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볼 만하다. 스파이크 리도 영화에 출연을 한다. 1990년 영화인데 스파이크 리는 이때에도 악동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스파이크 리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을 해서 블릭 길버트라는 재즈 연주가의 음악, 사랑, 생활을 보여준다. 어린이 때부터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배우기 시작흔 재즈 트럼펫을 불기 시작한 블릭 길버트.

블릭이 클럽에서 연주하던 6, 70년 시절은 40년대 본격 적인 흑인 브라스 밴드 재즈에서 개인 연주나 듀엣, 콰르텟 정도로 바뀌는 시기였다. 블릭은 재능이 있고 열정적이었지만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지신의 밴드가 제대로 정산을 받지 못하는 것과 믿었던 친구이자 매니저 자이언트(스파이크 리)가 도박으로 돈을 날리는 것으로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이 안 된다. 정신적으로 교감을 이루는 재즈 가수 클린다와 육체적으로 달려드는 클럽 소유주 모건스턴 사이를 오고 가며 바람을 피운다.

일과 사랑 둘 다 잡아야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결국 둘 다 놓치게 되는 순간까지 떨어진다. 이 영화는 스파이크 리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영화다. 음악과 사랑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블릭 길버트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잘 보여준다.

블릭 길버트는 아주 젊을 적 덴젤 워싱턴이, 그리고 그와 음악적으로 쌍벽을 이루는 연주가로 웨슬리 스나입스가 나온다. 액션스타로 알려진 두 사람의 음악으로 대립을 보이는 구조가 흥미진진하다.

영화의 백미는 블릭이 부르는 모베터 블루스다. 그 유명한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직접 연주를 했다. 이 곡은 마살리스가 트럼펫 연주가 테렌스 블렌차드와 함께 곡을 만들었다. 명곡으로 지금까지 라디오에 꾸준하게 나오고 있고 브랜포드 마살리스는 우리나라에도 왔었다.

스파이크 리의 아버지가 베이시스트로 이미 어릴 적부터 재즈에 녹아들어 있었다. 스파이크 리는 언제나 흑인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89년작 똑바로 살아라를 보면 이탈리아인과 흑인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흑인 폭동까지 이어지는데 영화 속에서 한인 슈퍼를 점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92년 영화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LA 폭동이 일어나고 한인타운에서 약탈로 이어졌다.

아무튼 재즈를 좋아하고 아직 보지 못했다면 모베터 블루스를 보기 바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상의 수많은 배열이 있지만 상위의 그릇 배열이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밥을 김에 찍어서 먹고 어묵 국을 한 모금,

그리고 고등어구이를 젓가락으로 뜯어서 입안으로.

미역무침으로 마무리를 한다.

계란 프라이를 밥 위에 올려 비비 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건 상위의 배열 덕분이다.

마음 같아서는 큰 그릇에 전부 넣고 비벼 먹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먹으면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뱃속으로 음식이 들어가 버린다.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밥 상 위 배열은 그게 가능하다.

그래서 맛을 느끼며 맛있게 밥을 먹자.

새해가 밝았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영화는 달려라 하니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극장에도 비슷한 시기에 걸렸고, 또 비슷한 시기에 오티티로 풀렸다. 100미터가 달려라 하니에 비해서 훨씬 재미있다.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달려라 하니 극장판은 이 영화 [100 미터]의 십 분의 일 만큼도 따라가지 못한다.

영화 속 25년의 서사를 이렇게 잘 풀어냈다. 100미터 단거리 하나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대부분의 감정을 표현했다. 마지막 고통을 딛고 토가시가 전국 대회에서 출발하기 직전에는 보는 내가 조마조마했다. 보는 이들로 그런 마음을 끌어냈다.

만화 주제에 잠깐의 기쁨을 맛본 후 무너지는 감정의 장면은 몰입 그 자체였다. 불안은 극복하려는 게 아니다. 단거리를 달리는 것뿐인데 그 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선수들에게 존재한다. 그러나 불안을 극복하려고 하면 할수록 불안은 더 들러붙는다.

