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자의 조건 - 300여 년간 전해오는 어느 추기경의 정치인 독본
쥘 마자랭 지음, 움베르토 에코 해설, 정재곤 옮김 / 궁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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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다보면 책 값을 하는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 모든 상품이 그렇겠지만 특히 책값을 못하는 책을 만날 땐 화가 나게 된다. 우리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책이란 정직하고 가치있는 상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런 말로 리뷰를 시작하는 이유는 이 책에 아주 실망했기 때문이다.

처세서를 잘 보지 않는 나이지만 제목부터 흡인력이 강했고"이기는 자의 조건"이라니... 그 이름도 찬란한 움베르토 에코가 해설을 했고 저자도 카리스마의 대표 주자 같은 인물이라 뭔가 그럴듯한 승자의 조건을 알려주지 않을까 했더니만. 혹자는 이 책을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에 비교했지만 그런 비교 자체가 아까울 정도로 내용이 허술한 책이었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고전이 시대를 초월해서 언제나 통용되는 지혜와 교훈을 주고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힘이 없다. 권모술수의 표본격인 책이었지만 화려한 제목과 광고에 비해 읽고 소화하고 되새길 내용은 정말 빈약한... 다시는 책 광고에 속지 말아야지 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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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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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신경숙의 글을 피했다.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그녀가 지겨워졌다고 해야 하나. 작가와 글을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 법인데 약간 고개 숙인 그녀의 묵묵한 표정과 소설 속의 여주인공들이 겹쳐 보이고. 더불어 순정만화와 순소설을 아슬아슬하게 교차시키는 것 같은 섬세하고 슬픈 글들이 목까지 차올라 지겨워졌다고 해야 하나. 마음을 잔잔히 흔들어 놓는 그녀의 글이 언제부터인가 버거워서 고개를 돌려버린 지 꽤 된 것 같다.

그러다 내가 이 '리진'을 사게 된 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갔다가 읽은 한 줄 문구 때문이었다. '어떤 눈에는 운명이 있다.' 그 글귀를 보자 난 그만 꼼짝달싹 못하고 사로잡혀 버렸다. 이 한 줄을 읽으면서 난 내 마음을 흔들었거나  타인의 운명을 흔들어 놓았던 몇 개의 눈동자를 생각했고. 해일처럼 밀려오는 추억에 항복하면서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비록 내가 무지하게 읽기 싫어하는 명성황후에 대한 이야기가 주 소재를 이루고 있었다 하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난 감탄하고 행복하고 기뻤다. 근 육 개월을 영어 책만 주로 보면서 말도 되지 않은 나의 한국어로 옮기다 보니 이 아름다운 언어를 내가 얼마나 고문시키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다른 언어의 틀과 사고에 얽매이지 않은, 작가만의 고유한 상상력과 그의 무기인 화려한 언어로 쓰인 리진은 주인공 리진의 춤사위처럼 너울너울 곱고 화려하면서 매끄럽고 슬펐다. 내가 성숙한 것일지, 아니면 작가가 성숙한 것일지 그건 모르겠으나 리진은 내가 그동안 읽은 신경숙의 작품 중 가장 성숙한 작품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왜 역사 소설인가 라는 약간은 의아한 마음을 품고 첫 장을 넘겼지만. 결국은 신경숙의 주특기인 사랑 이야기였다. 사랑을 꿈꾸는 자와 가지는 자와 포기하는 자와 밀려난 자 간에 벌어지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관계들이 신경숙 특유의 섬세한 언어로 이 소설에 묘사되어 있다. 역사적인 상상력과 언제 읽어도 절절할 수 밖에 없고, 언제 읽어도 현대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랑에 대한 묘사가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된 고혹적인 태피스트리를 하나 봤다고 해야 하나...

