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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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부터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바깥이 얼마나 잔혹하고 비열한지. 생계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무기력하게 소진되는 직장인은 "MBC 베스트극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나름 준비했다. 군대에서처럼 두 손과 두 발을 꽁꽁 묶힌채 살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역시 어리숙했다. 밖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마치 지갑을 탈탈 털어가면서 헤어지는 순간에 "잠깐, 근데 네가 신고 있는 신발도 주면 안 될까?"하고 말하는 격이랄까. 상사가 야근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하는 나를 보며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며 빙글거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말과 표정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네가 이렇게 착취당해도 별수 있냐는 비아냥부터 네 생사여탈은 나한테 달려있다는 우월감 정도. 딱히 그 상사가 엄청난 사이코였던 건 아니다. 그 정도는 너무 익숙해서 본인은 자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노동환경을 보면 그 상사가 옳았다. 세상 물정에 밝은 것은 그 상사였다. 이 책을 내내 지배하는 것은 그 "어쩔 수 없음"이다. 생계라는 약점하나를 잡고 그 약점하나만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직장은 유치한 군대다. 하급자를 움직이는 것은 "자르겠다"나 "죽어"라는 협박뿐인 줄 안다. 하급자를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어디 안드로메다 얘기다. 그런 협박을 받아야만 움직이는 관계라면 그건 너무 유치한 관계 아닌가. 이 책에 묘사된 노동환경이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역학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에게는 이런 상황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 뿐이다. 아니, 이것 역시 코스프레일 수 있다. 나 역시 누군가를 똑같은 방식으로 대했으리라. 이게 룰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속으로 읆조리면서 말이다. 읽고 나면 기분이 심히 우울해진다.  과거의 기억부터 현재의 내 모습까지, 내가 얼마나 부자유스럽게 살고 있는지를 새삼 자각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그냥 이런거 다 그만두고 살 수는 없어요? 서로 힘들잖아요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 자신도 바깥도 쉽사리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대학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 자신을 어떻게 지킬지, 네 자유를 어떻게 지킬지부터 고민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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