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능력주의 - 한국인이 기꺼이 참거나 죽어도 못 참는 것에 대하여
박권일 지음 / 이데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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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라는 전선에서 겪은 경험 중 하나는 통성명 후 "어느 대학 나왔냐?" 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하급자 개념보다 상급자(연장자나 직장 상사) 개념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혹은 어느정도 안면을 익힌 후 조심스럽게 "근데 대학은?,,"하고 묻는 경우다. 약간의 어색함을 느낀 이유는 예전엔-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인간교육을 말살하는 입시제도"에 대한 성토가 공통의 합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슈는 학력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그런 학력에 대한 진입과 보상에 따른 '공정'이다. 이 책에는 그런 변화에 대한 원인 분석이 나온다. 일차적으로 한국인들은 "차별을 찬성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개마고원)는 비단 20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평범하고 선량한 장삼이사들의 얘기다.  언급된 데이터는 "소득불평등에 대한 압도적 찬성"을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조선의 과거제도까지 소급되고 개천에서 용났다로 대표되는, 한국의 능력주의가 있다.
저자는 능력주의를 '현실적 능력주의'와 '이상적 능력주의'라는 두 층위로 구분한다. '현실적 능력주의'는 "돈도 실력"이라는 정모씨 말로 상징되는 일종의 위장된 신분제이다. '이상적 능력주의'는 여기서 신분제적인 요소를 제거한 것으로,보통 요즘 유행하는 공정은 이런 '이상적 능력주의'에 대한 요구다.  하지만, 저자는 두 층위 다 "불평등 자체를 부당하게 당연시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능력주의에 대한 열망이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사회를 여전히 생존투쟁의 장으로 만들고, 구성원들에게 획일적인 삶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의 최종형태인 입시, 공채, 고시 등의 결과는 "승자독식과 빈익빈부익부의 지대추구"(공짜점심)이다. 더욱 최악인 것은 이런 소수에 대한 특권이 "제도적 문화적 격상"으로 이어지고, 혐오와 배제("공부못하면 호주가서 공사해야 돼요"), 인종구분없는 인종주의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박노자가 한국의 학벌주의가 서구의 인종주의에 비견한다고 이미 지적한 적이 있다.)
  저자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공정하다고 느끼는 '능력주의'-능력과 노력, 기여에 따라 응분의 대가를 받는다는 관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현실에서 노력,능력,일의 사회적 가치, 개인의 기여 등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국 위장된 신분제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난 뒤 자신이 3루타를 친 줄 안다"는 말은 소수의 최상위 1%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모두에게 적용되는 명제라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결국 정치적, 구조적인 차원으로 연결된다. 능력주의는 결국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기 때문이다. 특권과  격차의 해소가 능력주의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와 더 나은 삶의 형태로 나아갈 것이라는 게 저자의 대안이다.
  이 책의 약점은 "호소력"이다. 앞서 출신대학부터 따지는 '올드'들을 언급했지만 젊은 세대들이 회사 대면식에서  내신 몇 등급이냐고 묻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유치한 문답을 진지하게 주고받는 모습이 어이없긴 했다. 저자는 롤스부터 샌델, 코헨, 아르마티아 센 등의 정의론을 언급하며 "다른 세상이 있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서와 강력하게 결합된 현재의 상황을 설득할 수 있을까? 특히 책에서 언급한 '소비자정체성'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더욱 묘연해진다. '공정'을 마치 자본주의에서 돈을 내고 상품을 사는 등가관계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비슷한 분석으로는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이 있다.)   어떤 문제는 너무 익숙해서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는 법이다. 예전에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주로 반응이 "너 열등감이지?"정도 였던게 기억난다. <오징어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쳐 경비원들의 총을 빼앗아 자신들을 관람하던 VIP들을 공격했다면 결말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문장과 구조가 간결해서 '날아가듯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게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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