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에는 추석이 끼인 이맘때 해가 떨어지고 난 후 밤에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바닷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좀 읽는 것이었다.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은 반팔이지만 바닷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바닷가 바람에 추우니 겉옷이 필요하다.


조깅을 하고 난 후 맞는 바닷바람이 아주 시원한 날의 연속이다. 시월 어느 정도까지 이렇게 좋은 날은 계속되다가 어느 날 밤부터 볼기짝을 후려치듯 추운 날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좋은 계절의 바람이 분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필요 없고, 두꺼운 옷도 필요 없는 날이다.


이런 날 바닷가에 앉아서 버드와이저를 홀짝이며 책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술이 오른다. 조깅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약한 술에도 금방 달아오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면 이만큼이나 마셔야 술에 취하지만 조깅을 하고 난 후에 책을 읽으며 홀짝홀짝 마시면 한 두병에도 술이 오른다.


바닷소리와 사람들의 소리, 맥주를 마시는 소리가 어우러져 기분 좋은 잡음이 되어 조금만 마시는 맥주의 양에도 금방 술이 오르고 만다. 술이 오르면 책을 덮고 밤바다의 정취에 한 번 더 취하고 풍경을 멍하게 바라본다. 바다는 아주 고요한데 묘하게도 파도치는 소리는 의외로 크게 들린다. 밤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등을 본다. 오랫동안 앉아서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그리움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움이 많은 사람은

계절의 바다를

당신보다 오래

붙잡아두려 한다


여기 바닷가에는 속초의 대포항에서 나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강한 바다의 짠내가 없다. 대포항에서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작은 횟집이 몰려 있는 포구에도, 오징어순대를 파는 곳에도 바다의 짠 내가 있지만 여기 바다는 없다.


보통, 바다는 가물면 짠 내가 심해지는데 이곳 바다는 그런 바다의 냄새가 없다. 이곳에 살며 매일 바다에 나와서 냄새를 맡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이다. 몹시 가물거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도, 유월에 달과 지구가 가까워져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지는 날에도 짠 내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여있는 호수에서 나는 물비린내가 난다. 민물에서 나는 물 비린내가 여기 바다에는 도사리고 있다.


저 먼 수평선에 오징어 배가 일렬로 죽 늘어서 있으면 어두워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는데 오늘은 하늘과 바다의 색이 같다. 도화지에 검은 물감으로 채색을 한 것처럼 보인다. 날이 좋아 거리를 두고 삼삼오오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예전보다 못 하지만 외국인들도 보인다. 그들 모두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바다를 찾는 사람들에게서 조급함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 영차영차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을 것이다. 세계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그들 덕분에 잘 굴러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시간에 행복한 사람도 있고, 덜 불행한 사람도 있고, 아픈 사람도 있고, 더 아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계는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니까.


명절을 맞이해서인지 예전의 팝들이 많이 나왔다. 미스터 빅의 ‘투 비 위드 유’가 나왔고, 테이크 댓의 ‘아이 파운드 해븐’도 나왔다. 그리고 토미 페이지의 노래도 나왔다. 소년 같은 목소리의 토미 페이지. ‘아일 비 어 에브리띵’을 오랜만에 들었다. 토미 페이지는 가족 중 누군가가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한국을 좋아한다며, 오래전 배철수 음캠에 나와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다.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는 엉망이었지만 끝까지 부르려고 했다. 배철수도 그런 그의 태도를 존중했다.


토미 페이지는 노래를 불러 유명해지고 싶었다. 학창 시절부터 학교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노래가 조금 떴을 때 티파니와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오프닝 무대에 섰다. 그때 사람들에게 “너 같은 거 말고 빨리 뉴 키즈를 불러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너무 긴장을 했다. 투어 중에 혼자서 호텔 로비에 앉아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뉴 키즈의 조던 나이트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부를 노래를 준다. 그 노래가 ‘아일 비 어 에브리띵’이었다. 그리고 뉴키즈의 대니 우드도 붙어서 토미 페이지가 그 노래를 완성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랬던 토미 페이지는 하늘로 가버렸다. 노래 부르는 건 즐거운데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생활을 해 나가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인기는 한순간이고 유한한 삶을 이어 붙이지 못했던 토미 페이지는 그렇게 짧은 생을 자신의 손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


나의 별은 어디일까. 데이빗 보위도 몇 해 전에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 나의 별을 어디에, 같은 쓸데없는 생각도 바닷가에서는 해도 된다. 그들의 음악을 잔뜩 늘어놓고 들었던 기억은 분명 살아있는데 죽은 기억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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