자신이 가진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영혼의 자유와 사랑을 찾으려 한 리진의 결말을 어제 늦은 오후에 보고 난 마음이 너무 먹먹해졌다. 그래서 가족을 억지로 이끌고 뚝섬 공원을 찾아 밤 불빛을 보며 맥주를 두 캔이나 넘기고도 마음 속에선 리진과 강연와 콜랭과 홍종우의 사랑이 넘실거리며 심장을 찔러와 아팠다. 얼마나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지. 안구건조증만 걸린 게 아니라 심장도 건조증에 걸린 게 아닐까 걱정되던 차에. 아직은 내 감수성도 살아 있구나 확인하게 해 준 소설. 리진.

배꽃같이 슬프고 아름다운 리진을 만나 황홀한 주말,,, 아직도 그 마법에서 풀리지 못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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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2009-12-0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hhjjj
 
역사를 이끈 아름다운 여인들
김정미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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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도움이 될까 하여 이 책을 샀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아는 인물들이 많아 좀 식상한 감은 있으나 그나마 몇몇 모르던 인물을 알게 돼서 괜찮았다. 김정미님의 글도 술술 읽혔고 전체적으로 재미있었다. 많은 인물들에게 페이지를 할애하다보니 전반적으로 각각 인물들의 소개가 너무 짤막한 게 흠이라면 흠일까. 또 한 가지 트집을 잡자면 세계사를 아우른 오십여명의 여인을 집어내기 이렇게 힘들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작가의 좁은 소양인가, 아니면 그만한 인물이 없었던 걸까. 어쨌든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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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러시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솔출판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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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유미리 소설을 읽었다. 예전부터 이런 재일 동포 작가가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왠지 한국계 동포가 일본에서 유명 소설가가 됐다는 사실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거나 대견해하기 보다 거리감이 느껴졌다. 아마 유달리 어두웠던 그녀의 성장 배경과 범상치 않은 생의 이력이 섬뜩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다 찜질방에서 우연히 이 소설을 보게 됐다. 유미리가 쓴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읽지 않으려 했는데 작품 소개를 읽어보자 흥미가 일었다.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14세 소년의 심리가 무서우리만큼 치밀하면서 긴장감 있게 묘사됐다는 평을 보자 궁금해졌다. 14세 소년이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 난 도무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책을 들었다.

 

서두를 읽어가면서 난 번역이라서 이렇게 글이 애매모호한 것일까, 아니면 작가 자체가 이렇게 애매모호하고 흐릿하게 글을 쓰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 흐릿한 안개 같은 묘사 너머로 알 수 없는 광기와 잔혹함이 느껴졌고 그 광기와 잔혹함이 뿜어내는 원시적인 힘과 공포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 흐릿한 언어의 정글 속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주인공 카즈키와 만나게 됐다. 카즈키의 넘치는 폭력성과 동시에 수반되는 어린 그의 공포와 불안이 애처로우리만큼 섬세하게 조화를 이루어 난 그의 성격을 파악하려고 애를 쓰면서  그의 어지러운 가족 관계와 무의미한 일상을 따라다녔다. 과연 읽다보니 터무니없이 무식하고 무정하고 둔감한 그의 아버지에 대해 반감이 들었고 종교에 빠져 자식들이 불행해져도 몰라라 하고 도망쳐 버린 엄마의 무책임함에 화가 났고 동시에 카즈키의 주변을 지키는 소수의 선인들에게 안도하기도 했다.

 

