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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궁마마
이청은 지음 / 아롬미디어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연영. 첫 마음을 준 이를 가슴에 품고 살다 끝내는 자신의 사랑을 쟁취한 예쁘고도 현명한 여인의 이름이며, 한 나라의 임금과 좌의정이라는 최고 권력을 가진 아버지 사이에서 가엾게 희생양이 된 여인이다. 세자빈 간택 후 후궁이 되고 은빈이라는 첩지를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임금과 같은 궁궐에 있지만 결코 임금의 곁으로 갈 수 없는 은빈이었다. 이미 다른 집안의 여식을 세자빈으로 정해놓은 상태에서 임금 이려와 대왕대비는 왕권을 굳건히 하기위해 좌상의 여식을 볼모로 잡기위해 삼간택에 뽑아 올린 것이었다.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열 세 살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5년의 긴 시간을 홀로 구중궁궐 속에 갇혀 지냈기에 냉궁마마라고 불리는 여인이 바로 은빈이었다.
이 글은 저자의 눈속임이 완벽한 구성이다.
소설의 반 이야기를 깜빡 속으며 읽었다. 냉궁마마라 불리는 가엾은 은빈. 5년이 지나도록 임금의 철저한 외면을 받으며 살아가는 그녀는 꿈에도 그리워하던 임금을 만나게 된다. 중전에게 후사 소식이 없자 대비와 대왕대비는 은빈과 임금의 합방일을 잡게 되었고 드디어 회임을 하게 된다. 하지만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끔찍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음모가 실행되기도 궁녀들이 대식행위(동성애)가 발각되는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고, 은빈처소의 두 궁녀가 잡혀가서 곤장 백대를 맞는 형벌이 내려졌다. 은빈은 중전 처소에 가서 궁녀들의 감형을 위해 종아리를 맞다가 유산을 하고 실신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너무나 은빈이 가여웠었다. 회임한 몸임에도 소중하게 보존하지 못한 은빈에게 실망을 하지 않을까, 그녀를 멀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한 여인의 운명이 이토록 가혹할까 생각하며 하루빨리 아픔을 딛고 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책 속에 반전이 숨어있으리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한채 곧이곧대로 읽어나갔다. 가엾은 은빈이 드디어 임금을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수줍어하면서도, 당차게 그리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은빈의 모습에서 사랑스러움이 느껴졌고, 이 여인을 홀로 오 년을 외롭게 둔 임금 이려가 원망스러워지기까 했다. 또한 임금 이려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장면에서는 나역시 기뻤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갔다.
바로 여기에 첫번째 반전이 나타난다.
앞의 모든 이야기는 은빈이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였던 것이다. 홀로 오 년을 넘게 궁에서 살았던 은빈이 정신적으로 이상이 찾아와 그녀가 그려낸 또다른 세계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연영의 첫 마음을 준 사나이 겸사복 벗이 등장한다. 삼간택 날 은빈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던 벗은 이려의 명으로 은빈 처소를 감시하면서 그녀가 가엾어 많은 책들을 보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연영은 아버지가 보내 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으며 정신이 온전치 못한 그녀는 겸사복 벗을 회임한 자신을 위해 임금이 사가에서 보내준 호위무사인 사촌 오빠로 착각을 하며 벗을 오라버니로 부르고 따른다. 정신병을 깊이 앓고 있는 은빈에게 임금 이려가 처음으로 찾아갔고, 사랑스런 은빈을 대면한 이려는 곧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두 사람을 보면서 안타깝게 은빈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겸사복 벗이었다. 벗 역시 어느새 은빈을 마음 속에 두었던 것이다. 연영이 열 살 때 납치되어 정신을 잃은 그녀를 위험에서 구해주었을 때였을지도 모른다.
두번째 반전은 정신병을 깊이 앓고 있는 은빈의 모습은 연영이 임금과 대적한 가문,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구중궁궐에서 외롭게 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첫 마음을 준 사내와 영원히 함께 하고자 거짓으로 꾸민 연극이었던 것이다.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었다. 권력 싸움에 희생양이 된 은빈이지만 그녀는 멋지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다.
살아서는 결코 궁궐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였지만 영리한 꾀로 그 문을 두 다리로 걸어나갔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책장을 넘기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쉽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찾아간 여인.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인이 선택한 남자 겸사복 벗.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은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엮어졌던 것이다.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이어질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