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온통 은유에 은유, 그 사이사이에 메타포가 다시 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겉으로는 외계인이 신체 강탈한 여자의 몸으로 식량을 찾으러 다니는 이야기지만 그 사이를 벌리면 은유가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다.
인간 식량을 구하기 위해 로라의 몸을 빌린 외계인은 로라의 활동무대에서 멀리 벗어난 스코틀랜드의 아주 한적한 곳으로 간다.
감독은 스칼렛 요한슨을 주인공으로 스코틀랜드의 촌구석으로 가서 남자들을 만나는데 그 남자들 중에는 실제 현지인도 있다.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이 그저 영국 촌으로 온 미국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스칼렛 요한슨 정도라면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배우가 아닌가. 그렇지만 그렇게 유명한 배우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가득 있다.
외계인이 사람의 육체를 강탈했지만 어쩌면 영화는 영화가 현실의 사람의 배역을 강탈해서 여주인공으로, 더 나아가서 영화라는 산업이 이 세계에 외계인처럼 미치는 이야기를 말하지 않을까.
나는 이 감독의 뮤비 중 [매시브 어택]의 뮤비를 아주 좋아한다. 그건 정말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 영화도 보는 이들에 따라 은유를 찾아서 끼워 넣으면 자기만의 이야기가 완성될지도 모른다.
대사는 별로 없지만 그 대사를 음악이 대신하는데 바이올린 연주라든가, 영화 음악을 듣는 것으로도 이 영화는 좋다. 영화라는 예술은 좋은 것이지만 영화라는 산업은 그렇게 아름답지 만은 않다.
그 검은 늪의 세계에 빠지게 되면 허우적거리며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벽할 것 같았던 로라도 의식과 감정의 변화를 일으킨다. 사람들 사이에 살아가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신경섬유종을 앓는 얼굴 장애의 남자 때문이다.
거기서 로라는 연민, 두려움, 애틋함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언더 더 스킨에서의 교감이란 것을 알게 된다. 굳건하던 영화라는 거대한 산업도 자신의 치부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로라가 한 남성과 야스 중에 성기의 이상함을 감지한다. 거기서 죽음, 몰락, 멸망의 공포를 느낀다. 스칼렛 요한슨의 껍데기로 들어간 로라가 나왔을 때, 하얀 눈이 내리는 가운데 불에 타서 연기가 되어 오르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언더 더 스킨은 생각하는 모든 현상에 집어넣어도 될 만큼 좋다. 감독은 영화를 마치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화면으로 표현을 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은 경계나 경계선으로도 좋을 것 같다.
감정에도 경계라는 게 있고, 하늘과 하늘 사이에도 경계가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 경계가 있고 영화와 관객 사이의 경계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 경계라는,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싶어서 악착같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실수가 전부 실력이 되지 않고 실패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