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86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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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트르담 등 굵직한 작품을 써낸 작가로 한때 나폴레옹 3세에게 반대했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19년 간을 망명생활을 했다. '웃는 남자'는 그가 파리로 돌아오기 전 해에 탈고를 마친 작품으로, 빅토르 위고 스스로 자신의 가장 뛰어난 소설이라고 평했던 작품이다.

하권은 우르수스 일행이 서더크의 여인숙 태드캐스터에서 자리를 잡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르수스와 그윈플레인, 데아는 '정복된 카오스' 공연으로 대성황을 이룬다. 이야기의 반전은 아무래도 그윈플레인이 지하취조실로 끌려갔다가 다시 나오는 장면일 것이다. 하층민이며, 어릿광대였던 그윈플레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로드(lord)의 신분이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익살광대에서 로드라는 극과 극의 신분 변화. 그것은 과거와 미래의 충돌이었다. 그윈플레인은 내면에서 깊은 폭풍우가 일렁인다. 25년 그의 삶에는 하층민들의 삶 속이 녹아있었다. 그는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온 하층민들의 다양한 모습 속에서 공통된 점을 발견하는데 바로 무지, 가난함, 굶주림, 매춘, 착취 등 불행한 삶을 살아 온 창백한 얼굴이었다.


오! 나에게 힘이 있다면 불행한 사람들을 도우련만!

하지만 나는 무엇인가?

한낱 원자 알갱이야.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아무 것도....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는복권이 되었고 영국 상원까지 진출한다. 신이 백성들의 실상을 귀족들에게 알리게 하기 위해 자신을 심연 속에 던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의회에서 장엄하고도 가치 있는 연설을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말에 동조하는 귀족은 없었다. 그들의 민낯이 그윈플레인에 의해 처절하게 드러남에 부끄러워해야 할 귀족들은 희극 무대의 광대를 보듯 하나 둘 씩 웃기 시작한다. 최고의 지위를 가진 상원의원의 숭고한 연설은 결국 귀족들의 비웃음 속에 처절하게 무너져버리고 만다. 바로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얼굴이 개조된 그의 웃는 모습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희극적 모습이 비극적 결말을 만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소설의 비판의 대상은 귀족들이다. 그윈플레인은 의회에서 귀족들의 오만함을, 사치를,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떤 참담함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인가를 질타한다. 귀족들의 탐욕과 오만함이 한낱 어릿광대였었던 그윈플레인의 입을 통해 비판을 받는 장면은 짜릿한 통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추악한 모습을 보고 비웃는 귀족들. 그러나 진정 추악한 내면을 갖고 있는 것은 왕과 귀족. 그대들이 아니겠는가?


경들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가한 자에게 주기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서 빼앗고, 배부른 자에게 주기 위해 거지에게서 빼앗으며, 군주에게 주기 위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다니.....

왕이라는 것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의 인간, 욕망과 불구 상태에 휘둘리는 약하고 가냘픈 인간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결국 그윈플레인의 삶은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눈속에서 발견한 갓난여자아이와 이 세상에 홀로 남은 버림받은 아이의 운명같은 만남.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구원이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다. 끝까지 데아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놓지 않은 그윈플레인의 사랑은 애처롭기만하다.



거친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르수스. 그윈플레인과 데아를 자식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두 아이가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들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타인의 고통에 나몰라하는 귀족과는 다르게 가진 것이 없어도 서슴 없이 나누고, 두 사람의 울타리가 되어 준 우르수스. 그윈플레인의 부재로 충격을 받게 될 데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복화술과 몸짓으로 애쓰는 모습은 우리는 진한 감동을 준다.

'웃는 남자' 그윈플레인은 결코 웃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그 웃음.... 그건 절망의 또다른 표현일 것이다...그래서 그의 웃음은 반어이며 역설인 것이다. 소설 '웃는 남자'는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당시의 정치적 · 사회적 무질서, 특히 계급 사회가 빚은 극심한 빈부 격차, 신분 차별의 부조리 속에서 평등의 의미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있게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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