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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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읽은 <월든>에 소로가 월든 호수에 들어간 이유가 "삶의 정수를 누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읽은 기억이 난다. 아마 "삶의 골수까지 빨아먹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다. 난 그 때 자격증 공부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소로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자격증 공부를 포기할 수 없었던 무력감이 기억난다. 이 책의 정서를 요약하자면, 우리 모두 삶의 골수를 빨아먹자는 얘기다. 주당 120노동시간을 말하는 대한민국  대통령께서는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저자들이 바라보는 사무직 노동현장은 일종의 군비경쟁이고, 극장의 까치발 경쟁이다. 다같이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다같이 까치발을 내리면 우리의 노동시간은 단축될 것이고, 우리는 삶이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라 향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저자는 기본소득까지 조망하고 있다.)  저자가 주로 분석하는 것은 사무직인데, 아무도 읽지 않는 보고서 생산이나 주목하지 않는 홈페이지 디자인 변경 등 들으면 대충 감으로도 힘빠지는 일들이다. 거리의 청소부와 회사의 관리직, 누가 우리의 삶에 필요한 필수노동일까? 그런데 왜 보수는 정반대일까?  우리는 먹지 않고 살 수 없는데 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은 주목받지 못하는 걸까? 

  저자의 주장에 한가지 제기할 수 있는 반론은 가치의 상대주의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주인의 식사시간 중 하는 일이라고는 뒤에서 석상처럼 대기하는 하인의 입장에서는 그 일이 <불쉿잡>(데이비드 그레이버,민음사)일 수 있지만, 주인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들의 논지는 여러분야의 이슈들과 걸쳐있어서 더 깊은 담론이 구성될 수 있고 다큐식 구성은 읽기엔 부담없이 재밌지만 깊이가 살짝 얕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역시 <불쉿잡>이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이어받은 격이다. 이후에도 다음 주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삶이란 무엇일까? 라는 철학적 질문에 가장 현실적인 대답은 "주변 환경(타자)과 교류하며 정신적,물질적 자원을 얻어 자신의 정신적,육체적 존재를 유지시키는 것" 정도인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원을 얻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는 것 못지 않게 "타자와 교류"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냥 놀고 먹는 재벌2세가 행복할까? (만약 그게 행복하다면 그 사람들이 경영일선에 나서지는 않겠지.)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런 노동도 하지않을까? 내 생각엔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은 사라지겠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내면을 외면화시키는 "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타자들과 조우해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활동에서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이미 케인스는 맑스가 말한 "아침에는 **를 하고 점심에는 &&을 하고 저녁에는 !!를 할 수 있는.. "그런 해방의 상태를 예언했었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해방의 상태가 아니다. 한명한명이 사고를 바꿀 수 있다면, 조금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감내하는 삶의 부분들이 바뀌지 않을까? (물론 지금 행복하신 분들은 말고.)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아니면 그런 건 별로 없다. 철통같은 세상도 한명한명이 생각을 바꾼다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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