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힌남노가 덮쳤을 때 태화강에서 불어난 강물에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된 노인의 기사가 떴을 때 실시간 댓글로 사람들이, 할아버지 왜 가지 말라는 곳에 갔어요? 어쩌자고 거길 갔나요? 같은 댓글이 많았다. 저 할아버지는 그곳에 나간 것이 아니라 내내 그곳에 늘 계신다.


매일 조깅을 하러 강변에 나가면 할아버지는 매일 저곳에 늘 멍한 눈빛으로 앉아 있다. 이번에 힌남노가 왔을 때에도 그곳에 있었던 걸 보면 가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할아버지는 이번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에도 사진에 보이는 두꺼운 옷을 입고 한 번도 씻지 않은 얼굴과 손을 하고 늘 앉는 곳에 앉아있거나 때로는 잠이 들어 있다.

가족이 없거나 돌아갈 집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언젠가부터 할아버지보다 조금 더 나이가 적은 할아버지가 매일 저녁에 도시락을 싸와서 저 할아버지에게 먹인다. 할아버지는 다른 할아버지가 가져다준 도시락을 맛있게 남김없이 드신다. 할아버지가 매일 이곳에 나와서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건 올해가 들어서였다.


작년, 재작년, 그 이전에는 못 보던 할아버지다. 올해 봄이 지나서부터 보게 되었다. 나는 거의 매일 일정한 시간에 조깅을 하러 강변에 나가다 보니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는데 봄이 지난 후부터 매일 저녁에는 저렇게 저 자리에 앉아서 어딘가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태풍이 오기 직전까지 아마도 여기에서 그대로 누워서 잠이 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일어나거나 할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말을 걸어 보았으나 전혀 대꾸가 없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저녁밥을 챙겨주는 다른 할아버지가 가족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기사를 접하고 사람들은 집에서 왜 나왔냐고 하는데 집도 없는 것 같고, 할아버지는 강변의 늘 저 자리에 앉아 있다가 문명과 동떨어져 있어서 태풍이 오는 것도 모른 채 불어난 강물에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가 되었지 싶다.


이 기회를 통해 가족도 찾았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위생이 너무 안 좋은 것 같아서 목욕을 좀 했으면 한다. 할아버지는 손과 얼굴이 아주 까맣다. 한국인 아니라고 할 정도로 검은색을 띠고 있어서 몸에 큰 문제가 있나 싶었는데 팔을 걷으면 다른 피부는 하얗다. 얼굴과 손은 그저 그을려서 그렇게 되었지 싶다. 할아버지는 폭염이 왔을 때에는 겉옷을 벗는데 그 안에도 스웨터를 입고 있다. 그리고 몸이 가려우면 늘 들고 다니는 긴 나무 꼬챙이로 등을 긁는다. 그때 보면 피부가 하얗다. 물론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폭력적인 냄새가 난다.


어제저녁에 조깅을 하러 나갔을 때에는 물론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아직 조깅 코스에 흙물이 빠지지 않아 진흙처럼 되어서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이렇게 저 할아버지를 언급하는 건 이전에도 한 번 저 할아버지에 대해서 한 번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901


 구부리고 앉아서 초점 없는 눈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등을 보고 있으면 고독의 정점을 이룬다. 그날이 유월인데 비가 내려 추운 날이었다. 아마도 그날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지 않았나 싶다.


비가 오는 날에는 강변에 조깅을 하러 나오거나 운동을 하러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저 할아버지는 늘 저곳에 앉아있다. 나는 비가 와도 조깅을 하러 나가니까 넓고 넓은 강변에 저 할아버지와 나는 저곳에서 이상하지만 정신적인 유대 같은 것으로 점점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고 나는 몸을 풀면서 할아버지의 굽은 등을 본다. 얼마 전에 다 떨어진 운동화가 새것으로 바뀐 것을 보았다. 아마 이런 정신적인 유대가 없었다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이상의 도움은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딱 그 정도의, 딱 배곯지 않을 정도의, 딱 운동화가 떨어지면 새로운 운동화를 신을 정도의 도움만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힌남노가 지나갔다. 말 그대로 동해안은 강타했다. 머리를 짓누르고 지나갔다. 인명피해는 없을 줄 알았는데 피해가 났다. 할아버지는 나무에 붙어 있다가 구조가 되었다. 이제 이후에는 오늘 이전과는 달랐으면 한다. 할아버지는 분명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할 테고 더 이상 바라는 것도 굉장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딱 그 정도의. 어딘가 초점 없는 눈으로 실컷 볼 수 있는 그 정도의 삶을 지낼 수 있다면 이렇게 변수가 많은 강변의 벤치보다는 더 나은 곳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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