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든 드라마든 익숙한 소재를 다룬다는 건 쉽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을 소비하는 대상의 어떤 심리를 건드려야 할지 예측하기 쉽기도 하지만 그만큼 진부하거나 식상하다는 반발을 살 확률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양날의 검을 품고 있는데도 한국 영화에서 조폭은 단념하기 어려운 존재인 모양이다.
한국 영화 ‘파파로티’는 관객으로서 이런 우려를 품고 보게 된 영화다. 뭐 그렇다고 정색하고 보러 간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영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여흥을 즐겨보자는 목적으로 갔지만 저변에는 이런 마음도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내 그런 예상이 무색치 않게 일견 구수해보이면서도 이젠 한국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구사하는 조폭 형님들이 한 성질 할 것 같은 예고 음악 교사 상진(한석규 분)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역시 아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주인공인 조폭이자 성악 천재 고등학생 이장호(이제훈 분)가 등장한다. 고등학생이라는데 얼굴은 대학을 졸업한 얼굴로 보이는 노안이라 잠깐 혼동되는 건 넘어가기로 하자.
그렇게 공교롭고도 껄끄럽게 처음 만난 상진과 장호의 관계는 별 볼일 없어 보이면서 까칠하기만 한 쌤이란 장호의 편견과 조폭 새끼가 노래를 해봤자 얼마나 하겠냐는 상진의 편견이 부딪치면서 평행선을 달리기만 한다. 그러다 상진이 장호의 목소리에 감동하면서 성악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고, 그 과정에서 장호의 아픈 인생을 같이 보듬고 그의 흔들리는 인생에서 길을 제시해준다는. 아주 교과서적인 결말로 막을 내린다.
그럼 이 뻔하디 뻔한 영화가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는 힘은 뭘까?
그건 바로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꿈이었다는 것. 그리고 조폭과 성악이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합을 영리하게 결합시켰다는 것이다. 상진이 장호에게 헌신적인 건 그에게서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봤기 때문이다. 이태리 오페라에서 주역까지 맡았던 인생의 절정기에서 운명 때문에 좌절하고 이젠 한갓 시골 예고의 음악교사로 텁텁한 나날을 보내던 상진에게 장호는 너무나 아파서 애써 묻어 두고 있던 꿈의 흔적을 보여준다. 또한 장호 역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삶이라면 칼을 맞겠다고 할 만큼 반짝거리는 꿈의 의지를 보여준다. 할머니와 둘이 살다가 고아가 된 어린 시절 그를 위로해준 단 하나의 존재인 노래가 그의 인생을 이끌어 왔고 이젠 그것 아니면 살 수 없는 절체절명의 꿈이 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꿈이란 게 뭔지, 자신의 꿈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냥 되는대로 살아 왔기에 그렇게 막연히 살아가는 장호 주변의 이들은 그를 응원해주는 것이다. 반짝이지 않으려 애써도 너무나 찬연하게 반짝이는 그 꿈 때문에.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를 살린 힘은 바로 한석규와 이제훈의 연기 앙상블이었다.
한석규야 두 말 하면 입이 아플 만큼 연기를 잘 하는 배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영화에선 특히 그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감탄스런 연기를 보여줬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씨발 씨발, 소리를 내뱉으며 성질을 부리는 것도, 자식에게 계란말이를 뺏기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모습도, 제자를 위해 대회장에서 패악을 부리는 모습도, 마지막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까지 그는 예고 교사 상진 그 자체였다. 그런 한석규의 묵직하면서 힘 있는 연기에 눌리지 않고 이제훈 역시 맡은 역할을 잘 해냈다. 자칫하면 한석규의 기에 눌려 주인공이면서도 그 존재감이 희미해 질 수 있었던 이제훈은 특유의 순정하고 진지한 표정과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 연기 그리고 때로는 반항기 섞인 고교생 역할을 능글맞게 잘 해냈다. 두 사람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주말 저녁을 그렇고 그런 국산 영화 한 편에 허비했다고 씁쓸해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사람들이 꿈을 다룬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눈물을 훔친다는 건.
그들 역시 잊고 있거나 생각지 않았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 묻어둔 뭔가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것이 여기선 성악 하는 조폭이라는, 발칙해 보이는 형태로 구체화됐을 뿐이지. 네 꿈을 좇고, 가슴의 소리를 따르라는 온갖 가르침과 강연들이 공허하게 들리는 요즘 같은 척박한 세월에도. 그래도 꿈을 찾아 달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는 우리는 그래서 한편으로 애잔한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칼을 맞고 죽고 싶을 만큼, 발모가지를 내놓고 싶을 만한 꿈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