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과 분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0
윌리엄 포크너 지음, 윤교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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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모더니즘 소설의 금자탑이라는 평가를 받는 '고함과 분노'. 작가 윌리엄 포크너가 가장 아끼는 이 작품은 나에게 실험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 작품을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랄까....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첫 장... 이 고비를 넘기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첫 장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한다. 바로 벤지라는 인물의 특이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 장은 서른 세 살의 나이이지만 세 살 정도의 정신 연령을 지닌 벤지의 시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제1장이 서술되는 시점은 1928년 4월 7일로 벤지의 시각에서 서술해 나간다. 현재를 서술하다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과거의 시간이 튀어나온다. 뒤죽박죽의 시간 전개이기에 그 시간을 명확히 구분하며 읽으려 했기에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시간의 구분이 된다. 제1장은 너무 힘을 주고 읽지 않기를.....제1장의 특징이라면 시종일관 벤지의 의미 없는 소리 즉 울음 소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냄새를 통해 세상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의 질서를 예고도 없이 파괴한다는 것이다. 벤지의 시각에서 캐디는 누나 그 이상의 존재였다. 자신을 보듬어주는 영원한 안식처 엄마였던 것이다. 그래서 벤지는 의식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캐디와의 단편적 추억과 냄새를 떠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제2장의 시점은 1920년 6월 2일의 일로 퀜틴의 시점에서 서술해 나간다. 2장 역시 내용에 대한 이해가 그리 쉽지 않다. 바로 의식 흐름 기법에 따라 자신의 의식이 닿는대로 써 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의 시간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또다른 과거의 시간을 끄집어 낸다. 벤지의 의식처럼 퀜틴의 의식도 구분이 쉽지 않다. 콤슨 부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장남으로서 무게와 여동생 캐디에게 가졌던 혼돈스러운 감정(근친상간) 때문에 죄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퀸틴의 의식 끝에는 언제나 캐디가 서 있었다. 결국 그는 과거의 기억을 놓지 못하고 그 시간에 갇혀 죽음을 선택하고 만다. 제2장의 시작 부분에 아버지가 시계를 퀜틴에게 주면서 한 말 - "인간의 모든 희망과 욕망을 묻어 버리는 무덤을 네게 준다·····너도 이것을 쓰면서 인간의 모든 경험이란 결국 부조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무의식적으로 퀜틴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제2장의 표현적인 특징이라면 구두점이 없는 문장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기존 질서에 대한 파괴가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또한 시간 질서의 무너지고 뒤섞인 시간의 혼재 속에서 의식을 서술하는 시간 흐름 기법 등은 모더니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3장은 콤슨 가문의 실질적 가장인 제이슨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 그는 철저히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캐디의 딸 퀜틴을 양육한다는 핑계로 돈을 챙길 뿐 아니라 모든 잣대를 '돈'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콤슨 가문의 마지막 남은 정상적인 인물이지만 그에게는 몰락한 콤슨 가문의 부활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분노만을 표출하며, 안하무인격으로 집안의 독재자가 된다.

제4장에 등장하는 하녀 딜지는 제이슨을 통해 콤슨 가문의 끝을 보았다. 오랜 시간 콤슨 가문의 과거와 현재까지를 함께 한 딜지는 콤슨 부인을 대신해 그녀의 네 자녀를 키웠다. 거기에 캐디의 딸 퀜틴마저도..... 그러나 어린 퀜틴마저도 삼촌의 돈을 훔쳐 달아나고 만다. 딜지는 이제 콤슨 가의 완전한 몰락을 본다. "시작을 봤는데, 이제 끝도 봤단다." 부활절에 그녀는 교회를 가는 길에 딸 프로니에게 말한다. 쓰레기 같은 백인, 덜떨어진 백인.... 그녀의 백인에 대한 이런 생각은 콤슨 가문의 몰락을 넘어 1930년대 미국 사회의 위기와 불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설 전반에 걸쳐 벤지가 사람들에게 표출하고 있는 형태는 고함과 분노이다.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는 그저 무의미한 것이다. 음절화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흐느낌, 울부짖음, 경악, 공포, 충격,... 그러나 독자는 벤지의 고함과 분노가 비뚤어진 콤슨 가족에 대한 분노이고, 더 나아가 몰락하는 미국 남부 사회의 불안에 대한 절규라는 의미 있는 고함과 분노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는 이 글을 쓴 후에 다시 한 번 꼭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아직 내 머릿속에 부유하는 것을 잡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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