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울산역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사진으로 보이는 우측으로는 전통시장으로,

시장은 지금도 이어져있다.

죽 이어져 곰장어골목까지 이어진다.

오래전에는 역 정면으로 홍등가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9시인가 10시가 되면 청소년은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단속을 했던 것으로 안다.

그렇게 밤이 되면 청소년이 지나갈 수 없는 홍등가가 몇 군데 있었다.

구 중구청 거리와 국민은행 반려견 용품이 있던 거리가 그랬다.

구 울산역에 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의 글을 받아서 잘 엮어 디지털 출판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구 울산역의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40대 이상일테고,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갈비탕을 먹고 나면 그릇 밑에 남은 찌꺼기처럼 내내 마음 어딘가 남아서 부유하고 있어서 추억으로 꺼낸다면 좋은 에세이들이 나올 것 같았다.

밑으로는 현 성남동 골목의 모습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폰이라 아쉬운 사진이고,

폰이 있어 바로 사진을 담을 수 있어서 좋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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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그림



the bird fights its way out of the egg. the egg is the world. who would be born first must destroy a world. the bird flies to God. That God's name is Abraxas.

데미안에서 한 세계를 파괴한 새가 신에게 날아간다고 했고 그 신의 이름을 아프락사스라 했다. 이름도 참 아프락사스하다. 아프락사스는 무엇일까. 아프락사스 아프락사스. 계속 되뇌어봐도 입에 더 담고 싶은 아프락사스. 내가 노래를 만든다면 제목을 아프락사스라고 하겠어.

우리는 모두 아프락사스다. 설령 그것을 부정하거나 또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욕망은 끊임없이 잠재된 초월을 건드려 아프락사스가 된다. 아프락사스는 결국 맹점을 지니고 우주를 한 바퀴 돌아 자기에 도달하는 원점이다.

융이 아프락사스에 대해서 말했다. 아프락사스란 삶과 죽음, 저주와 축복, 참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 아프락사스란 결국 우리, 나 자신을 말한다.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 한 세계를 파괴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새가 되어 나는 나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기도처럼 아프락사스를 말한다. 아프락사스. 아프락사스. 데미안이여 아프락사스라고 몇 번을 외쳐야 합니까. 같이 놓일 수 없는 두 가지의 모순이 한 마음에 내재되어 있어서 때로는 비참한 순간에 접어든다. 신과 악마를 동시에 받아들인다. 아프락사스란 그런 것이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사랑하고 있는 감정은 우리가 아프락사스이기 때문이다. 잊고 있더라도 우리는 우연이라는 묘한 시공간을 뛰어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프락사스가 된다.

아프락사스 속에서도 내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한 번만이라도 살아있다고 느끼고 싶도록 영혼에 불을 지른다.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나는 아프락사스가 된다. 한 세계를 파괴하고 알에서 깨어나 아프락사스에게 날아간다.

아프락사스는 입구이자 출구가 된다. 의심이 없는 세계 그곳이 아프락사스. 정신의 혼돈과 방황은 때로 육체를 단단하게 만든다. 단단해진 육체를 가지고 아프락사스가 된다. 그곳에서 모성적인 에로티시즘 그녀를 만난다. 그녀와 나는 서로 소름 돋는 애무를 한다. 마치 뱀에게 쫓긴 쥐가 궁지에 몰려 뱀에게 마지막으로 대들다가 뱀의 아가리에 박히는 순간 쾌락과 동시에 공포를 맛보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버브의 노래를 듣는다. 아프락사스에서 버브가 사랑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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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는 보는데 정말 피 말린다. 조마조마함과 답답함과 화남과 억울함이 동시에 올라와서 빡치면서 보게 된다. 이렇게 피 말리면서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어제 일하면서 노부부와 이야기를 30분 정도 했는데, 그러더라고 요즘은 현관문이 닫히고 나면 그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 수 없다고. 전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게다가 가족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미친 사이코패스라면 말이다. 시리즈에서처럼 많은 이들이 도와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 시리즈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나오미와 가나코]가 원작이다. 이 소설을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세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일반 여성 둘이서 계획을 세워서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는 정말 좋았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은 읽는 재미를 준다. 작은 사건이 작은 사건을 만나면서 점점 커지는 사건을 잘 풀어내기도 하고, [공중그네] 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같은 기묘한 정신과 의사 캐릭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오쿠다 히데오는 여성의 심리나 여성의 입장을 잘 아는 거 같다. 소설 [마돈나]나 [걸]에서도 잘 표현했다. 읽는 재미가 있다. 또 부산을 좋아해서 와서 냉면만 먹고 가기도 한다.

[나오미와 나나코]는 일본에서 한 번 영화가 만들어졌다. 아내를 장난감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 남편에게 폭행을 밥 먹듯이 당하는, 내 몸보다 소중한 친구를 위해 그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하면서 3화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 수 없는 인간인 이무생을 비롯해서 주위의 인물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현실에서도 시리즈에서도 피해자가 행복해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사이코패스지만 그 사람 때문에 피해를 보는 멀쩡한 사람들이 정신과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느라 세상에 고통이다.

