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61
너대니얼 호손 지음, 한지윤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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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와 함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큰 바위 얼굴이다. 교훈적인 성격을 지닌 소설이라는 점으로 이 글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하다.

어니스트라는 한 소년이 어머니에게 그 집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큰 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언젠가 이 골짜기에 태어난 아이가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높은 인물이 되며,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아이의 얼굴은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을 것이다.-

이 골짜기 마을에 큰바위얼굴을 닮은 부자에 이어 군인, 정치가, 시인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반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색한 부자도, 부드러운 지혜와 넓고 온화산 성심을 찾을 수 없는 군인도, 자애로움을 느낄 수 없는 정치가도, 신성한 이미지를 찾을 수 없는 시인 모두 결코 큰바위얼굴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인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어니스트의 모습을 보게된다. 진실됨과 깊이가 있는 생각, 고귀한 인품, 온화하고 다정하고 깊은 얼굴, 부드러운 지혜와 온화한 성품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어니스트의 모습에서 큰바위얼굴의 장엄하고 거룩한 큰 바위얼굴을 발견한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자신보다 더 지혜롭고 훌륭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다.

다분히 교훈적인 소설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의 문제를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제각각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오직 큰 돈을 모으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현재의 삶에 만족할 줄 모르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주위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권력과 명예를 잡으려한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돈을 가치있게 쓰지 못하기 때문이고, 권력과 명예를 잡은 후에는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 다르겠지만 문제는 남을 생각하지 않는,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위한 금전, 권력, 명예욕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위인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자신보다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어니스트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부지런하고, 부드러운 지혜와 깊고 넓은 온화한 성심을 갖고 주위를 변화시킨 그가 바로 큰바위얼굴이었던 것이다. 

 

단편 '데이비드 스완'은 나도모르게 내 곁을 왔다가 지나쳐가는 수많은 인연들을 소재로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있다. 나에게 오갔던 수많은 인연들을 알지 못한다. 내가 결정하는 행동이 따라 내 운명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록 내 앞에 오갔던 수많은 인연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의 운명 이끌어 가기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

 

'히긴보텀 씨 살인 사건'은 떠벌이기 좋아하는 담배 상인 도미니커스가 킴볼턴으로 가던 길에서 만난 두 인물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사람들에게 히긴보텀씨가 배나무 가지에 매달아 죽었다는 소문을 낸다. 그 소문은 이미 킴볼턴 가기 전까지 다 퍼졌지만 히긴보텀을 오늘 직접 본 사람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근거없는소문을 낸  도미니커스는 법정으로 끌려가게 될 상황까지 갔다. 하지만 끝까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히긴보텀씨를 만나러 간 도미니커스는 그를 죽이려는 사람을 때려눕히고 구해낸다. 만약 도미니커스가 아니었다면 히긴보텀은 죽었을 것이다. 원래 도미니커스를 죽이기로 한 날 두 사람은 용기를 잃고 도망쳤고 한 패였던 사람만이 남아 원래 죽이기로 한 날보다 뒤늦게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운명이 히긴보텀의 죽음을 막았다는 내용이 정말 특이하다. 작가의 발상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소설이다.

 

'라파치니의 딸'은 지오바니 구아스콘티와 묘령의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이 글은 아버지 과학자 라파치니에 의해 딸을 실험과 연구 대상으로 삼아 독초와 함께 길러진 베아트리체를 창가에서 바라보다 사랑을 느끼게 된 지오바니가 독초에 같아 중독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까지도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것임을 알게된 베아트리체는  피에트로 박사가 만든 약을 먹고 죽는다. 새로운 과학적 지식이 전통적인 세계관과 충돌하는 시대에서 더다니엘 호손은 도덕성이 결여된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이 글에서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리라. 베아트리체의 죽음이 바로 과학적 허무함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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