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있었던 일이다. 2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를 부부가 돌보다가 서로 미루는 모습을 보았다. 2살짜리 남자아이는 굉장한 에너자이저였다. 엄청난 행동력과 멈출 줄 모르는 호기심 본능이 엄마를 힘들게 했다. 엄마 혼자 아이를 돌볼 수 없고, 아빠 혼자서도 무리였다. 부부가 같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부부는 힘이 들어서 자꾸 화장실이다, 편의점이다, 한 명이 한 명에게 아이를 맡기고 자꾸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부부는 그런 육아 때문에 그동안 마찰이 있었던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요즘은 육아가 참 힘들다. 무엇보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일이 많아진 요즘에는 더 그런 것 같다. 아이에게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러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티브이 광고 중에 정관장 광고를 보니 90년대 초반 영상이 나오며 젊은 부부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노는 장면이 나온다. 주 6일 일을 하면서도 일요일에는 우리들을 데리고 놀아주고 어디를 데리고 다녔던 우리 부모님. 같은 이야기를 광고는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덜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름 방학 때 에어컨도 없지, 날은 더운 여름날에 심심하고 더위에 허덕이고 있을 때 밤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바닷가에서 눈을 뜬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는 잠든 우리를 안고, 업고. 차도 없어서 택시에 잠든 우리를 태우고 바캉스 물품을 챙겨 음식까지 싸들고 새벽에 바닷가로 온 것이다. 도대체 부모님은 어디서 그런 초능력이 나왔을까.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 상당히 가난했다. 어렴풋한 기억에 단칸방에 네 가족이 살았다. 아버지는 학창 시절에 공부는 등한시하고 놀러 다니고 사고나 치는 문제학생 축에 속했다. 이미 그때 팔뚝에 문신도 새기고 타학교 아이들과 싸우느라 유치장에 들락날락거렸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외할머니에게 가서 엎드려 빌다시피 해서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면 정신을 차리겠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도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아버지 주위에는 늘 후배나 선배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월급도 그날 다 써버리고 어머니의 속을 많이 상하게 했다. 결혼을 해서도 유치장의 신세를 여러 번 졌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누나들, 고모들이 빼내 주었다.


그러다가 내가 태어났고 아버지가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집으로 들어와서 보니 갑자기 현실에 부딪혀 겁이 났던 것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전혀 미래가 없다고 느끼고 주위 사람들을 버리고 나와 어머니를 데리고 지금 이 도시로 와서 중공업에 취직을 해서 죽어라 일을 했다. 당시는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노동의 대가를 얻는 시대였다. 회사와 집이 버스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거리라 아버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직접 아침을 챙겨 드시고 출근했다. 그동안 어머니에게 미안했던지 새벽에 어머니는 계속 주무시게 하고 아버지는 늘 라면을 하나씩 끓여 드시고 출근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일어나면 먹으라고 꼭 밥그릇에 라면을 들어 놓고 출근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라면은 국물이 하나도 없고 퉁퉁 불어서 식은 라면이 한 그릇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저걸 어떻게 먹나 했다. 젓가락으로 뜨면 다 불고 붙어버린 라면이 그대로 젓가락에 붙어 올라왔다. 그러나 한두 번 먹다 보니 식어빠지고 불어 터진 푸딩화 된 떡 진 라면이 멋있었다. 참 기묘한 일이다.


동생이 태어나고 아버지는 담배도 끊었다. 회사에서 나 오늘부터 담배를 끊을 테야,라고 선언했고 직장동료들은 에이, 무슨 그런 거짓말을.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날로 바로 담배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회사 동료들은 아버지를 독한 사람이라고 해서 독 없는 독사라고 불렀다. 회사 야유회 때 아버지의 동료들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아버지는 동생이 태어난 이후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렇게 해서 방이 두 개에 거실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우리들 사진을 찍어서 출력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가 3대 있었다. 6일 동안 새벽에 나가 저녁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와서 녹초가 되었어도 일요일이 되면 우리를 데리고 극장이다, 동물원이다, 놀이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다른 집에 비해 사진 앨범이 많았다. 앨범 속에는 어린 시절의 나와 동생의 모습이 많이 있다. 그때 함께 사진 속 아버지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분명 삶을 살아내느라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을 텐데.


5학 때인가 겨울에 온 가족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연탄가스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텐데 아버지는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119를 부르면 될 텐데 아버지는 급한 마음에 10분 정도 거리에 병원이 있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온 가족이 병실에 누워 치료를 받았다. 시간이 좀 지나 아버지는 그때의 일을 재미있게 떠올리곤 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우리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셨다. 어른이 되고 보니 아버지도 얼마나 울고 싶었을까. 그 엄청난 무게, 압박감에 울어도 괜찮을 법도 한데 절대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요일이 되면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같이 놀아주고 그 놀이를 즐겼다. 여기 서 봐, 그래 거기 서 봐. 카메라 보고.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주었다. 사진은 시간을 잡아두는 마법을 펼친다. 집에 있는 앨범은 잘 펼쳐 보지 않게 된다. 그래도 헙, 하며 마음을 먹고 오래된 앨범을 펼치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 시절 속 부모님은 초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멋지게 살아갈 용기가 없어서 나의 모습이 비겁해 보이는 요즘이다.

아빠를 따라 나온 바다

세상은 바다와 같단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다는 것

어려우면서 꽤 멋진 일인 거 같아

어딘가에 있는 나의 행복을 바라는 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일과 마주하고 있는 일일지도 몰라

혼자서 세상에 발을 내밀기 전까지는 아빠가 곁에 있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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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9-12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찍는 일이 알게 모르게 그렇게 전해져 내려온 거군요.

교관 2023-09-13 11:57   좋아요 1 | URL
아가를 담은 엄마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전부 그 사진이 그 사진 같은데 엄마의 눈에는 다 달라보이죠 ㅎㅎ 그 수많은 아가의 사진에서 사랑이라는 걸 소거하면 정말 재미없는 사진들인데 엄마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며 웃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