경쟁자를 이겼을 때의 기쁨보다 졌을 때 받아들이는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 패배했다고 느끼지 않는 것, 결코 좌절하지 않는 것, 졌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라며 말하는 토가시가 이미 눈물을 흘리며 무너질 때 마음이 아프다. 어째서 달려라 하니에서는 이런 절박함이 없었을까.

천재들이 한 번 패배로 굴러 떨어지는 삶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찾고 싶지만 현실은 너무나 냉정하다. 1등이라고 생각하면 특등이 나오고, 오늘 최상의 컨디션인데 더 한 컨디션의 놈이 나타나고. 그러나 붕괴 속에서 자신을 잡아가는 모습이 마냥 슬프지는 않다. 그래서 좋다.

현실이 뭔지 모르면서 현실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현실을 적확하게 꿰뚫지 않으면 도망을 쳐도 그게 도망이 되지 않는다. 이도 저도 아닌 정지 상태밖에 되지 않는다. 도망을 치더라도 현실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도망을 칠 수 있다면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 100미터 경주.

이 안에 희망, 실망, 영광, 좌절, 피로, 만족, 초조, 성취, 희로애락 이 모든 감정이 다 있다. 이 영화에는 빌런이라도 스테레오 타입이 없다. 전부 그 캐릭터에 몰입하게 만든다. 하니의 주나비 일당은 그냥 스테레오 타입이다. 게다가 100미터에 나오는 캐릭터의 운동화를 봐라, 어떤지.

토가시를 보니 우리나라 양예원이 생각났다. 초신성이라며 천재가 나타났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중학교 때까지도 천재 양예원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후, 방치된 채 지금은 거의 소식도 알 수 없다.

현재 양예원은 전담 코치도 없이 강원 소속인가? 거기서 뛰고 있지만 초등학생 수준밖에 안 된다. 근래 양예원의 인터뷰를 보면 그 모든 걸 인정하면서 무너진 자신에 대해서 실망을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양예원은 100미터에서 주인공 토가시처럼 보였다.

극복을 해서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 다시 일어서겠다는 인터뷰였다. 달리는 속도가 아닌 달리는 이유와 방향에 대해서 말하는 양예원은 100미터 주인공 토가시를 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100미터는 너무 좋은 영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캐셔로가 나는 뭔 뜻이라고. 준호 얼굴도 그렇고, 대사도 그렇고 꼭 주성치를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눈 희번덕 변한 노장 초능력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터져 나오는 욕이라든가, 심각해지려고 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준호의 주성치 같은 대사가 재미있다.

7화인가, 8화인가 빌런 우르르하고 상대할 때의 모습은 영판 쿵후허슬 돼지촌에서 빌런들과 싸우는 주성치 같았다. 단지, 액션이 그때보다 좀 못하다.

기술력이 20년이 발전했어도 영화는 기술력으로만 가늠할 수 없다. 영화나 이런 시리즈는 어떻든 감독의 예술이기에 후반작업의 문제다. 돼지촌에서 주성치가 싸울 때 발로 뻥뻥 차니까 띠링띠링하면서 빌런들이 막 날아간다.

그만큼 재미를 줘도 괜찮을 법했는데 좀 아쉽다. 이 짠 내 가득한 초능력자 강상웅이 진정한 초능력자로 태어나는 이야기다.

강상웅은 혼자서 영웅이 될 수 없다. 민숙이도, 변호사도, 빵미도 그리고 형사와 사채업자, 무엇보다 나를 모르는 불특정 타인이 도와줘서 그게 가능하다.

강상웅이 슈퍼히어로는 이렇게나 힘든데 어떻게 사람들을 도우면서 빌런도 때려잡으면서 가정을 원만하게 이루며 보낼까 생각한다.

