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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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가 박민규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한 단편소설집을 읽고서였다. 그 소설집에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는 단편을 읽고 헤아릴 수 없는 감동을 받고 작가 이름을 확인했었다. 그때 그 작가가 바로 박민규였다. 내가 반했던 그 소설은 소외된 사람들의 아픈 일상을 카프카적 상상력으로 물들인 수작이라고 난 생각했다. 그렇게 작가 박민규를 알게 되고 그 후 난 '카스테라'를 찾아서 읽고 박민규의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입담이 날 유혹하면서 동시에 적당히 속세와 타협하지 않는 깔깔한 그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내가 본 박민규는 물질에 압도 되서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세태를 꼬집거나 비하하면서 은근히 그 세태에 동참하지 못해 안달하는 다른 작가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고집스럽게 쓰고 있는 그 기기묘묘한 선글라스 속의 그의 눈동자처럼 남들과 다르면 어때라는 반항심을 느낄 수 있는 작가라고 난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이 바로 이 신작소설 '핑퐁'에서 확인됐다. 핑퐁은 따를 당하는 두 명의 중학생들이 탁구를 치면서 지구의 장래를 논한다는 지극히 생뚱맞은 소설이다. 고로 무참히 비현실적이면서도 이들의 언어와 상황은 극사실적이다. 그의 쫀득하고 찔깃하고 실감나는 언어가 낭자한  신작을 읽고 있자니 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상상력은 삼류 에스에프 소설을 쓰는 작가의 그것처럼 기발하고 엉뚱하고 어이없으면서도 묘하게 정곡을 뚫는 점이 있다. 그냥 고개를 흔들고 무시해 버리기엔 뭔가 아쉬운, 어슴푸레한 진실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왕따를 당하는 쪽과 가하는 쪽. 폭력을 행사하는 쪽과 당하는 쪽, 지배하는 쪽과 지배당하는 쪽, 생각하는 인간과 따르는 인간, 그밖에 잡다하게 지구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무의미한 일상을 일순간에 멍하게 만들어 버리는 황당한 그의 이야기를 쫓아가다보면 머리는 멍해지지만 동시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박민규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이나 반인반수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자각이 아프게 느껴져서이다.

결국 지구를 언인스톨하기로 한 아이들. 그리고 공감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결정. 해피엔딩이나 스릴 넘치는 결말이라는 미덕을 갖지 못하고 보편적인 상상력을 갖지도 못한 이번 그의 신작은 의외로 대중적인 성공을 못 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우리 곁에 있는 엉뚱한 이야기꾼 박민규의 색다른 탁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즐겁고 생뚱맞은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 난 만족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다음번엔 그가  또 무슨 황당한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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