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쉿 잡 -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김병화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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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이, 어떤 일이 가치있다는 느낌은 주관적인 것이다. 어떤 직업이 가치없는 "불쉿"인지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저자는 결국 그 직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사람의 의견과 느낌을 따라야 한다고 한다. 이 때의 쓸모없다는 느낌은 마르크스의 "소외"개념과도 결이 다르다. 공장라인의 생산자는 그래도 무언가 작동하고 운용되는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불쉿"은 더 근본적으로 쓸모없는 것을 만들거나,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저자는 가치라는 것에 대해 교환가능한 "가치"와 그렇지않은 "가치들"을 구분하는 정도의 통찰에서 머문다. 왜 살벌한 자본주의에서 후한 보수의, 그 직업의 종사자들이 "쓸모없다"고 느끼는 "일을 위한 일"이 늘어가는 걸까?

구조적 층위에서의 설명:  지금의 자본주의는 순수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경영봉건주의"에 가깝다. 경제학이 상정하는 순수한 합리적인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순수히 경제적인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와 정치는 섞여 있으며 구조조정은 항상 일선의 생산자들이나 하위노동자들이 대상이고 고연봉의 화이트칼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종의 경영관료주의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시간을 살 수 있다"는 발상 역시 기묘한 것이다

 

문화적 심리적 차원에서의 설명:  우리에게 일이란 "원래 하기 싫은 것"이고 일이 하기 싫은 정도에 따라서 보수가 결정되는 기묘한 심리가 있다. 저자는 청교도 윤리부터 썰을 풀지만 납득은 잘 되질 않는다. 즐거움은 그 자체가 보상이기 때문에 보수는 적게 받아도 된다는 심리가 있다.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일이 없어도 근무시간을 풀로 채우고 바쁜 척을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망"을 사기 때문이다. 나 혼자 죽을 수 없지, 하는 느낌? 지금 우리사회의 화두인 "공정"도 실은 "원망"이라는 감정을 포장한 것 아닐까? 

 

 전반적으로 책의 내용이 애매모호하고 산만하다는 느낌이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확실히 가르마를 타 주지 않는다.  저자가 내놓는 여러가지 원인분석도 심드렁하다. 하지만, 저자의 얘기를 전부 무시할 순 없다. 이 책의 의의는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저자가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침묵하던 다수"가 커밍아웃을 시작했다.  공감 100%인 부분은 불쉿잡 종사자가 얼마나 피폐해지는 부분을 저자가 사례를 들어가며 묘사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트위터를 통해 사례를 모집했다.)  저자는 불쉿잡 종사자들이 월급루팡하는데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한다. 결국 그들이 근무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페이스북이나 고양이 밈 만들기이다.  결국 저자의 논지는 기본소득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귀결된다.

 

이 때 두 가지 반응:  우리모두 소득을 나누고 대신 근로시간을 줄이자고?  온 인류가 그렇게 했으면 기아는 진즉에 사라졌을 걸?

 

또는 "꿈은 꾸어야만 이루어지는 거심"(우라사와 나오키 "몽인")

 

저물어가는 한 해를 두고 왠지 시간이 빨리간다던가, 내가 여태껏 뭘 했지? 하는 상실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이 힘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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