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유'가 나카시마 미카의 곡으로 알고 있지만 원곡을 부른 원작자가 있다. 소년 시절에 버림받은 이야기를 쓰고 거기에 곡을 붙여 부른 노래가 ‘아이 러브 유’였다. 그 가수가 바로 오자키 유타카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왔을 것 같은 실물의 모습의 원조가 오자키 유타카가 아닌가 싶다. 떠난 사랑을 생각하며 러닝셔츠도 땀으로 젖고 얼굴로도 땀이 뚝뚝 흐르며 울부짖듯 노래를 부르는 오자키의 공연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나카시마 미카나 포지션이 부르는 애절함과는 전혀 다른, 어떤 기교도 없이 그저 혼신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오직 가슴으로만 노래를 부른다.


오자키 유타카는 일본 전성기를 굳건하게 지탱하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지탱한다는 건, 당시 버블경제로 너도나도 공중에 붕 떠 있을 때에도 청춘들은 힘들고 괴로웠다.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이 없고 기성세대들은 가정보다는 회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기고만장했다. 괴리가 심했고 경제가 부흥하지만 젊은 층들의 자살은 또 많았다. 그 청춘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하루키와 오자키 유타카였다. 하루키 이야기는 많이 했으니 접고, 만화책을 찢고 나온 것 같은 외모의 오자키는 반항을 하다가 고등학교도 중퇴했지만 부르는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한 것이 알려지며 사람들이 오자키의 노래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오자키는 목소리에 어떤 기교도 넣지 않고 그저 담백하게 노래를 불렀다. 기타를 들고 록을 하며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인기를 끌었고 결혼도 하여 아들도 얻었다. 하지만 오자키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이후 죽고 말았다. 그때 나이가 27살이었다. 여러 소문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아내가 그의 유서를 공개했다.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유서를 공개했는데 거기에는 매일 죽고 싶었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오자키 유타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만화 같은 모습이다. 너무 잘 생긴 얼굴과 멋진 몸으로 방황하는 청춘의 대변인이 된 오자키가 무대에서 땀을 쏟으며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 17살에 데뷔한 오자키는 자작곡을 한 노래들이 대중과 평론까지 사로잡았다. 오 갈 곳이 없던 10대 청춘들의 우상이었던 오자키 유타카는 술과 약과 함께 27살에 요절한 천재로 마치 커트 코베인이 그 뒤를 따라간 것 같은 느낌이다. 오자키는 그야말로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같다. 피융하며 끓어오르는 찰나 만개와 함께 그대로 소멸하는 삶, 활짝 피자마자 무화되는 벚꽃의 미학을 보여주고 궤도 밖으로 이탈해 버렸다. 그러므로해서 진정 자유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김중식 시인의 시에서처럼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오자키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모든 걸 다 버리고 사랑에만 몸을 던지고 싶다.  


오자키 유타카의 노래도 한 번 들어보자. 마치 고 김현식이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https://youtu.be/SQZg9Av56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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