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지널로 다시 본 베티는 예전처럼 마냥 아름답고 예쁘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건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겠지. 퐁네프의 연인들에 푹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다시 보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다시 보면 더 나은 영화들이 있다. 그 대부분이 오래된 한국영화들이다. 7, 80년대, 90년대 초 한국영화들을 다시 보면 이렇게 재미있다고?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세계의 거장, 당시 세상을 강타한 감독들의 영화들은 근래에 다시 보면 더 낫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본 베티는 장 자끄 감독의 여성 판타지 표본이다.
젊고 어리고 예쁘고 최소한으로 걸치고, 그것마저 싫어서 누가 보든말든 성기를 더 드러내고. 원작자나 감독의 판타지 여성관처럼 보인다.
원하는 사랑을 얻어내지 못하면 광기가 극에 달하는 모습이나 거절당하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광기를 넘어 살인 욕구에 방화까지 내는 베티가 마냥 예뻐 보이지는 않는다.
베티를 통해 감독의 관음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불쾌하기까지 하다. 오리지널은 세 시간이 넘는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판타지다.
베티와 조그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만 있고 두 사람은 너무나 자유롭고 그 미쳐버린 자유로움에 주위의 친구들이 동조를 하고 받아준다. 경찰도, 형사도 전부 조그와 베티의 저 세상 자유로움에 불을 지핀다.
조그와 베티는 시 같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는 반짝이지만 자칫 잘못 건드리면 폭발하여 상처를 낼 수 있는 시 같다.
스무 살의 베티는 어제 한 사랑으로 오늘을 살기 싫다. 오늘은 어제보다 새롭고 더욱 격정적인 사랑을 원한다. 그게 충족되지 않을 때 점점 망상에 사로잡힌다. 37.2도는 임신의 온도다.
베티는 사랑의 끝이 임신이라 생각하고 성공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망상은 끝으로 치달아 자신의 한쪽 눈을 뽑고 만다. 그 후유증은 참혹하고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
베티가 아름답고 매일 반짝일 수 있었던 건 베티의 망상 모든 것을 받아준 조그 덕분이었다. 베티에겐 이 세계가, 이 시대가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좁고 답답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