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을 맞이하면서 동반되는 연중행사 같은 것이 공포프로그램이 티브이를 통해 나온다는 것이다. 공포영화가 케이블 영화 채널을 통해 나오고, 심야 괴담회 역시 여름 특집으로 단단하게 중무장해서 나올 것이다. 여름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제갹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티브이는 예전부터 여름이 되면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서 내보내고 있다.
일본 채널에서도 오밤중에 공포 이야기를 방송한다. 기묘한 이야기라든가,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등 이런 프로그램은 20년 이상씩 된 프로그램으로 장수 프로그램이다. 10주년, 20주년 기념 방송을 하기도 하는데 그때에는 일본 내에서도 잘 나가는 배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이 서린 우리네 이야기에 비해 일본의 서민 공포는 민담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복수라는 개념보다 귀신이나 오니가 개뜬금 없이 나타나서 인간을 괴롭히거나 죽이거나 저쪽 세계로 데리고 간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서 귀신의 종류도 많고 믿고 있는 신이나, 모시는 신도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기독교가 강세인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는 기독교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한국의 사이비 종교를 내세우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단 기독교의 모습이 많지만,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기독교가 나오는 비중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성은 김, 박, 이, 최 등 300여 가지의 성이 있지만 일본은 10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인처럼 성을 불러도 자신을 부르는지 안다. 우리나라처럼 도심지에서 김 씨! 하고 부르면 한 스무 명이 돌아보는 것과는 다르다. 귀신이나 신도 우리나라보다 종류도 다양하고 수도 월등하게 많아서 그런지 여전히 오래된 공포 이야기를 드라마로 제작해서 내보내고 있다.
한을 주로 다루며 강력한 무기, 구미호를 내세운 전설의 고향도 장수 프로그램이었는데 좀비라든가, 뱀파이어, 사이코패스에게 자리를 내주며 씁쓸하게 은퇴를 해버렸다. 전설의 고향 시리즈도 감독과 제작사를 잘 만났다면 아직도 여름에 한반도를 강타하고 지금은 넷플릭스 같은 오티티 플랫폼을 타고 확장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현재 악귀, 마당이 있는 집 같은 시리즈가 공포를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공포와 무서움에는 미미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악귀는 김태리와 오정세가 열연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악귀가 씐 사람들의 이야기다. 귀신 이야기라는 것. 그 안에는 아이를 제물로 바친다거나 하는 아픈 이야기도 있다. 마당이 있는 집은 서스펜스다. 느리게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그 느림의 미학이 주는 공포가 또 꽤 두렵다. 인간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공포를 준다.
우리나라 공포영화도 계보가 죽 있었다. 그중에 한국 공포영화사에 남길 만한 영화가 ‘스승의 은혜’였다. 복수하는 이야긴데 우리나라 최초로 신체훼손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자칫 처음이 재미없을 수 있는데 스승의 은혜는 아주 고어적이면서 공포적이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1974년에 일어난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을 열심히 영화로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은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데, 미래의 우주선까지 가기도 했다. 거기서도 아주 그냥 인간들을 작살낸다. 호스텔도, 쏘우 시리즈까지 열심히 신체훼손 공포영화가 나오고 있다.
신체훼손 하면 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포영화도 다양해야 하는데 그 이유라고 하자면 현실에서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나 기사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건 한계가 있다. 뉴스로 어떻게 세세하게 내보낼 것이며, 짧은 기사로도 그런 엄청난 일을 내보낼 수 없다. 요즘은 유튜브가 있어서 실제로 일어난 신체훼손 사건을 다루는 채널이 많이 있다.
홍콩에서는 아주 예쁜 모델 애비 최가 28살의 나이에 남편에서 살해당했다. 그런데 온몸을 전부 토막을 내서 일부 신체는 냄비에서 탕으로 끓였다고 한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이 사건이 올해 2월에 일어난 사건이다.
애비 최는 아주 예쁜 얼굴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엘리사브 봄 2023 여름 오트쿠튀르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글로벌 패션계의 주목을 받은 모델이었는데 딸을 만나러 갔다가 남편에게 살해당해서 온몸이 토막이 나버렸다.
