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해운대를 찾았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여전한 관광지 같은 분위기와 여전하게 빼곡한 카페와 술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야 해운대 같지요. 술집도, 카페도, 사람도 드물게 있다면 그건 좀 서글픈 해운대입니다. 해운대는 해운대만의 분위기가 있어서 그걸 즐기고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운대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쯤 추억이 있을 장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해운대가 나옵니다. 해운대에는 친구가 삽니다. 그래서 가끔 오게 됩니다. 친구를 기다리며 해운대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는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 같은 사람입니다. 아주 큰 아파트에 살며 늘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가 가끔 집으로 옵니다. 그럴 때 연락이 오면 해운대에서 만나게 됩니다. 신발도 보통 70만 원 정도 하는 신발을 신고 다니며 자동차도 두 대나 있고 그중 한대는 에이 6입니다. 뭐랄까 뭔가 저와는 크게 벌어져있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같이 만나 여러 이야기를 하는 친구입니다.
취향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생활이 비슷한 것도 아닌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둘 다 키득키득거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 소설 속 이야기라든가 영화 이야기라든가, 그런 이야기를 주로 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늘 현실이라는 곳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서로 다른 생활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어떤 효과나 빛을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무척 좋아하는 멍게를 실컷 먹었습니다. 그 비싼 해운대 물가 속에서 실컷 멍게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입안에 멍게 향이 번지는 게 저는 정말 좋습니다. 초장도 필요 없고, 간장도 필요 없습니다. 멍게는 멍게 맛으로 족합니다. 제가 사는 바다에도 멍게가 널려있지만 기묘하게도 해운대에서 먹는 멍게가 참 맛있습니다. 멍게를 파는 식당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낮술이 들어가고 조금 심각해지면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갑니다. 죽기는 무섭고 살기는 두렵네. 그냥 자고 일어나면 죽어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편안한 상태로. 언젠가부터 울음을 참는 게 버릇이 된 것 같아. 사람들 고민을 들어주지만 정작 내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주위에 없네. 어른이 되어버린 게 너무 무섭네.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해.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인 이 느낌은 나뿐일까. 차라리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나 좀 위로해 달라고 하고 싶네.
나만 빼고 다 행복해 보인 다지만 이미 어른이 된 지금은 모두가 행복할 수가 없어. 모두가 행복하다면 그것대로 불행한 일이니까. 덜 불행하다면 해 볼만한 거야. 행복해지려고 최선을 다하지 말자. 그저 덜 불행하게 지내자.
저도, 그리고 저와는 다른 친구도 그리고 해운대를 찾는 많은 사람들도 모두가 하나씩의 깊은 고민을 지니고 있어서 그게 무거워서 사람들은 오래 걷지 못하고 힘들어서 어딘가에 앉아서 쉬고 있습니다. 제 속에 저를 속박하는 무엇인가가 늘 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건 순전히 날씨 탓이라고 오늘만은 말하고 싶습니다. 제 마음과 무관하게 날씨가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모든 건 날씨 탓입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오늘의 선곡은 이 맑은 날씨와 잘 어울리는 노래 Kings Of Convenience의 Misread https://youtu.be/WOxE7IRiz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