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녀석들에서 문세윤이 그러던데, 치킨은 맥주가 생각나고 통닭은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나에게도 파란풍차 빵집의 햄버거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 빵집의 햄버거는 햄버거 전문점의 햄버거에 비해 전문적이지는 않다.

내용물도 양상추에 패티에 치즈 한 장이 전부다.


이 햄버거를 먹으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가 6살 7살 때쯤, 아버지는 회사에서 점심에 한 달에 두 번 나오는 햄버거를 먹지 않고 들고 와서 나에게 먹였다.

빵 사이에 패티 한 장에 치즈 하나가 달랑 들어있던 햄버거.

맛있게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아빠와 아빠가 햄버거를 들고 올 날을 기다려 모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처럼 그 햄버거를 앉아서 야무지게 먹으며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때 아버지가 나에게 먹였던 그 햄버거의 맛이 파란풍차 빵집 햄버거의 맛이다.

눈물보다 진한 붉은 사랑을 주고팠을까.

추억의 절반은 맛이고 맛은 추억으로 통한다.

아버지가 계신 그곳은 좀 따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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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하나로 이렇게 가슴 조이는 판타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와이 슌지에게 놀랐고 영화를 보면서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가는 나 자신 때문에 놀랐던 영화

 

첫사랑(에게 쓴)

편지(를)

소설(로 적어서)

만으로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겸허하게 받아들이기까지의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영화

무엇보다 코를 훌쩍 거리게 되는 영화 .

 

편지 하나로 가슴 뻑뻑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이와이 슌지는 마술사 같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러브레터를 볼 때보다 스웨터 두 장 만큼의 더 한 감동이 가슴에 꽉 차 들었다

 

허접한 시나리오를 써 놓은 게 있는데 영화를 찍고 싶다고 강렬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이와이 슌지는 이런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릴리슈슈에서도 언두에서도 피크닉에서도 하나와 엘리스에서도 립반 윙클의 신부에서도. 마지막 편지에서 흐르는 음악 역시 머리보다는 가슴의 골 사이를 잔잔하고 깊게 파고든다

 

이와이 슌지 팬들이여

록웰 월드에 빠져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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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처럼 계속 들리는 소리가 있다

설명을 하고 싶지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웅웅 거리는 소리도 아니고

울림 같은 소리도 아니다

이전에는 도통 듣지 못한 소리다

그건 그러니까 비어있는 소리였다

공허한 소리가 매일 밤 나를 찌른다

텅 비어 있는 소리가 나를 괴롭힌다

 

프레디 머큐리가 혼자가 되었을 때 약 없이는 잠들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텅빈소리가 계속 귓전을 때렸기 때문이 아닐까

 

핑크 플로이드의 초기 멤버 시드 베렛도 점점 자신이 만든 음악에 갉아 먹혀 텅 빈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기에 결국 음악에 먹혀 버린 케이스가 아닐까. 빌리 엘리어트에도 잘 나오지만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차이는 엄청났으며 노동을 하지 못하면 그대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시대를 핑크 플로이드는 노래했다. 어둡고 보이지 않는 앞날과 공장 가동으로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노래하면서 그들의 음악은 인정을 받았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 전반에 깔린 우울과 산업혁명 같은 것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 속에서 시드 베렛도 점점 텅 빈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시드가 탈퇴하기 바로 전 굶어가며 잠도 자지 않고 음악 작업만 하던 시드 베렛에게 로저 워터스 등 멤버들이 왔을 때 시드 베렛은 멤버들을 보며 대작의 곡이 탄생되었다고 했다. 몇 날 며칠 잠도 자지 않고 곡을 만들었다며 멤버들에게 보여줬는데 그것은 백지였다

 

프레디 머큐리도 멤버들과 헤어지고 그런 텅 빈 소리에 잠식되어 간다. 의식의 십분의 구를 빼앗겼을 때 프레디는 간신히 텅 빈 의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라미 말렉의 프레디는 어쩐지 입을 너무 강조한 것 같다. 마지막 라이브 에이드 장면에 감독인 브라이언 싱어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영화가 좋냐고 하면 턱을 어루만지며 글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냥 실제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보는 게 더 낫다는 건 분명하다

 

천재 프레디에게 바치는 찬사로는 고개를 끄덕하겠지만 영화적으로는 초반 멤버들과 만나는 장면부터 허구라서 영화에 대해서는 칭찬을 보낼 수는 없다

 

