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시절 어린이라는 행복의 뒤에 숨어 버리고 나면 가난이라는 것을 모른다. 겨울의 일요일 아침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불을 걷으며 우리를 깨우면 우리는 그대로 이불에서 빠져나와 밥상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된장국에 두부는 일요일 아침에 우리 가족을 모으는 단단한 음식이었다.


틀어놓은 티브이에서는 기억나지 않는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는데 아마도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만화나 인형이 나오는. 엄마는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동생의 입에 넣었다. 동생은 티브이에 시선을 빼앗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숟가락 위에 올리고 그 위에 두부를 잘라 올려서 먹는 맛이 좋았다.


창문은 월동준비로 단단하게 찬바람을 막고 있었고 창을 투과한 것은 오로지 따뜻한 겨울의 빛이었다. 그 빛이 밥상을 둘러싼 우리 가족에게 내려앉았다. 추운 겨울이지만 그건 티브이 속 뉴스에서나 하는 말이거나 집 밖의 이야기였다.


특별할 것도 없는 아침식사 시간은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게 가졌다. 뜨거운 된장국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천장까지 닿지는 않았지만 그 분위기가 좋았다. 창으로는 겨울의 햇빛이, 된장국에서는 김이 따뜻한 겨울을 말해 주었다. 주인집에서 귤을 한 봉지 가져다주었다.


이 맛있는 냄새는?


된장국인데 좀 떠 드릴까요?


아이구 좋지, 된장국 냄새가 좋네.


주인집 아주머니는 여고에서 매점을 운영했다. 그래서 놀러 가면 매점 안에서 보는 여고생들, 누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우르르 나와서 맛있는 과자와 음료를 놓고 이야기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좋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는 딸이 있었고 그 딸이 그 여고에 다니고 있어서 우리를 왕왕 데리고 다녔다.


조깅을 하면서 그 동네에 가보니 동네 자체가 싹 없어졌다. 너른 들판처럼 바뀌고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그래도 몇 해 전까지 조깅을 하면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해 가끔 그 동네를 거쳐 오면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 골목길, 그 동네의 풍경들.


그리고 서서히 동네에서 사람들이 빠지는 모습을 지켜봤고 허물어지고 완벽하게 없어진 모습까지 봤다. 한 동네의 역사가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나에게는 추억이 종합 선물세트만큼 많은 동네라서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타까운 것만은 아니다. 제대로 보존이 되지 않는 오래된 것들은 전통보다는 나쁜 관습 같은 것이라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것이 낫다고 본다.


된장국과 두부는 지금도 늘 먹고 있고 늘 먹을 때마다 맛있다. 하지만 맛은 추억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때의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그때는 어린이였고 가족이 한 밥상에 둘러앉아 있었으니까.


한 가족이 밥상에서 모두 모여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후에야 알았다. 된장국과 두부는 참 맛있는데 이렇게 맛있고 간단한 음식은 얼마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친구가 살던 집인데 우리는 옥상에서 옥상을 목숨을 걸고 건너 다녔다. 그 친구는 쌍둥이 아빠가 되었다.


양팔을 벌리면 마치 닿을 듯한 좁은 골목길


바로 위 사진의 다른 버전


달동네의 모습이다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동네


서서히 철거가 되기 시작하고


동네 점빵이었는데 철거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저기 보이는 아파트들이 밀려온다


위의 모든 골목이 올해 들어 이렇게 변했다


그리고 마을에 사람들이 싹 빠져나간 여름의 어느 날, 온도가 거의 32, 3도를 육박하는 날에 조카와 옛날에 살던 집을 찾았다.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마귀 숲 같은 느낌 ㅋㅋ


귀신 숲 같은 옛날 집에서 빛이 조카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의 주인은 녹색의 풀과 나무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한다


저 사진이 너무 좋아서 흑백으로 출력해서 컴퓨터에 부착



오늘의 선곡은 뉴 올리언즈 출신의 전설적인 세션, 피아니스트 앨런 투세인트의 I WAVE BYE BYE https://youtu.be/HAGySWhFOjg  <= 앨런 투세인트 - 주제


음악이 정말 너무 좋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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