소설은 오만방자하면서 동시에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인 주인공과 천사 같은 형과 또 하나의 희생양이자 구원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쿄코등 여러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들과 더불어 금각의 할아버지와 야쿠자 사내 카나모토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구원이라든가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고독과 인생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보게 된다. 소설 읽기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과 인생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그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기뻐하고 공감하면서 작가가 제시한 화두를 반추한다. 이 소설에서도 아버지를 살해하고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도리어 남들 같은 평범한 가정을 만들고자 애쓰는 주인공을 보면서 현대에 있어 가족이란 무엇인가 난 깊이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을 만들고 그들의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단순히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내는 차원을 넘어서 그 아이들의 맹목적인 믿음을 받아줄 수 있을 만한 든든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때로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요즘 들어 우연히 난 두 명의 일본 여류 작가가 살인을 소재로 쓴 힘이 넘치는 소설을 읽게 됐다. 하나는 키리오 나츠오의 ‘아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유미리의 이 ‘골드 러시’이다. 모르겠다. 소재가 살인이라서 그런 것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여성 작가가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박력 있고 대담한 소설들이다. 피부가 오그라들 정도로 정직하게 묘사한  인간의 심층 심리를 보면서 소스라치면서 주인공들의 절망 속에 내 자신의 절망이 오롯이 비치는 것을 보는 것은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위안도 받는다. 절망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의 일부임을. 누구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다보면 살인으로서 그 절망감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눈물을 쏟거나 쓴 술을 한 잔씩 마시면서 그 절망감을 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나이는 어리지만 몸은 커버리고 지능은 높지만 감성은 교묘하게 순진무구한 아이에게 왜 가족을 살해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자 애쓰면서 끝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일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은 채 살아왔다. 그러나 당연한 일들이 모이고 모여 아주 복잡한 판단력을 발휘해야 할 일들로 발전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그것이 또 인간의 삶이다. 난 궁금해진다. 나라면 카즈키에게 왜 아버지를 죽이지 말았어야했는지 잘 설명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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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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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가 박민규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한 단편소설집을 읽고서였다. 그 소설집에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는 단편을 읽고 헤아릴 수 없는 감동을 받고 작가 이름을 확인했었다. 그때 그 작가가 바로 박민규였다. 내가 반했던 그 소설은 소외된 사람들의 아픈 일상을 카프카적 상상력으로 물들인 수작이라고 난 생각했다. 그렇게 작가 박민규를 알게 되고 그 후 난 '카스테라'를 찾아서 읽고 박민규의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입담이 날 유혹하면서 동시에 적당히 속세와 타협하지 않는 깔깔한 그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내가 본 박민규는 물질에 압도 되서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세태를 꼬집거나 비하하면서 은근히 그 세태에 동참하지 못해 안달하는 다른 작가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고집스럽게 쓰고 있는 그 기기묘묘한 선글라스 속의 그의 눈동자처럼 남들과 다르면 어때라는 반항심을 느낄 수 있는 작가라고 난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이 바로 이 신작소설 '핑퐁'에서 확인됐다. 핑퐁은 따를 당하는 두 명의 중학생들이 탁구를 치면서 지구의 장래를 논한다는 지극히 생뚱맞은 소설이다. 고로 무참히 비현실적이면서도 이들의 언어와 상황은 극사실적이다. 그의 쫀득하고 찔깃하고 실감나는 언어가 낭자한  신작을 읽고 있자니 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상상력은 삼류 에스에프 소설을 쓰는 작가의 그것처럼 기발하고 엉뚱하고 어이없으면서도 묘하게 정곡을 뚫는 점이 있다. 그냥 고개를 흔들고 무시해 버리기엔 뭔가 아쉬운, 어슴푸레한 진실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왕따를 당하는 쪽과 가하는 쪽. 폭력을 행사하는 쪽과 당하는 쪽, 지배하는 쪽과 지배당하는 쪽, 생각하는 인간과 따르는 인간, 그밖에 잡다하게 지구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무의미한 일상을 일순간에 멍하게 만들어 버리는 황당한 그의 이야기를 쫓아가다보면 머리는 멍해지지만 동시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박민규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이나 반인반수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자각이 아프게 느껴져서이다.

결국 지구를 언인스톨하기로 한 아이들. 그리고 공감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결정. 해피엔딩이나 스릴 넘치는 결말이라는 미덕을 갖지 못하고 보편적인 상상력을 갖지도 못한 이번 그의 신작은 의외로 대중적인 성공을 못 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우리 곁에 있는 엉뚱한 이야기꾼 박민규의 색다른 탁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즐겁고 생뚱맞은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 난 만족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다음번엔 그가  또 무슨 황당한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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