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은, 특히 전통시장 안에 있는 오래된 국밥집의 돼지국밥은 혼자 먹어야 맛있다. 입구의 가마솥이 이른 오전부터 펄펄 끓기 시작하고 꼬릿 한 돼지국밥의 냄새가 오전의 공기를 물들이는데 그 냄새를 맡는 게 아주 좋다. 좀 이상한데 맡으면 기분 좋은 냄새가 있다. 전통 시장 돼지국밥집의 꼬릿한 냄새가 그렇고, 동네 세탁소에서 나는 냄새가 그렇다. 겨울에 세탁소 앞을 지나가면 밖으로 비죽 비어져 나온 호스에 빨래를 다리고 말리는 그런 냄새가 나는데 좋다.


전통시장 돼지국밥집에는 대체로 어르신들이 늘 앉아서 자리를 채우고 있다. 오전부터 벌써 막걸리로 간과 위를 촉촉하게 적셔서 코끝이 발갛게 된 어르신들도 보인다. 점심이면 본격적으로 시장통의 장사꾼들이 배를 채우기 위해 국밥집에 들러 후루룩 빨리 한 그릇 먹고 간다. 저녁이 되면 평소보다 늦게 일을 마친 아버지들이 홀로 국밥집에 앉아서 머리를 숙여 소주와 함께 국밥을 먹는다.


그들은 전부 먹는 방법이 다르다. 시장 통의 국밥집은 대부분 토렴을 해서 나오기 때문에 따로 밥을 먹으려면 따로국밥을 주문해야 하는데 모두가 그냥 국밥을 주문해서 먹는다. 후추를 많이 뿌리는 사람, 부추를 아주 많이 넣는 사람, 깍두기 국물을 같이 넣는 사람, 깍두기까지 국밥에 넣어서 먹는 사람, 밥 말고 면 사리만 넣어서 만든 국밥을 주문하는 사람 등 내장을 많이 넣는 사람, 머릿고기를 많이 넣는 사람 각양각색이다.


프랜차이즈 국밥집이나 24시간 국밥집에는 여자 혼자서도 국밥을 먹기도 하지만 시장통의 국밥집에는 보통 남자들뿐이다. 요즘 들어 혼술 하는 여자 유튜버들이 엄청 늘어나서 전통시장을 다니며 국밥을 홀로 먹으며 소주를 같이 마시는 여성유튜버들이 많지만 보통은 전통 시장의 국밥집에는 남자들, 그것도 아버님들이 손님들이다. 주인장도 보통 할머니들이다. 음식을 다듬고 나르고 하는 일이 보통 노동이 아니라서 음식점을 오랫동안 하는 사람은 남자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돼지국밥집은 할머니들이 주인이다. 사장님인 것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해 온 세월의 흔적을 손가락 끝에 훈장처럼 달고 있는 여성들이다.


전통시장의 돼지국밥집의 국물은 돼지머리로 국물을 우려내는 경우가 많다. 가격이 뼈나, 살코기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맛에서 밀리냐 하면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꼬릿한 특유의 잡내가 좀 나는 것이 마음에 들고, 토렴이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맛이 마음에 든다. 허름한 분위기,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 일관성 없는 티브이 소리와 맞은편 과일가게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의 소리가 뒤섞여서 소음처럼 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겹기 때문이다. 30년이 넘은 솥이 아직도 매일 육수를 우려낸다는 것이 놀랍다.


정구지를 잔뜩 넣고 후후 불어먹다 보면 깔끔한 맛에서는 벗어났지만 오랜 시간을 이겨낸 맛은 분명하게 있다. 묵직하고 진한 맛이 있다. 고기는 부들부들 야들야들하며 소주 한 잔은 어제까지의 시름을 잊게 만든다. 긴 흐름을 견딘 단단한 맛이 존재한다. 돼지국밥은 삼계탕처럼 어디나 비슷한 모습이지만 나만의 색이 있다고 자신하는 맛이 있다. 시장 상인들의 고단과 허기를 달래주는 맛. 남자의 무게를 이겨내는 맛이다.


‘야성’이라는 말과 가장 어울리는 음식이 돼지국밥이 아닐까. 야성이 넘치는 사람들이 돼지국밥을 먹는다. 그리하여 돼지국밥에는 야성이 넘쳐야 한다. 혼자 앉아 등을 구부리고 후루룩 돼지국밥을 먹다 보면 먹는 이의 등에도 야성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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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9-2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돼지 국밥은 깔끔한 프렌차이즈 형태의 식당보다는 어수선하고 꼬릿꼬릿한 냄새가 베어있을 것 같은 나무 탁자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날 듯 합니다.

교관 2022-09-24 11:51   좋아요 0 | URL
그래서 혼자가야해요 ㅋㅋ 여친이나 아내와 함께는 못 가죠ㅋ 취향이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