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난 후 날이 좀 쌀쌀해졌다고는 하나 조깅을 하면 너무 덥다. 땀이 옴팡지게 난다. 패딩 때문이다. 일기예보에서 하도 쌀쌀해진다, 추워진다고 하니 조깅 코스에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시야 안에 사람이 없는 것이지 또 좀 달리다 보면 사람들은 나와서 운동을 하고 있다. 평소보다 사람이 부쩍 줄었다는 말이다.


사실 일직선으로 아주 긴 거리로 되어 있는 강변의 조깅 코스에 사람이 없는 게 달리기에는 좋다. 왜냐하면 3명, 4명이서 횡대로 일렬로 서서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 꼭 있기 때문이다. 달리다가 그런 사람이 앞에 있으면 지나치기 위해서 멈췄다가 다시 달려야 하는데 달리는 리듬이 깨진다. 가끔 목까지 제발 횡대로 일렬로 천천히 걷지 말아 달라고 하는 말이 차오른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 잠시 멈춰서 그들을 지나쳐 가면 그만이다.


달린 지 오분이 지나면 등에서 땀이 난다. 패딩 때문인데 쉬지 않고 그 상태로 15분 정도를 더 달리면 땀에 옴팡 젖는다. 그렇게 달리다가 산스장 같은 곳에서 몸을 풀어 준다. 그때 몸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고 늘어트릴 때 그 쾌감이 있다. 산스장에 정수기가 그동안 있었는데 이제 시에서 전부 싹 치웠다. 태풍이 올 때마다 강물이 불어나서 정수기를 다 쓸어 버리기 때문이다. 잘 치웠다고 생각된다. 오밤중에는 다 같이 마시라는 물을 몇 리터씩 들고 가는 사람도 있다. 저녁에는 그럴싸하게 사람들한테 좋은 면만 보여주는 척 운동하지만 밤이 깊으면 사람들 몰래몰래 큰 통으로 물을 받아간다. 나는 그걸 동영상으로 다 찍어놨다. 아주 미운 사람이다. 그런데 정수기를 다 치운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시청을 욕하며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모습이 선하다. 참 잘 된 일이다. 흥.


가을로 접어들면서 산스장 벤치에 바람막이를 쳐놨다. 그곳으로 노부부가 와서 앉았다. 할머니의 거동이 불편해서 바퀴 달린 휠체어 같은 의자를 천천히 밀어서 걸었고 그 옆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넘어질세라 할머니를 보호하며 딱 붙어서 왔다. 그렇게 바람막이 안 벤치에 앉기까지 느릿느릿 천천히 겨우겨우 도달해서 앉았다.


앉은 다음에는 할아버지는 분주했다. 할머니의 어깨를 계속 주물렀다. 그리고 살가운 대화들이 오고 갔다. 누군가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이야기들.


“걸어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바람이 이렇게 많이 불어서 앞으로 못 나오겠다, 저기 저 불빛이 참 아름답게 보인다” 같은 말을 하며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어깨를 계속 주물렀다. 할머니가 이제 그만 주물러요, 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그만하라고 몇 번이나 말해서 주무르는 걸 관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얼굴에 얼굴을 딱 붙이고 이야기를 했다. 혹시라도 추울까 봐 뺨을 비비기도 했다. 어깨를 주물렀던 할아버지의 오른손은 언제나 할머니를 지키겠노라, 어깨 뒤 벤치에 걸치고 있다. 노년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살뜰히 아끼고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할머니의 몸은 불편해 보였지만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나는 늘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거리를 달리는데 그러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노부부는 매일은 아니지만 항상 이 시간쯤 이곳까지 걸어와서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별거 아닌 대화지만 소중한 이야기들. 이제 날이 점점 추워지면 나오지 못한다.


잘 아는 아파트 옆 집에 사는 사람도 매일 보지 않는데 조깅을 매일 하러 나오면 거의 매일 보는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 몇 년을 보다 보면 서로 얼굴은 알지만 아는 척 하기는 어색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또 안 보이면 왜 오늘은 안 나왔지?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 나오면 매일 다른 풍경들을 본다. 같은 풍경이지만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변해 있다. 그에 따라 사람들 역시 매일 다르고 매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것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던, 내면의 모습이던. 그런 모습을 밀사의 눈초리를 하고 관찰하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매일 나오지 않으면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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