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변 호텔’은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 단편들을 바늘로 잘 이어 붙여서 다시 죽 늘려 놓은 영화 같았다. 한 마디로 너무 좋았다. 특히 기주봉과 권해효는 로베르토 베니니처럼 능청맞게 연기를 잘한다.
박광정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으면 여기에 껴서 능청맞고 지질하고 생계 위기형 코믹 슬픈 연기를 잘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강변 호텔에는 ‘괜찮아’가 많이 나온다. 보통 영화에서 ‘괜찮아’ 대사가 영화를 망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강변 호텔에서 ‘괜찮아’는 참 괜찮다.
강변 호텔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김민희와 송선미가 눈밭에 서 있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좋아서 그 장면을 따라 그려봤다. 저 멀리 강 건너에는 마을이 있지만 마을의 모습은 어려워서 그리지 못했다.
괜찮아, 가 남발이 되면 사실 괜찮지 않다. 위로에도 적당해야 한다. 정말 괜찮은 시가 있다. 한강 시인의 ‘괜찮아’이다.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강변 호텔에는 딱 한 편의 ‘시’가 나온다. 그 시가 어찌나 좋은지 기주봉이 술이 되어서 그 시를 읊을 때 정말 시 속의 그 아이와 그 아이를 놓을 수 없는 그 집단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강변 호텔의 이 한 장면 만으로도 이야기의 상상을 잔뜩 불러낸다.
희망과 기대의 차이를 존 버거가 고민 끝에 말했다. 기대는 몸이 하는 것이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기대도 희망도 없을 때 '시'가 눈이 되어 잠깐 잠든 사이에 온 세상에 내렸다. 눈이 된 '시'는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