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나 헤어졌는데 그 이별에서 다시 사랑이 시작된다면? 이런 괴이한 설정을 최초로 그러면서도 가장 멋지게 살린 작품은 바로 ‘연애시대’일 것이다. 2006년 눈웃음이 예쁜 손예진과 웬만한 멜로는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감우성이 주인공으로 나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명대사를 남기며 방영됐던 이 드라마는 이혼한 부부의 로맨스를 극히 참신한 시각으로 다뤘다.

 

 

 

 

‘연애시대’가 이혼한 부부의 로맨스를 알콩달콩한 로맨스와 가슴 아픈 눈물을 섞어 그야말로 영화처럼 멋지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확률은 극히 희박한 이야기로 다뤘다면. 이 영화 ‘연애의 온도’는 그야말로 우리 주변에서, 아니 멀리 갈 것까지도 없이 내게 일어난, 모든 이별의 기억들과 추억들을 지뢰처럼 터트려줬다. 미워서 헤어지고, 질려서 헤어지고, 더 이상 상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헤어졌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뜨거웠던 사랑의 온기는 조금씩 남아 우리를 간질인다. 이와 같은 애증의 미묘한 온도가 이별에 적응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영이(김민희 분)와 동희(이민기 분)는 처음엔 불같이 사랑해서 몰래 사내 연애를 시작하지만 권태기의 절정에 이른 3년 차에 그만 헤어진다. 사내 연애 커플이었기 때문에 사귀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커플. 하지만 가난과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듯이 사랑의 종결인 이별 역시 감추긴 힘든 법.

 

 

 

 

난 괜찮다고, 난 아무렇지 않다고, 의연한 척 어깨에 힘을 주다가도 둘은 술을 마시며 깽판을 부리고, 집에 돌아와 침대 위에 쓰러져 통곡하는 것으로 이별의 아픔을 삭인다. 그러고도 모자라 서로의 새 애인을 알아내기 위해 상대의 페이스북에 몰래 들어가고, 상대의 애인을 스토킹하고, 그들의 메신저 대화를 훔쳐본다. 그리고 꿔준 돈과 노트북을 받겠다며 치사하고 치졸한 작태를 부리기도 한다. 그렇게 이별에 적응하기 위해 온갖 진상을 다 떨었는데도, 헤어져서 이젠 남이어야 하는데도 그 현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사실은 그게 정상일 것이다. 사랑은 원래 뜨거운 것인데 어떻게 헤어졌다고 하루아침에 쿨할 수가 있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두 남녀. 하지만 다시 만남을 시작하기가 너무도 두렵다.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날 확률 87퍼센트, 하지만 그렇게 재회한 연인의 결합이 성공할 확률 3퍼센트’라는 영이의 대사가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이별이 가슴 미어지도록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또 다시 상처 받는 것 역시 이별만큼 두려우니까. 그러나 그 3퍼센트는 로또 당첨될 확률 846만분의 1보다 크다며 용기를 내는 동희의 표정은 왠지 그래서 더 공감이 간다. 로또 당첨될 확률보다는 더 큰 확률에 희망을 걸어보는. 그래서 식어버린 사랑을 다시 살려보려는 그 마음 역시 공감하기에. 그 딜레마는 모든 헤어진 연인들이 한 번씩 마음속에서 되작여보는 딜레마니까.

 

 

 

 

결국 영이와 동희는 어떻게 됐을까?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무수한 연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디테일한 묘사가 빛났던 영화. 사랑하는 남자에게 맞춰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몰래 슬퍼하던 영이의 표정과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힘들어하던 동희의 표정이 낯설지 않았던 영화. 연애의 온도를 지금 연애중인, 그리고 헤어진 모든 연인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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