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미코를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쿠미코를 계속 보게 되는 건 그 답답함 속에서 나의 모습도 얼핏 보이기 때문이다. 쿠미코는 숨이 막힐 듯한 삶의 압박 속에서 선택지가 없다. 쿠미코는 그저 숨을 쉬는 것뿐, 그리고 자신 옆에 인간의 손을 탄 토끼 한 마리뿐이다. 쿠미코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무게에 짓눌러 숨을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니라 숨을 쉴 수밖에 없어서 쉬는 것뿐이다.


그런 쿠미코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선택지가 생겨난다. 영화 파고가 허구가 아니라는 것, 파고에 가면 그 돈 가방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쿠미코는 영화 내내 일그러진 표정이나 무표정이나 화난 표정일 뿐이다.


쿠미코는 3천만 명이 사는 도쿄에서 29살이라는 나이라는 것이, 웃지 않는 여자라는 것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남자 친구가 없다는 것이,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것이 쿠미코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녀의 선택처럼 당연시해버리는 사회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쿠미코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쿠미코는 사장의 아내의 생일선물을 사 오라며 받은 법인카드를 들고 파고에 갈 준비를 한다. 분신과도 같은 토끼를 공원에 풀어주지만 토끼 역시 선택지를 선택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쿠미코는 토끼를 보며 자신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결국 토끼를 안고 전철을 타지만 토끼를 전철 안에 두고 내린다. 엉엉 울면서.


쿠미코는 미국의 한 모텔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파고의 돈 가방을 찾으러 다닌다. 운명이 달린 도서관에서 받은 지도 한쪽을 들고 비디오에서 본 부세미 씨가 눈밭에 묻은 그곳으로 이불을 질질 끌며 간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파고에는 못 간다, 돈 가방이 없다며 쿠미코를 딱하게 여긴다.


쿠미코는 우여곡절 끝에 지도의 그곳에 도착한다. 추위에 얼굴은 얼었고 손가락은 다 터져 손톱 밑으로 피가 흘러나왔지만 돈 가방은 있었다. 하지만 너무 추웠다. 눈보라가 몰아닥쳤고 온도는 심하게 떨어졌다. 하지만 아침이면 돈 가방을 들고 갈 수 있다, 쿠미코는 피곤에 지쳐 이불을 돌돌 말아서 몸을 덮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든다.


하얀 설원의 아침이 밝아오고 쿠미코는 영화 속 그 자리에 눈을 파내고 돈 가방을 집어 든다. 그 속에는 부세미 씨가 넣어 둔 돈이 가득했다. 쿠미코는 얼굴도 깨끗했고 처음으로 활짝 웃는다. 쿠미코는 자신의 선택이 올바르다는 것에 더 기뻤다. 그리고 옆에 있는 토끼를 끌어안고 가방을 들고 기분 좋게 파고를 떠난다.


쿠미코는 영원히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 같았던 삶 속에서 벗어나 생존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쿠미코의 행복을 보며 안타깝고 애달프고 아름다운 뒷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영화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였다.


https://youtu.be/rrsiRTwysYc <= 예고편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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