쿵쿵짝, 쿵쿵짝 이런 음악은 들어봤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갈릴레오 갈릴레오라는 노래를 들어봤지만 누군지는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팍 와닿았겠지만 퀸의 노래를 예전부터 죽 들으며 자랐고,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허구와 창작과 영화적 요소가 너무 많아서 뭐야? 하게 된다. 분장을 잔뜩 하고 나온 퀸의 앨범 투자자 레이 로스터(마이티 마이어스)는 없는 인물이다. 프레디는 이 영화 이후, 라이브 에이드 이후에 에이즈가 걸렸다는 걸 알았지만 휴우

 

비치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을 다룬 영화 ‘러브 앤 머시’를 본받았다면 어땠을까

 

잘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좋았던 걸까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악을 부르는 프레디 머큐리가 좋았던 걸까. 마지막 장면을 손꼽고 있지만 그건 영화 밖의 이야기다. 영화 밖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건 그냥 실제 퀸의 라이브를 보는 게 훨씬 낫다

 

적어도 영화라면, 영화는, 영화가 프레디에게 찬사를 보낸다면 영화 내적인 장면, 프레디라는 인간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취해야 하겠지만, 요컨대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질병인 에이즈라는 것에 자신의 음악이 잠식 되어서는 안 된다는 프레디의 정신에 대해서..... 이렇게 만들었으면 인기가 떨어졌을까. 왜 러브 앤 머시처럼 좋은 영화는 흥행을 하지 못하고 잘 만들지 못한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영화는 흥행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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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천막 밖으로 나가서 물살을 봐야 한다. 멜러리는 자신이 봐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죽고 이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보이(남자아이의 이름)에게 그 일을 맡 길 수 없다. 그때 자신이 앞을 보겠다고 하는걸(여자아이의 이름). 보이는 멜러리가 낳은 아이고 걸은 같이 지내던 임산부가 낳은 아이인데 걸을 낳고 밖을 보는 바람에 죽어 버렸다. 여기서 멜러리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산드라 블록은 엄마로써 아들은 살리고 싶고 자신이 이 종말의 세계에서 죽는 게 낫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걸에게 그 가혹한 일을 시킨다는 것에서 오는 원죄의 조임을 견딜 수 없어 하는 모습을 표정으로 연기를 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연민과 자기학대가 부딪히고 모성애와 인류애가 이기심과 부딪히는 모습을 표현한다. 그 장면은 보는 이들을 흡입한다

 

저 귀여운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종말의 세상에 내던져야 하는 이유를 갖다 붙이기에는 나는 너무 이기심이 많은 여자. 걸의 옆에는 내가 낳은 아이가 나를 보고 있다. 어떻게든 이 아이는 살아야 한다. 내가, 내가 죽는 게 낫지만 내가 죽으면 이 두 아이 모두 죽음에서 면치 못한다. 그렇다고 보이에게 밖을 내다보게 할 수는 없다. 그때 그 어린 꼬마 '걸'이 내가 볼게요,라고 한다

 

우리는 삶에서 이런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게 되고 그때 나의 입장, 내가 끌어안을 수 있는 내 새끼의 입장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나와 그 너머의 내가 서로 마주하게 되는 것을 떠올린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버드 박스는 꽤 해냈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 버드 박스는 인류 종말, 퍼스트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세상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밖에서 다닐 때 눈을 감아야 한다는 것이다. 멜러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어려운 방법을 감행하고 보이와 걸을 데리고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로 한다

 

영화는 여러 영화가 겹쳐지나 간다. 영화 속 초현실 크리처는 인간을 무참히 자살로 몰고 간다. 그것에 ‘왜’라든가 ‘이유’같은 건 없다. 영화 밖에서도 가끔 이유를 묻지 못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를 당한다. 영화에서처럼 마찬가지로 자살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를 보면 제목이 버드박스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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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자보다 가난한 자가 되도록 해라. 배부른 자는 바다를 보고 어떻게 더럽힐까 생각하지만 가난한 자는 그 속에서 생명을 발견한다 - 알멕 에드워드 팔론소

 

아빠를 따라 나온 바다

세상은 바다와 같단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다는 것

어려우면서 꽤 멋진 일인 거 같아

어딘가에 있는 나의 행복을 바라는 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일과 마주하고 있는 일일지도 몰라

혼자서 세상에 발을 내밀기 전까지는 아빠가 곁에 있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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