법은 아닐 것이다. 옛날기록들을 읽는 재미도 제법 있고, 비위가 약한 사람은 전족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름이 돋을 수도 있다. 가끔씩 내놓는 젠더문제에 대한 저자의 통찰도 눈에 띈다.


(p125) "이 우월감은 가족 시스템속에서 연장자인 그녀의 지위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가족의 안전망 밖에서 자신의 미모를 팔아 타인의 시선을 끌지 않을 수 없는 창부나 배우들과 달리 그녀는 아들을 낳고 시부모를 봉양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안전과 권력을 획득했다.... 즉 지식여성과 전통여성이 각각 주체를 위치시키는데 있어서 드러난 괴리는 여성에게 성공의 길을 제공하는 두 가지 각기 다른 권위구조에서 기인했다. 이는 곧 신식학교와 구식 가정 사이의 충돌이었다. "


(p305) "우리가 근대 이후 강조해 온 '객체'와 '주체'의 차이는 너무나 이원론적이고 기계론적이라 이 여성과 응시자들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포착하지 못한다. 그녀의 대상화된 위치 속에서 여성은 모종의 주체성을 표현한다. '객체'의 위치에 알맞게 그녀는 내재적 아름다움과 민첩성을 지녔고 아울러 상대를 응시하고 자연스럽게 돌아보는 능력도 갖게 될 것이다."


(p383) 싸움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록 경쟁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해진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면 승리자와 패배자는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사회에 퍼진다. 이런 운명론은 패배의 치욕을 완화해주고, 점점 황망해지는 제도의 명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심지어 이런 믿음은 사람들이 더 많이 경쟁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금련 숭배로 전족은 사실상 이미 종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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