영화적으로는 그래서 뉴욕에만 슈퍼히어로가 100명이 넘는다. 아이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 각종 맨들에 슈퍼우먼까지 100명에 달한다. 그래야 뉴욕이라는 시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가정을 이룬 가장이 그렇다. 회사에서, 가게에서, 점포에서 각종 빌런들과 매일 싸우면서도 가정의 평화를 유지한다. 그러기 위해서 피 땀 눈물을 흘리며 일상을 지켜내고 있다.

신파 같지만 캐셔로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매일 평범하고 평온하게 일상을 보내는 게 굉장한 일이다. 뉴스에 매일 같이 나오는 사건사고를 잘 피해 가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매일 보내는 건 초능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스타워즈 영화 전 시리즈를 다시 한번 전부 봤다. 스타워즈는 황제가 다스베이더가 된 아나킨을 필두로 해서 은하계를 점령하려고 계엄을 일으켜 전 우주에 퍼져 있던 제다이를 몰살한다.

이후 은하계는 척박해지고 검문이 일상화된다. 오비완 시리즈나 안도르 시리즈, 시퀄 3부작을 보면 잘 나온다. 제국의 병사들, 스톰트루퍼들이 마을에 오면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병사들이 아무런 해코지 없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황제와 격변한 아나킨은 어린 제다이들까지 전부 죽여 버리고, 은하계 대표들이 모인 의회에서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다. 아직 숨어 지내는 제다이들을 전부 잡아들으려 은하계를 샅샅이 뒤진다.

그 사이에 제다이를 숨기고 있다며 각 행성의 일반 사람들을 잡아서 죽인다. 그 역할을 하는 건 제국의 병사가 된 원래 제다이들이다. 이게 현실이라면 동사무소를 비롯한 각 구청과 시청 그리고 대학 병원과 종합 병원의 입구는 총을 든 계엄군이 경계를 선다.

포스를 숨기며 살아가는 숨은 제다이, 오비완을 잡으려고 다스베이더는 병력을 동원한다. 거기에 반하는 제국 군은 손대지 않고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오비완에게 패배한 아나킨은 용암이 흐르는 곳에서 팔다리가 녹은 채 황제에게 구출되어서 가면과 갑옷을 입고 생명을 유지한다.

레아는 쌍둥이를 낳으며 죽고, 파드메의 딸 레아, 아들 루크는 따로 떨어져 서로 모른 채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레아가 10살이 되던 해 제국 군에 납치를 당하고 레아 부모는 숨은 오비완에게 레아를 구출해 달라고 한다.

이후 오리지널 3부작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후에는 시퀄 3부작으로 끝을 맺는다. 시퀄 3부작은 한 솔로와 레아의 아들딸이 포스를 이어받아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시퀄 3부작은 혹평을 들었다.

제작자가 팬들보다 스타워즈 이해도가 낮아서 손을 놓는 바람에 감독들이 그냥 마음대로 만들어서 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디즈니사가 밀어붙이는 정치적 올바름을 가득 넣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터치를 하지 않는 디즈니 CEO 덕분에 이상하잖아! 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그래도 영화 기술의 발전으로 볼거리가 흘러넘친다. 황제의 계엄으로 은하계를 점령하고 독재를 이어가던 제국에게 제다이들만으로는 저항이 어려웠다. 일반인들이 반란군에 되어 모두가 황제에게 저항했기에 은하계의 민주주의를 찾았다.

스타워즈는 볼거리가 가득 한 스페이스 오페라 판타지 영화지만 서사는 단순하다. 독재를 하고 싶은 권력자가 계엄을 통해 은하계의 자유를 말살했지만 제다이들을 비롯한 반란군이 된 일반 사람들의 저항기다.

시퀄 3부작에서 제다이들이 너무 슈퍼맨 같은 초능력자들로 변해서 좀 아쉽지만 그래도 눈은 재미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