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디오를 듣는데 디제이가 자신의 친구가 거구에다가 운동도 잘하는데 벌 한 마리에 그렇게 무서워한다고 했다. 벌이 어딘가에서 이잉 나타나면 어린이처럼 무서워서 공포에 떤다고.
하루키도 고소공포가 있어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건 질색팔색을 하지만 내색을 할 수 없을 때는 난감하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높은 곳에서는 덜하지만 인공적인 곳, 아파트의 고층이나 빌딩의 고층은 공포라고 했다.
그래서 높은 곳을 좋아하는 자신의 아내는 늘 높은 곳에 가면 팔짝팔짝 뛰면서 즐거워해서 꼭 자신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하루키는 공포심도 재산의 하나라고 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대단하다든가, 느끼면 형편없다든가 하는 식으로 단면적인 단정을 내릴 수 없다고 했는데, 역시 동감한다. 공포라는 건 질이 분명 다르고 같은 질의 공포라도 깊이가 달라서 옆의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공포를 내가 느낀다고 해서 그게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벌레를 무서워하고 벌레를 보면 공포를 느끼는 건 인간의 신체 생김과는 별개의 문제다. 또 갇힌 공간에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 역시 튼튼하게 생긴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어떤 사람은 운전을 할 때 옆에 엄청 큰 덤프트럭이 있으면 공장한 공포를 느끼고, 또 다른 이는 집안 대대로 이어지는 병적인 유전적 요인에게 공포를 느낀다.
공포라는 건 사람의 얼굴처럼 다 달라서 공포를 느끼는 것 역시 제각각이다. 나도 고소공포가 있어서 밑이 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면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밑이 훤히 보이는 높은 곳에 서면 공포를 느낀다.
바이킹도 무서워서 한 번 타고서는 이런 걸 왜?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바이킹을 타는 것을 무서워하면 주위에서는 꼭 바아킹을 태워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남이섬에서 번지점프를 한 번 뛴 적이 있다.
당시에는 제일 높은 55미터였다. 66미터 번지점프가 이후에 나타났다고 하던데, 660미터든, 77미터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순전히 그때 만났던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한 달 전부터 같이 번지점프를 하기를 바랐다.
번지점프는 계산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공포를 유발하는 것들이 있다. 요컨대 잘못되어도 어쩌구 하는 서명을 하고, 주머니에 있는 것들은 전부 빼야 한다. 만약 당신의 주머니에 콘돔이 있다면 미리 치워놓기를 바란다. 안경도 벗어야 하고 시계나 반지도 다 빼야 한다.
그렇게 승강기에 올라 기이이잉 올라가는데 점점 멀어지는 땅을 보면서 현기증이 나기 시작한다. 다 올라가면 조교가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점프대에 서면 조교가 발뒤꿈치를 탁탁 쳐서 점프대의 끝선에 맞물리게 한다.
바로 앞이 공허한 허공이다.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펼쳐진다. 어떻든 뛰어내렸다. 다시는 이런 짓은 하지 않으리 다짐을 했다. 그러나 번지점프는 아니지만 제주도에서 이 비슷한 경험을 또 한 번 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