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조깅을 하러 강변으로 나오면 초파일의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제 곧 부처님 오신 날이구나. 일전에 오랜만에 김밥을 먹었는데 초등학생 때 부처님 오신 날이 생각이 났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음악과 음식은 추억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마치 악마와 계약을 한 것처럼 말이다. 이걸 먹으면 그때가 반드시 떠오를 거야!
초등학생 때 부처님 오신 날은 신나는 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크리스마스보다 더 좋았다. 같은 공휴일이지만 성탄절은 겨울방학 안에 있었고, 초파일은 평일의, 그것도 좋은 봄날에 있었다. 초파일이 월요일이었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월요일이 초파일이면 정말 좋지 아니한가.
크리스마스는 끝나면 허무한 마음이 따라다니는데 초파일은 끝이 나도 털끝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털끝하나 흔들리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성탄절은 한 달 전부터 온통 캐럴로 분위기를 하늘 저 위까지 띄우고는 만개했을 때 그대로 펑 터져버려 아주 허무했다. 고작 하루 차이인데 25일과 26일은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였다. 크리스마스 하루 지나서 듣는 캐럴은 듣기 싫었다. 그에 비해 초파일은 그런 의미부여가 없었다.
무엇보다 어릴 때 초파일이 다가오면 초파일 전 날에 거리 퍼레이드를 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지방에는 일본처럼 지역 축제가 늘 있었다. 유월에는 70년대부터 시에서 하는 불꽃놀이가 있었다. 그 규모가 꽤 컸다. 규모가 크다는 말은 시간적으로 꽤나 길게 불꽃놀이를 했다는 말이다. 불꽃놀이가 시작하면 동네의 공터 같은 작은 공원에 가족들이 다 나와서 자리를 잡고 음료와 빵이나 맥주를 마시며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 불꽃놀이가 끊어지지 않고 매년 유월에 계속되다가 코로나로 인해 끊어졌다. 올해는 하려나.
불꽃놀이는 애써 혼자서 보러 가지는 않는다. 모양도 크기도 컬러도 아름답고 다 다르지만 불꽃놀이가 끝나면 불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꽃놀이를 같이 봤던 누군가는 기억이 난다. 목마를 태워준 아빠가 기억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면 그 사람이 기억이 난다. 불꽃놀이는 내밀한 기억 속에 같이 했던 누군가를 소중하게 추억한다.
초파일의 밤 퍼레이드도 그렇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퍼레이드를 보며 어디까지 졸졸 따라가며 즐거워했다. 그중에 도형이도 있었다. 부처님에 관한 코스튬과 각종 개조한 차량의 행렬을 보는 게 좋았다. 마치 놀이동산의 디즈니 캐릭터의 행렬처럼 말이다. 우리는 신나서 따라다녔다. 초파일 전날 학교에서는 서유기 영화를 보여주었다. 지금이야 서유기가 너무나 많은 버전으로 우후죽순 나와서 재미가 없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손오공의 신공을 보는 것은 어린 우리의 눈에는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밤에는 퍼레이드를 보느라 재미있었고, 다음 날 초파일에는 늦잠을 잘 수 있었고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다. 초파일에도 하루 종일 티브이를 했고 서유기를 보여주었다. 서유기 영화, 드래곤볼의 만화, 만화책, 게임은 우리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5학년 때인가, 초파일에 이른 아침부터 도형이가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동생과 나는 자고 있었는데 우리 엄마와 함께 도형이가 김밥을 말고 있었다. 도형이는 김밥을 말면서 날름날름 집어 먹었다.
부스스 일어났을 때 아버지는 회사에 일찍 가셨고 엄마는 볼일이 있다며 김밥을 잔뜩 말아 놓고 나가시고 없었다. 도형이가 접시에 김밥을 잔뜩 올려 들고 와서 티브이를 보자고 했다. 동생과 나는 일어나자마자 김밥을 먹으며 티브이를 봤다. 아마 티브이에 서유기가 하고 있었겠지. 엄마는 사이다를 냉장고에 사 넣어두셨다. 우리는 김밥을 볼이 터져라 입에 넣어서 먹다가 사이다를 한 모금 마셨다. 김밥은 소풍 때만 먹었는데, 이렇게 김밥을 먹으니 풍요로운 맛이었다. 그때는 아마 그런 맛을 몰랐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