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세상에서 제일 춥다는데, 여기는 남부지방이라 그런지,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없어서 그런지, 춥지는 않고 차가운 날이다. 비발디 사계의 겨울처럼 냉기가 무척이나 시리도록 차갑지만 춥지는 않다. 햇빛도 강해서 어딘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면 외투를 벗어야 할 날이다. 겨울 같은 그런 날이다.


이렇게 쨍하면서 맑고 차가운 겨울의 날이 겨울 같을까. 해가 숨어버려 흐리고 잿빛 가득한 하늘과 대기가 건조하여 푸석하고 추운 겨울의 날이 더 겨울 다 울까. 같은 시간인데 어떤 시간의 오류로 인해 평행우주로 갈 수 있어서 들어가서 보니 같은 카페에 앉아 있는데 여기 세계는 쨍하고 맑은 차가운 겨울의 날이고, 저쪽 세계는 흐리고 잿빛 가득한 추운 겨울의 날이다.


카페에는 내가 앉아 있다. 지금 이후에는 여기 세계와 저기 세계의 같은 시간이지만 어떤 식으로 흐를까. 어제는 단편 영화를 한 편 봤는데 미국 영화이며 독립영화이며 1억 도 안 되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몹시 흥미로웠다.


친구 부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다. 와인과 하얀 접시들. 미국 미국 한 그런 저녁 식탁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전이 되고 친구의 부부 중 남자가 나가서 옆집에서 전등이나 뭔가를 빌리러 나갔다가 들어왔는데 놀라는 얼굴만 한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마구 다그치니 말 해도 믿지 못할 거라면서 저쪽 집 안에 우리들이 식사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쪽 집 안의 우리들과 이쪽 집 안의 우리들 중 한 사람씩 여기저기에 섞이면서 암튼 재미있었다.


유부초밥을 먹으며 보고 있었다. 그래 다중 우주론이 아니라 유부초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유부초밥도 나에게는 겨울의 음식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유부초밥을 10번도 안 먹어 봤다. 만약 김밥이냐 유부초밥이냐라고 하면 나는 김밥이지만 요즘은 유부초밥의 맛있는 베리에이션이 많아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우리 집 식구는 모두가 유부초밥과는 거리가 먼지 거의 먹지 않았다. 내가 유부초밥을 먹은 것은 겨울에 외할머니가 집에 오실 때뿐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집에 오시면 나를 꼭 데리고 시장에 갔다. 그래서 순대며, 고로케며, 유부초밥 같은 것들을 외할머니와 나란히 앉아서 먹곤 했다. 나는 친할머니도 없고,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도 없다. 오직 외할머니만 있었는데 외할머니는 손주들이 수두룩하지만 어쩐지 나에게 애정을 쏟았다. 그게 고등학교 1학년까지 지속되었다. 그 후에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전통시장에 가면 김밥골목이 있는데 죽 앉아서 먹는 그런 곳이다.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그저 빈자리에 가서 앉으면 맞은편에 있는 주인이 김밥이나 유부초밥이나 호박죽 같은 걸 준다. 외할머니는 유부초밥을 주문해서 나에게 하나씩 먹였다. 어릴 때는 그 안의 식초 맛이 싫어서 잘 안 먹게 되고, 여름에는 한 번 상한 걸 먹었다가 안 먹게 되고. 그러다 보니 유부초밥은 거의 먹지 않았는데 외할머니와는 나란히 앉아서 먹던 추억이 있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면 역시 가슴 한쪽이 따뜻해져 온다. 그리고 동시에 한쪽이 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도 함께 온다. 외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서울에 간 적이 있었다. 외삼촌들과 이모들이 전부 서울에 살고 있었고 외삼촌 중에는 시의원을 지내며 목동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 살 때였는데 그 집에 나를 데리고 갔다. 그 집에는 사촌동생들이 있었는데 그 어린것들이 아침부터 밤에 잠들 시간까지 학원을 다녔다. 그 집에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게임기와 장난감이 가득했다. 연말의 외삼촌 집의 풍경은 들어온 선물로 가득했다. 특히 어스름 저녁의 해가 떨어질 때 거실에 걸어 놓은 말린 가오리가 빨래처럼 널려 있었는데 노을빛이 가오리에 닿아서 기괴하게 보였다. 밤에 소변보러 나왔다가 그 기괴함에 놀라서 한참 서 있기도 했다. 그때가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외숙모는 외삼촌과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났는데 두 번째 외숙모였다. 처음 외숙모는 아기를 가질 수 없다며 헤어졌고 재혼한 외숙모는 나이차가 많이 났다. 어렸을 때라 잘은 모르지만 외할머니는 외숙모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감기 때문에 약을 외할머니에게 그 집에서 먹였는데 그때부터 외할머니의 혓바닥이 자꾸 마르고 갈라졌다. 혀에 물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때 너무 놀라서 이 분위기에 외삼촌에게 말은 하지 못하고 외할머니를 데리고 나와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왔던 기억이 있다.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 와서야 맞는 약을 먹고 제대로 쉬면서 감기가 잦아들었다.


외숙모는 나에게는 참 잘 대해주었다. 오히려 외삼촌이 공부를 못하는 나를 아주 싫어했다. 외삼촌 3명 중에 오직 공부로 상경하여 좋은 대학을 나와서 의원직까지 했으니 공부 못하는 나를 탐탁지 않아했다. 그런데 외삼촌이 적혈구에 문제가 생겨 앓다가 수술을 하게 되었고 수술과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촌 동생들을 돌봐줄 도우미를 불러야 했는데 막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우리 집에서 맡아줬다. 다른 형제들은 누구도 맡지 않으려 했고 어머니는 외삼촌만 괜찮다면 우리가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릴 때 사진을 보면 나와 동생과 함께 같이 재미있게도 지냈다. 우리 집은 가난하고 낡아서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서로 더 몸을 밀착시켜야 했다. 한 이불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그런 우리가 보기 좋다며 유부초밥과 김밥과 고로케를 사주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맛있게도 먹었다. 외삼촌은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서 퇴원을 하고 우리 집에 고맙다고 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에도 우리 가족은 전부 서울로 가서 아이들을 돌보았다.


나의 외할머니.

이렇게라도 외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사람인데 이렇게 음식은 추억하게 만든다.


요즘 내가 다니는 길목에 유부초밥 전문점이 생겨서 커피를 투고하면서 늘 지나친다. 그러다 보면 유심히 보게 된다. 오전 10시가 넘어서 오픈을 하기 때문에 내가 사 먹을 일은 없지만 종류가 많고 전부 먹음직스럽다. 덕분에 유부초밥에 대한 기억을 매일 지나치며 하게 된다. 고맙다 유부초밥 이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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