이 사건은 올해 초 인터넷을 엄청나게 달구었다. 그 잔인함과 극악무도함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했지만 사실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가 된다면 또 얘기는 달라진다. 물론 영화제작 과정에서는 적잖은 타협과 잡음이 들어가겠지만 지금까지 잘 만든 영화들은 잘 만들어왔다.
우리나라는 공포영화를 너무 잘 만들려는 경향이 짙다. 여고생들의 아픔으로 시작한 여고괴담이 큰 인기를 얻다 보니 너무 잘 만드려고 하다가 전부 실패를 맛봤다. 몇 년 동안 나온 한국 공포영화는 무서운 공포보다는 어이없고 실없어서 공포였다. 가장 최근의 옥수역 귀신 같은 영화는 다시는, 절대 나오지 말았음 한다. 보면서 이렇게 개킹받은 영화는 근래에 처음이었다.
여름에 쏟아지는 공포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는 무섭다기보다 공포에 가깝다. 무섭다는 개념은 공포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감정 같다. 그래서 일본의 공포 영화, 전설의 고향이나 도시괴담을 주제로 만들어내는 공포 영화는 무섭다기보다 징그럽거나 놀라는 공포에 가깝다.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점프 스퀘어나 흉물의 얼굴을 가진 귀신이나 괴물은 징그럽다.
이런 공포는 인간이 인간을 가지고 살해하거나 신체훼손을 가하는 무서움에 비해 좀 덜하다. 홍콩의 애비 최 사건이나 우리나라 진돗개교 사건(멍멍 짖는 진돗개를 믿는 신도가 자신의 3살짜리 딸이 개에게 소리를 질러 교주와 함께 자신의 아이를 죽여서 파묻은 사건이 2016년도에 있었다) 같은 이야기는 무섭다. 실제로 내 주위의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조울증이 도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사건을 당한 사람들 역시 자신의 주변인들이 자신에게 그렇게 해를 가하리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런 공포는 순수한 무서움이다. 정말 무서움.
이쯤에서 유튜브로 볼 수 있는 단편 공포영화 한 편을 소개해 본다. 코믹호러다. 핀리는 처키와 에나벨 그 어디쯤 위치하는 공포 인형이다. 주인공들이 사는 집에 오게 된 핀리는 사악한 선배 인형들처럼 주인공들을 하나씩 잡아 죽이려고 한다.
혼자 있게 된 여자 주인공에게 칼을 들고 캬캬캬 달려드는데 여주 주인공이 긴 다리로 핀리를 걷어차 버린다. 당황한 핀리, 아 이게 아닌데. 핀리는 또 다른 여주인공이 욕조에서 목욕을 할 때 전기토스트기를 물에 집어넣어 감전사시키려고 욕조에 빠트리는 순간 꺄아 줄이 짧아 코드가 빠져 버린 것.
그 뒤로 핀리는 비닐로 얼굴을 감싸서 죽이려고 해도 입을 막지 않아서 실패, 음식에 쥐약을 넣으려다 실패, 화살을 설치해도 실패. 핀리는 우울하기만 하다. 주인공들은 핀리를 놀리고 이제 그만 인간 사회에 적응하라고 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핀리는 자신의 할 일이 없어져 다락으로 올라가 자신을 봉인한다. 그런데 그날 밤 강도들이 침입해서 주인공들을 죽창 낸다. 봉인되었던 핀리가 일어나 강도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주인공들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았던 방법이 전부 통하는 것이다.
신이 난 핀리는 극악무도하게 강도들을 무참히 죽인다. 덕분에 평화를 찾은 주인공들이 핀리를 가족으로 받아주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 핀리를 위해 선물도 주고, 핀리도 기뻐한다. 핀리는 심부름도 하고 주인공들과 친하게 지낸다.
주인공들은 파티를 즐기며 음료를 나눠 먹는데 맛이 좀 이상하다. 모두가 핀리에게 맛이 어떠냐고 묻는데 핀리는 마시지 않으며 끝난다.
유튜브 단편 영화로 아주 삼빡하고 잘 만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숨은 영화들을 찾아서 보면 능력자들이 많음에 놀람. 핀리 얼굴 보고 놀람. 퀄리티 보고 또 놀람.
https://www.youtube.com/watch?v=A0641hHG1IQ
J. Zachary Thu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