8번 출구에서도 말하지만 외면하는 순간 관계는 엉망이 되고 비틀어지면서 지옥이 된다. 전소니와 이유미의 현실판 델마와 루이스 버전. 남편을 죽이자.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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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20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의 원작소설이 있었군요. 공중그네는 읽었던 소설인데, 이 소설도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하네요.

교관 2025-11-21 11:4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소설이 제일 재미있고, 일본판 드라마도 재미있어요. 한국버전은 요즘에 맞게 각색이 좀 되어서 또 보는 재미가 있어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렇게 울컥 하기는 처음이다. 이는 목소리 더빙, 현실감 백퍼센터에 달하는 작화, 아이들을 대변하는 음악, 무엇보다 소리와 동순 그리고 호연의 이야기가 안타깝고 그립고 고마워서 그럴지도 모른다.

학폭 때문에 전학 간 학교에서도 소심한 소리가 호연에게 온 편지를 하나씩 찾아가는 보물찾기 방식을 따라 보는 우리도 소리와 동순이 되어 같이 따라간다.

도대체 왜 이런 편지를 숨겨 두었는지, 어쩌자고 이 힘들고 무서운 세계에서 이렇게도 다정하게 편지를 써 놨는지, 그리고 소리라는 걸 어떻게 알고 편지를 숨겨 두었는지.

세 명의 주인공들은 전부 아픔이 있다. 그것이 내면이든 병이든. 그리고 모두가 그걸 견디고 이겨내려고 한다. 그 동력이 바로 친구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산속에 숨어 있는 동순을 찾아온 호연. 사실 어떻게 찾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애의 특이란 능력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날 찾기 위해 산속을 찾아 헤맨 것이 내겐 훨씬 더 놀라웠기 때문에.

동순과 소리는 호연에게 도움을 받고 있었거나 있었다. 동순은 직접적으로, 소리는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리하여 소리와 동순은 호연을 찾으려 한다.

호연은 마치 난 다 알아 하는 위치와 능력자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실은 세 명 중에 가장 나약하고 아픈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러나는 비밀.

영화 속 배경이 요즘은 아니다. 휴대전화가 없고, 공중전화, 카세트테이프, 나무격자무늬의 방문 등. 아무렇지 않게 건넨 내 손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영화 속에는 좋고 멋진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네가 숨처럼 내쉬던 작은 호의들을 난 평생 기억할 것이다.

소리는 연의 편지로 살아갈 희망을 가졌지만, 그건 소리에게 받은 호의를 갚는 연의 방식이었음을.

원작과 전학의 배경이 살짝 다르지만 거의 똑같이 이어진다. 악뮤의 이수현이 소리의 더빙을 맡았다. 이수현의 노래 ’연의 편지‘도 들어보자.

우리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를 아이들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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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그림



the bird fights its way out of the egg. the egg is the world. who would be born first must destroy a world. the bird flies to God. That God's name is Abraxas.

데미안에서 한 세계를 파괴한 새가 신에게 날아간다고 했고 그 신의 이름을 아프락사스라 했다. 이름도 참 아프락사스하다. 아프락사스는 무엇일까. 아프락사스 아프락사스. 계속 되뇌어봐도 입에 더 담고 싶은 아프락사스. 내가 노래를 만든다면 제목을 아프락사스라고 하겠어.

우리는 모두 아프락사스다. 설령 그것을 부정하거나 또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욕망은 끊임없이 잠재된 초월을 건드려 아프락사스가 된다. 아프락사스는 결국 맹점을 지니고 우주를 한 바퀴 돌아 자기에 도달하는 원점이다.

융이 아프락사스에 대해서 말했다. 아프락사스란 삶과 죽음, 저주와 축복, 참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 아프락사스란 결국 우리, 나 자신을 말한다.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 한 세계를 파괴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새가 되어 나는 나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기도처럼 아프락사스를 말한다. 아프락사스. 아프락사스. 데미안이여 아프락사스라고 몇 번을 외쳐야 합니까. 같이 놓일 수 없는 두 가지의 모순이 한 마음에 내재되어 있어서 때로는 비참한 순간에 접어든다. 신과 악마를 동시에 받아들인다. 아프락사스란 그런 것이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사랑하고 있는 감정은 우리가 아프락사스이기 때문이다. 잊고 있더라도 우리는 우연이라는 묘한 시공간을 뛰어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프락사스가 된다.

아프락사스 속에서도 내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한 번만이라도 살아있다고 느끼고 싶도록 영혼에 불을 지른다.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나는 아프락사스가 된다. 한 세계를 파괴하고 알에서 깨어나 아프락사스에게 날아간다.

아프락사스는 입구이자 출구가 된다. 의심이 없는 세계 그곳이 아프락사스. 정신의 혼돈과 방황은 때로 육체를 단단하게 만든다. 단단해진 육체를 가지고 아프락사스가 된다. 그곳에서 모성적인 에로티시즘 그녀를 만난다. 그녀와 나는 서로 소름 돋는 애무를 한다. 마치 뱀에게 쫓긴 쥐가 궁지에 몰려 뱀에게 마지막으로 대들다가 뱀의 아가리에 박히는 순간 쾌락과 동시에 공포를 맛보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버브의 노래를 듣는다. 아프락사스에서 버브가 사랑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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